오늘과 내일 사이에 선 신앙인의 지혜
오늘과 내일 사이에 선 신앙인의 지혜
  • 김기대
  • 승인 2010.04.13 0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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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미래의 희망을 갖는 법'

얼마 전 도요타 자동차의 대량 리콜, 생산 중단 등의 소식을 접하면서 ‘인간이 하는 일에 완벽은 없다’는 생각을 해봤다. 도요타뿐 아니라 혼다, 미쓰비시, 소니 등 일본의 유력 기업들은 성공의 모델이었고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들의 제품 관리와 효율성은 이들을 따르려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좋은 교재가 되었다.

이러한 성공 지상주의는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 이른바 잘 나가는 목회자들의 설교 속에는 구원의 선포인지 성공학 강사의 그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성공’, ‘효율’, ‘탁월’ 등이 부끄러움 없이 사용되었다.

이처럼 무한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가는 모든 경쟁들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교회는 여전히 오늘의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계속해서 자본의 시장 속에 던져 넣는다.

스프링 벅스라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산양 떼는 한 마리가 달리기 시작하면 다른 양들도 무조건 따라 달리다가 절벽에 함께 떨어져 죽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질적 가치만을 위해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다. 예언자들이 내일을 선포했고 예수께서는 재림의 희망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아는 현대인들은 성공의 우상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성공으로는 부족해 그것을 축복이라는 종교적 용어로 포장했고, 교회 지도자들은 이런 허위를 부추겼다. 반면 성공에 뒤쳐진 종교적 ‘루저’들은 기약 없는 내일만 바라보며 세상을 부정한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지혜로운 대안을 찾을 수는 없을까? 오늘의 욕망에 물들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으며 미래의 희망을 갖는 그 대안을 옛 신앙의 선배들도 고민했다. 히브리인들은 ‘좀 더 가까운 미래’(nearer future)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장차 올 종말의 날도 중요하지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가까운 미래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까운 미래’라는 말은 ‘세상을 고침’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내 앞에 있는 가까운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는 내 주변에 있는 작은 잘못부터 고쳐나가는 것이다.

그 고침은 나는 고칠 것이 없고 너만 고쳐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어울려 살도록 만들어 놓으신 세상을 그 창조의 원형대로 다시 고쳐 놓으라는 의미다. 성공이라는 오늘의 가치가 인생의 최고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은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신 세상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엄청난 자연의 재난 속에서 어설픈 종말론을 떠올리는 것은 어리석다.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여전히 성공을 향하여 달려가는 인생은 위험하다.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져 가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세상을 향하여 베풀고 나누는 것이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지혜다.

김기대 / 평화의교회 담임

* LA 기윤실 호루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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