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꼭 읽어야 하나요?"
"성경을 꼭 읽어야 하나요?"
  • 권영석
  • 승인 2018.01.25 0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Q. "성경을 꼭 읽어야 하나요?"

A. 질문자의 의도나 관심사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포괄적인 질문이라, 한 두 마디로 대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얼핏 보면 반골적인 성경관을 피력하는 듯도 하고, 아니면 율법주의적 강박으로 읽고 싶지는 않다는 정서적인 반작용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예컨대 'QT 열심히 하는 사람도 별 수 없더라'고 하는 성경의 효용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같고...!! 

정서적인 반응을 일단 제외한다면, 1)성경은 과연 뭔가 특별한 책인가 하는 전제 곧 성경관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해도 2)성경을 제대로 읽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하는 효용성 내지 방법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질문으로 보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성경의 기술적(記述的) 성격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사실 성경이 써졌을 당시는 인쇄술은 고사하고 '지필묵'조차 아무나 소지할 수 없었던 시대이며, 따라서 성경은 개인적인 용도보다는 공동체용이었을 것이며 그렇기에 한 사람이 운율을 넣어 가며 읽고 나머지 글을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청각에 의존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구절들은 내용만이 아니라 운율도 따라 하기가 수월하여 자연스럽게 암기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성경문서가 장구한 세월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도 기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쇄기술적 측면보다 더 유념해야 할 사항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 그리고 그 배경들은 당시에 실제로 살았던 인간들과 또 그들의 문화와 동시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하며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 되어진 것들을, 그리고 그들의 애환과 신앙과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표현양식으로 보더라도, 성경의 기술은 당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던 방식이나 메타포를 차용 내지 원용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표현양식을 그대로 빌어서 기술하고 있는 인간의 책입니다. 때로는 인간의 내밀한 수치심을 묘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에 없는 해학이 덧입혀져 있기도 합니다. 더구나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집적물이다 보니, 일면 모든 것을 과학적이고 사실적(寫實的)인 눈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을 띤 현대인들에게는 도리어 얼른 와 닿지 않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며, 자칫하면 진짜 말하려고 하는 의도와는 달리 문자나 교조적인 틀에 얽매이거나, 더욱 나쁘게는 아전인수 내지 미신적인 합리화의 수단으로 오용되기도 합니다.

성경의 기술적 독특함보다 더욱 두드러진 차이는, 성경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주제가 기존의 책들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인간이나 우주의 가시적인 현상을 넘어서서 창조/기원 그리고 종말에 관한 문제와, 동시에 현실 세계의 혼란과 한계에 대한 창조주의 애끓는 마음과 궁극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히 "위로부터의('계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록 겉 모양은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두루마리/서책(biblia)이긴 하나 실은 그냥 '서책'이 아니라 그야말로 '거룩한' 책(聖經)이라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인간이 인간에게 소통하는 차원이 아닌 초월자가 인간에게 소통하는 양 차원이 포함되어 있음을 고려하여 읽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실 세계를 넘어서서 초월적/궁극적인 실재에 관심이 있다면, 나아가서 현실의 혼란과 한계로 인해 깊이 절망하고 좌절하였다면, 또 그 끝자락에서 회복에 대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성경은 [여전히] 필독서 중의 필독서이자 사실 유일무이한 비블리아라 하겠습니다..

다만, 성경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책이면서도 인간의 책이라고 하는 성경의 이런 이중적인 성격을 충분히 고려하여 독경(讀經)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그저 읽는 것으로 누구나 다 동일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책은 아닙니다. 곰곰히 읽고 생각하며, 곱씹어 가며 천천히 정독해야 할 책입니다. 필요하면 이를 위해 독서 지도를 받거나 입문서 정도는 미리 공부할 필요가 있으며, 때로는 사전이나 주석을 참조하여 공부를 곁들여서 찬찬히 읽는 것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나그네 여정의 값진 투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혼자 읽지 말고 같이 읽고, 나 개인만 아니라 더 넓은 이웃과 공동체에 함께 적용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문단은 Joel Green, "Cultivating the Practice of Reading Scripture", Fuller: Story, Theology, Voice, Issue #8, 2017, pp. 60-63을 참조하였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