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
  • 권영석
  • 승인 2018.02.2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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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량살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총기 소지와 정당방위권의 허구"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20/2014082001452.html?rsMobile=false>

라스베가스에 이어 플로리다에서 또 다시 '묻지마 총질'이 벌어져서 무고한 어린 목숨들이 속수무책으로 무자비한 살상을 당하였습니다. 최첨단의 문명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에서 이처럼 가장 야만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수습의 책임을 져야할 리더십은 여전히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NRA(총기협회)의 로비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뒤엉켜서 리더십을 부러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 또한 지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어 나가야' 비로소 제 정신이 들 것인지, 이번에는 고등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how many more?"를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치꾼들이 고등학생들보다도 못한 도덕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shame on you!)이 아닐 수 없으며, 그런 정부는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셈이라 하겠습니다. 

 

가장 거대하고 막강한 공권력을 지닌 정치 시스템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걸까요? 우리 국민들이 그들에게 권력/권위를 위임하고, 세금을 내어 그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일 텐데,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또 다시 결국은 각자가 알아서 지켜야 한다면 대체 정부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국가 기관에 권력을 위임해야 할 이유도, 세금을 내어야 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름은 민주공화국인데, 실상은 무정부 상태가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대량학살이 속수무책으로 자행되고 있으니, 이런 자가당착(自家撞着)이 또 있겠습니까? 총기의 개인 소지를 헌법에까지 명기해 가면서 허용해 온 미국의 긴 역사를 한 순간에 고쳐 쓸 수는 없겠지만,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 분명한 문제인식과 올바른 관점 형성을 위한 확실한 공감대부터 마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선 총기는 자연적인 힘의 크기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의 차이를 야기하는 살상무기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그저 몇 대 더 얻어맞느냐 아니면 몇 대 더 때리느냐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완전히 아작을 내어 불구를 만들어 버리거나 심지어는 목숨/존재 자체를 없애 버리는 위험한 물건이 바로 총기입니다. 상대방의 의지/자아에 반해 무엇이든지 심지어는 그의 목숨까지도 '힘 안들이고' 손가락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빼앗아 버릴 수 있는 막강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험스런 물건을 누구든지 맘만 먹으면 소지할 수 있게 한다면, 어느새 공포와 불신이 일상이 될 것이며, 결국 이런 국가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되어 '나라'라고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자면, 아마도 미국은 지금 뿌린 대로 거두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유의 확대를 빌미로 내세우지만 실은 방종과 혼란을 부추겨 왔던 셈이 되었으며, 이제는 수습이 가능한 임계점을 지나버린 게 아닌지 염려스러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미국민이 소지한 총기가 3억정에 달한다고 하니, 국민 한 사람 당 총 한 자루씩을 소지하고 있는 꼴이며, 총기를 소지한 가구들만을 기준으로 하면 가정당 평균 8정씩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셈이라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사냥을 할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이런 위험한 살상무기인 총기를 소지하고 싶어 하는 걸까요? 궁색한 여러 설명들 밑바닥에는 결국, 말로 하지 않고 힘(완력)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오면 궁여지책으로 대처하기 위한 '강력한' 힘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대방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싸움을 싸우려 하거나 자칫 패배할지도 모르는 자충수를 두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의를 넘어 자비에 이르는 것은 고사하고, 공정한 경쟁의 기본 룰조차 호시탐탐 어기려드는 게 도시 안에서 익명화된 현대인들의 [생존]본능적인 경향성인데, 이런 사람들에게 총기는 대단히 매력적인 물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처럼 첨단 과학 시대에는 총기 역시도, 파괴력의 크기는 최대한 극대화하고 사람의 수고는 최소화하도록 고안된 것일수록 비싸고 각광받는 현실이 그러한 인간의 [악한] 심성을 반영한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이런 위험스런 물건을 두고 있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하며, 18세 이상이면 누구든지 이런 물건을 [겁 없이] 소지하고 다니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라고 하니, 물론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묻고 처벌한다고는 하지만, 지금껏 보아온 바와 같이 '사후약방문'이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에 불과할 뿐 이미 무고하게 스러져 간 수많은 생명을 어떻게 다시 살려낼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하고 보장하는 일 역시 중요하지만,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우며 말보다는 완력에 의존하기 쉬운 인간의 약함/악함을 과소평가한 채로 저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확대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결코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할 것이며, 인간 사회는 동물의 왕국보다 더욱 위험한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내 권리를 먼저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의 권리를 먼저 지켜주기 위해 때로 내 권리를 양보하거나 제한해야 하는 일이 불가피하게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숙한 인간이란 권리를 주장할 줄도 알지만, 자신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양보(어쩔 수 없는 포기가 아니라)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런 성숙한 인간들만 모여 사는 사회라면 자유를 무한 확대한다 해도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서 집단 전체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우리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우리의 자유는 제한하고 책임은 강조하기 위해, 법과 규제를 만들고, 그 준수를 강제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공권력을 양성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마디로, 우리가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가능하면 힘의 불균형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 함부로 경계선을 넘어가거나 나아가서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고하고 방지하고 [만약의 경우] 처벌하는 일은 개인보다 위에 있는 권위기구로서 공권력에 맡기기로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개인의 위임을 받은 공공 기구 말고 개개인은 아무도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무한확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어떤 개인도 "법 앞에서는 평등해야 할" 것입니다. 심지어 공권력도 위임된 권한의 범위 안에서 정당하게 발휘되도록 서로 서로 감독하고 통제하도록 하기 위해 3권으로 분립시켜서 운영하게 한 제도가 민주주의인 셈이며, 전쟁과 같은 중대한 사안은 권력기구들 사이의 합의를 반드시 거쳐서만 시행하도록 해 놓았다 하겠습니다.

 

혹자는 누구에게나 총기를 소지할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 바로 '평등한 법'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할지 모르겠으나, 그로 인한 사고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이런 권리는 언제든 오남용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미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죽고 난 이후에 무엇을 어떻게 보상할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입니까? 한편으로 사람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기에 사형제도까지 폐지하자는 마당에, 다른 한편으로는 한꺼번에 대량학살이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위험천만한 요소는 그대로 유지/방치하는 이런 모순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개인 대 개인이 함부로 해치거나 보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공권력을 두어서 권한을 위임한 것인데, 개개인에게 총기 소지의 권리를 허용함으로써 개개인의 '방위권/자위권'을 다시 개개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며 이율배반적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나키 상태를 막기 위해 정부를 만들어 놓고서, 무정부 상태를 부추기는 요소를 여전히 감싸려 드는 것은 자가당착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회 구조나 국가에 대한 시스템적인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채로, '총기 소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총기 소지자의 정신 건강이 문제였다'고 보는 개인적인 시각에만 매달린다면 논점은 흐려지고 지엽적인 공방전에 매몰되고 말 것입니다. 이번 사고로 친구들을 잃은 한 고교생의 말처럼, '범인이 만약 총이 아니라 칼만 가지고 있었다면, 과연 그런 엄청난 살상이 가능하였겠습니까?' 그리고 총은 어차피 수단에 불과할 뿐인데, 이것이 자기를 방어하는 도구로 쓰일지 아니면 타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도구로 쓰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악인과 선인이 서로 공방전을 벌이는 그 와중에서 어느 총알이 누구를 맞히게 될지 어떻게 예측할 수 있단 말입니까?' '중무장한 경찰들이 아이들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무슨 교육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전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결국 주변 사람 모두를 살해범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공포의 올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생산적이지도 못한 질문들이나 공방전을 끝내려면 언젠가 한번은 대 결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결국 문제를 개인의 자유와 책임의 문제로만 돌리려는 논리는, 혼자서 외딴 섬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집단을 이루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 세상에서는 반쪽짜리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폭력 인권 운동의 모델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정신을 높이 기리는 미국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폭력과 살상을 되레 부추기고 있는 듯한 작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에 방불한 아수라장을 경험해야 했던 파크랜드 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이제 종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힘이란 자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적어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중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세워주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거나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보복을 자제하고 솔선하여 희생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선뿐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완력이나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책 없이 총기 소지[의 자유]를 허용하는 화약-사회는 샬롬은커녕 정의조차 구현하기 힘들 것이며, 자칫하면 아나키의 혼란과 야만이 판치는 광기-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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