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淸富)론'이 공염불에 불과한 이유
'청부(淸富)론'이 공염불에 불과한 이유
  • 최태선
  • 승인 2010.05.06 00:08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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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최태선 목사의 평화의 사람들…'가난하게 하소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자신의 책을 모두 절판하라는 스님의 유언 이후 몇 시간 만에 품절 되었고, 품귀 현상을 틈타 헌책이 20만 원을 호가한다는 뉴스가 보도 되었습니다.

'무소유'라는 책의 제목과는 반대로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조적입니다. 무소유마저 소유하려는 인간의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요? 씁쓰레한 미소가 입가에 맴도는 것은 비단 저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스님은 자신의 임종 이후 판권을 놓고 벌어질 이전투구를 이미 내다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정도로 끝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구촌에는 나눠 가져야 할 이웃들이 너무도 많다. 절제된 미덕인 청빈은 그 뜻이 나눠 갖는다는 뜻이다. 청빈은 그저 맑은 가난이 아니라, 그 원뜻은 나눠가진다는 뜻이다. 청빈(淸貧)의 상대 개념은 부가 아니라 탐욕(貪慾)이다. 한자로 '탐'(貪)자는 조개 '패'(貝) 위에 이제 '금'(今)자이고, 가난할 '빈'(貧)자는 조개 '패' 위에 나눌 '분'(分)자이다. 탐욕은 화폐를 거머쥐고 있는 것이고, 가난함은 그것을 나눈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빈이란 뜻은 나눠 갖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만일 가난이 없었다면 나눠 가질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가난해 봄으로써 우리 이웃의 가난, 어려움에 눈을 돌리게 된다." (법정) 

무소유까지 소유하려는 인간의 집착

스님의 글이 머릿속에 쏙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성경의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묻는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라고 조언하셨습니다.

청빈이 영생의 필수 조건인 셈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부자 청년은 슬퍼하기도 하고 근심도 해보았지만 많은 재물이 아까워 기껏 진지하게 생각했던 영생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막 10:17-27)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베풀지 못해서가 아니라 재물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베풀지를 못합니다. 가져야 베풀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가질수록 베푸는 마음도 줄어듭니다.

가난한 자만이 베풀 수 있습니다. 삶의 역설입니다. 사람들은 가져야 나눌 수 있지 않느냐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원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 역설 때문에 가난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다고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나누는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베풀기 위해 우리는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풂을 예로부터 낙시(藥施)라 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이 부자였던 이유는 재물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유만을 가난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은 그러므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가진 것이 많으면서 가난하게 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다고 하여도 가난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재물이 주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도 일단 재물이 주어지면 사치와 허영에 빠지고 남에게 인색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없는 사람들을 더 멸시하는 경우도 즐비합니다. 졸부라는 말은 그런 경우를 이르는 말일 것입니다. 

'십일조 많이 하게 해주세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 많이 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어느 책에선가 이 기도가 가장 빈도수가 많은 기도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탓에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부는 청빈이 되기보다는 탐욕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습게보기 쉬운 부자 청년은 실상은 평범한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철저히 지켜온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계명에는 헌금과 구제에 대한 계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은 그가 헌금과 구제에도 신실한 사람이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참되고 진실 된 마음으로 십일조 많이 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겠지만 본의와 다르게 그것은 침륜과 멸망으로의 지름길이 되고 말 것입니다.(딤전6:9)

베네딕투스는 수도원의 모든 그릇과 전 재산을 제단 위에 있는 축성된 제물처럼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선함과 지혜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귀한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거룩한 것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것은 거룩하고 어떤 것은 속되다는 마음은 잘못된 마음입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한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에서, 심지어 돈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함께 나누는 청빈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람들과 자신에게 유익이 되어서 뿐 아니라 그 일 자체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시요, 주인으로 온전히 받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진리를 좇는 자의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모두 가난해져야 합니다'

누구나 가난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두가 가난해져야 합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비우는 사람,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 남을 위해 상대방과 같아지는 사람, 남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장 가난했던 그분처럼 기꺼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만이 남에게 베풀 수 있고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사랑을 실천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탐욕이 온 마음을 가득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예수님 앞에서 뒤돌아설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어떤 인기 절정의 목사님이 청부(淸富)라는 것을 강조해도 그것은 다만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정 스님의 말과 실천은 우리에게도 참으로 고맙고 유익한 교훈입니다. 

최태선 / 어지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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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하모닉 2010-11-24 17:18:58
청부론도, 청빈론도 성경이 말하는 신앙인의 삶의 지표는 될수 없습니다. 성경은 있는 것을 족한 줄 알라. 부하려 하는 자들이 올무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재물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십니다. 사람이 재물얻을 능력도 주님이 주신 것이라 했지요. 다만, 모든 가치 위에 물질적 가치를 놓는 다는 것이 물신주의 사상일 것이고 이것은 죄된 인간의 욕망에 다름아닐 것입니다.

하아지 2010-11-09 11:55:16
적지않은 분들이 자본주의 개념으로 성경을 해석하시는것 같네요. 가난하게 살다가면 천국문턱을 밝는다는 식의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세상 사람들도 인생의 가치를 그렇게 보지 않는데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더 세속적인지 답답하네요. 경제적인 것과 인생포기를 연계하는 폭력은 맘몬이 돈 가운데 심어놓은 것임을 통찰하길 바랍니다. 긍휼의 마음이 동정이 아닌 기본 삶이 되길.

규장 2010-10-20 08:27:00
법정스님에게 자녀가 있었다면, 무소유를 주장했을까? 대학 공부시켜야 하고, 자동차 구입

해야 하고, 월세 내야 하고,각종 고지세에 세금..., 치열한 삶에 대한 해결없이.., 무소유

합시다.., 이런 말은 인생포기를 뜻하지 않나요? 기독교인들이 죄다 청부론 주장하여, 스스

로 가난해져, 세상에 그 어떤 영향을 줄수가 있나요? 3끼밥이나 먹고 살다가, 천국문턱에

가는 것이 그렇게 원하는 성경적 삶입니까? 스스로 노력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이 선택하는

쉬운 결정이지요. 청빈론?

Ohmykingdom 2010-09-28 13:51:01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것처럼 어렵지만...하나님은 하실수있습니다. 갖고있는것을 나누는 가난한 마음의자세가 늘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든것들은 사실은 우리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청부든.. 청빈이든.. 그 마음의 동기들이 삶으로 나타나야합니다. 귀한 글입니다.

goyohan 2010-09-02 09:38:39
목사님, 정말 가난하시죠. 가난은 자랑이 아니라, 후회의 열매 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사는것.. 기독교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탐욕? 예수님을 정말 믿으면, 탐욕 버릴 수 있습니다. 일부 기독부자들은 탐욕에 찌들어 있지요. 그게문제지, 열심히 노력하는 것 바른 삶이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입니다. 청부론이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