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목사들이여, 비상(飛上)을 준비하라!
고개숙인 목사들이여, 비상(飛上)을 준비하라!
  • 이준수 목사
  • 승인 2018.08.31 10: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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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수 목사 기고문]
이준수 목사는 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 팀장이다. 한국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도미후 대학원과 박사과정에서 역사학을 연구하였으며,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M.Div후 목사가 되었다.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살아가지만, 장애인 목회자이기 보다는 조금은 다른 삶과 시선으로 더욱 다채로운 신앙과 공동체를 만들어갈 꿈을 매일 꾸며 살아가는 소년같은 목사다. 
 
영화 '퍼펙트게임'의 만년 후보선수 박만수

2011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 <퍼펙트게임>이란 작품이 있다. 한국 최고의 프로야구 투수였던 ‘최동원’과 ‘선동열’의 라이벌전을 그린 영화로, 이 작품 속엔 ‘박만수’라는 조연급 캐릭터가 나온다. 실제로 존재한 사람이 아닌, 영화의 재미를 더 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로 선동열이 소속된 ‘해태타이거즈’의 후보 선수이다. 포지션은 포수지만 1982년 입단 이래 한 번도 경기에 출전한 적이 없다. 항상 덕 아웃 뒤 구석에 웅크려 앉아 있고 청소, 장비 정리 등 자신보다 한참 어린 후배들의 뒤치다꺼리나 해야 한다. 무명 선수로 돈을 못 버니 집에서도 가장으로서 대우도 못 받고 아내의 한탄과 잔소리만 내내 듣는다. 아내는 광주 변두리에서 작은 치킨집을 운영하는데, 남편만 보면 “더 이상 못살겠으니 안 되는 야구 이제 그만 집어 치고 날 좀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다. 너무 화가나 글러브와 방망이를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들도 하나 있어 야구선수인 아빠를 너무나 존경하지만 아빠가 경기에 나온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친구들이 자길 놀린다고 항상 풀이 죽어 있다. 이런 이유로 박만수는 경기가 끝나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거리를 배회하며 쓰린 속을 달래곤 한다.

이처럼 인생이 꽉 막혀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박만수에게는 여전히 한 가닥 꿈이 있다. 어느 때인가 자신이 주전으로 뽑혀 포수 마스크를 쓰고 크게 파이팅을 외치며, 또 안타도 쳐 다이아몬드를 힘차게 달려나가는 꿈 말이다. 그리고 그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매일 밤새도록 배팅연습을 하고 주루플레이를 익힌다. 결국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선동열의 눈에 들어 그의 전용 캐치볼 상대가 되고 성실한 모습이 ‘김응용’ 감독의 마음까지 움직여, 최동원과의 운명의 대결이 있는 날 마침내 프로 데뷔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게 된다. 그리고 1: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해태의 기라성 같은 타자들의 손도 대지 못했던 최동원의 강속구를 통타해 동점홈런을 만들고 만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영화 속 가상의 이야기지만 참 감동적이고 통쾌하다. 이 ‘박만수’ 역을 맡았던 ‘마동석’이란 배우도 오랜 세월 무명이었다가 이 영화가 개봉될 즈음에야 조금씩 각광받기 시작해 맡은 배역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되고 보다 실감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두려움과 좌절을 딪고 퍼펙트 게임을 준비하는 '박만수' 선수,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야구선수지만 경기 출전 기회가 없어 그라운드를 뛰지 못하는 박만수처럼, 명색이 목사지만 사역지가 없어 목회활동을 못하는 목사님들이 우리 주위엔 참 많이 있다. 이곳 남가주만 해도 약 2000명 이상의 ‘노는’ 한인목사들이 있다고 한다. 또 성도 50명 이하의 ‘코딱지’만한 영세 교회들은 얼마나 많은가?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만 해도 1마일 이내에 고만고만한 작은 한인교회들이 5군데나 있다. 그 교회들을 바라보며 도대체 어떻게 운영이 되고 담임목사님 가족들은 밥이나 먹고 사는지 깊은 한숨이 나온다. 또 장애인인 나까지 괜히 안수를 받아 목사 인플레, 저가치화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요 몇 주 동안 계속 몸도 아프고 되는 일도 없고 사는 게 힘들어 왜 이 길을 택했나 하며 상당한 회의감이 들었다. 이름만 목사일 뿐 목사로서 합당한 사역도, 권한도 주어지지 않고 자격과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서글플 때가 많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목사가 된 것은 내 뜻과 의자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는다. 지극히 부족하고 연약한 나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디 한 군데라도 사용할 용도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늦은 나이에 부르셔서 당신의 종으로 세우신 것 아니겠는가. 나뿐만 아니라 앞길이 막막해 보이는 수많은 ‘노는’ 목사님들, 당장 문 닫을 것 같은 작고 가난한 교회일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크고 위대한 뜻과 섭리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결코 인간의 섣부른 생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섭리가 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낙심하거나 절망할 수 없다. 현실을 한탄하거나 환경만 탓할 것이 아니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약하고 비상(飛翔)하여야 한다.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무명선수 ‘박만수’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라운드에 서게 될 그날을 위해 열심히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우리 역시 언젠가 하나님으로부터 ‘긴급호출’을 받아 구원투수로 멋지게 활약하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과 기도로 깊은 영성의 날을 ‘정교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성도의 발을 닦아주는 이준수 목사 <페이스북>

아울러, 특별히 장애인 목회자들은 기존 교회에 편입되는 것을 넘어 보다 평등하고 포괄적인 신앙체계의 수립을 위해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말과 고려시대 말기 자신들이 처한 신분적 한계로 인해 권력에서 소외당한 6두품과 신진사대부 계층이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들을 정확히 지적하며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여 개혁의 주체로 나섰듯이, 우리 장애인 목회자들 역시 자신의 육체적,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어 현재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교회제도와 신앙체제를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시스템으로 바꾸는 데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록 이 세대에는 우리가 많은 것을 누릴 수 없고 우리의 진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장차 이 땅을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희망의 작은 초석이라도 놓겠다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맹렬히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항상 현실보다는 영원을 꿈꾸며 하나님이 호출하시는 그날, ‘박만수’처럼 장쾌한 역전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라며...

이준수 목사 (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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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목사1 2018-09-01 02:13:21
결국은 답이 없는 희망고문일뿐...
현실에서 그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내 신앙 지키면서 시간을 버텨내다가 주께서 부르시면
냉큼 달려 가는 수 밖에...
그러한 삶 속에 주님의 알 수 없는 섭리와 뜻이 있음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목회이리라...
굳이 마운드에 오르지 못해도...
주어진 시간을 목회자의 양심을 걸고 버텨내는 것....
신앙의 지조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오늘도 그저 순종하며 따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