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비극과 소망
폴란드의 비극과 소망
  • 최용준
  • 승인 2010.07.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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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지난 4월 10일(토) 러시아에서 일어난 비행기 추락사고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 등 폴란드 지도급 인사 9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슈마이진스키 하원 부의장, 국가안보국장, 군참모 총장, 육해공군 사령관 등 폴란드 최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타고 있었습니다. 이 참사로 폴란드 전국은 갑자기 장례식장으로 변해버렸고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폴란드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인 동시에 애국심이 가장 강한 이들은 70년 전,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4월, 모스크바 서남쪽 카틴에 자리잡은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던 4,000여명의 폴란드인들이 참살 당한 현장의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길이었습니다.

▲ 지난 4월 10일(토) 러시아에서 일어난 비행기 추락사고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 등 폴란드 지도급 인사 9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참사로 폴란드 전국은 갑자기 장례식장으로 변해버렸고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당시 카틴에서 희생당한 사람들도 대부분 폴란드의 지도급 인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치의 만행과는 달리 이 '카틴의 만행 사건'은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폴란드가 2차 대전 이후 계속해서 소련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폴란드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민족적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설상가상으로 카틴의 비극보다 더 큰 비극적인 사건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사회는 큰 혼란 없이 안정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폴란드 국민들이 이러한 충격과 슬픔을 차분하면서도 굳건히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미국 하버드대의 스티븐 월트 국제 정치학 교수는 지난 4월 12일 외교 전문지 Foreign Policy에 기고한 글에서 그들은 "한 개인의 리더십이나 유일 정당의 억제되지 않은 권위에 의해 국가의 안정이 좌우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즉 대통령과 고위 인사들의 갑작스런 사망에도 폴란드 사회는 모든 부분에서 영속성을 가능케 하는 정통성 있는 법과 제도의 체계에 따라 움직여왔다는 것입니다.

월트 교수는 폴란드와 다른 경우로 이라크를 예로 들면서 사담 후세인이 제거되고 집권당이 해체되자 국가 기강이 흔들리면서 치열한 종파 분쟁이 일어났음을 지적했습니다. 후세인의 뜻이 곧 나라의 법이었다가 그가 제거되자 그 공백을 메울 정통성 있는 법과 제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더 깊은 곳에 그 기본 동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힘입니다. 폴란드는 전통적으로 기독 신앙, 그 중에서도 가톨릭이 강한 나라로서 국민들의 경건성이 매우 높은 편으로 유럽에서 가장 신앙이 강한 나라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필자가 오래 전 폴란드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 크라코프(Krakow)에 갔을 때 2차 대전 당시 가장 큰 비극의 현장인 아우슈비츠 강제 노동 수용소와 함께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인 작은 마을 바도비체(Wadowice)에도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았지만 반면에 바도비체에서는 하늘의 소망을 보았습니다. 마침 그 동네 성당에서 미사가 드려지고 있어 들어가 보았는데 집전하는 신부님과 성도들의 예배 자세에 진지한 경건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며 큰 도전을 받았던 적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곳의 교회는 생명력이 있었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의 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의 94%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응답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 89.8%가 가톨릭이고 나머지가 동방 정교(약 50만 명), 개신교도들(15만 명)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약 12만 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신자이든 아니든 간에 전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고 있으며 폴란드의 정신적 유산이자 문화의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의 자유도 1989년부터 헌법에 의해 보장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 교회의 영향으로 심지어 공교육에도 교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7년 조사에 의하면 72%의 국민들이 공립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한편 폴란드의 가장 큰 개신교회는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 개신교회(The Evangelical Church of Augsburg Confession)입니다. 이 교회도 제 2차 대전시에 많은 핍박과 고통을 받았으나 독일 교회의 지원과 자체적인 노력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다시금 활력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거한 레흐 카진스키 대통령도 가톨릭이지만 폴란드 역사상 최초로 지난 2008년 10월 12일에 시에진(Cieszyn)에 있는 개신교회인 예수 교회를 대통령 자격으로 공식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폴란드 개신교인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분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수상을 지낸 후, 2009년부터 독일의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유럽 의회 의장을 지낸 한스 게르트 푀터링(Hans-Gert Pöttering)의 후임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는 저지 부젝(Jerzy Buzek)의장입니다.

비록 폴란드가 그동안 수많은 외침과 고난을 겪었지만 이러한 신앙의 힘이 살아 있기에, 간혹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어떤 국난도 이겨내고 더욱 성숙한 자유민주국가로 발전해 나갈 소망이 있음을 저는 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건국 초기에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이 있었기에 지금 한국 교회와 사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적인 면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때 우리의 조국과 교회 또한 하나님께서 더욱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최용준 / 브뤼셀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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