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교리가 아니라 시장이다'
'문제는 교리가 아니라 시장이다'
  • 김기대
  • 승인 2010.11.16 21:18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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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땅밟기의 원조는?

1974년 8월 한국교회에 기념비적인 행사가 여의도에서 열렸다. 이름하여 ‘엑스플로 '74선교대회’다.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래함을 강사로 열린 이 행사는 주최 측 추산 연인원 350만 명이 모인 대행사였다. 물론 교인들의 열정도 있었지만 그동안 군사 비행장으로만 알려져 있던 여의도의 거대한 광장이 시민에게 개방된 것을 구경하려고 온 탓도 있었다. 당시 여의도 광장은 대형 천막들로 가득 찼고 전국 각 교회에서 모인 교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는 행사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

 

▲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이 대회를 통해 한국 교회에는 몇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난다. 먼저 조용기 목사의 부각이다. 여의도에서 열린 행사로 순복음 교회가 부각된 것이다. 1973년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이전한 순복음교회는 이 행사 때문에 기독교계 주류에 한걸음 다가 설 수 있었다. 또한 주 강사 빌리 그래함보다 더 은혜로운 통역 설교로 김장환 목사가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변방에 있던 조용기와 김장환은 그동안 한국 교회 지도자로 늘 거론되던 한경직(영락교회), 강신명(새문안교회), 강원용(경동교회), 조향록(초동교회)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는 거물로 부상했다.

스포츠신문을 장식한 조영남의 회심

이름도 낯설던 CCC대학생선교회와 같은 선교단체들도 이 행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인기 가수 조영남의 회심과 신학공부를 위한 미국 유학 결정도 이 대회를 계기로 이루어져 엑스플로 '74는 당시 최고의 인기 매체였던 <일간스포츠>에도 다루어지는 사건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한국 교회가 다시 미국의 영향 아래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리 잡게 되자 선교사들은 고아원 같은 사회사업 분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70년대 이후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 조지 오글 목사가 주축이 된 도시산업선교회 등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어쨌든 한국 교회에 대한 주류 선교사들의 영향이 줄어들던 차에 화려한 연설의 빌리 그래함은 그동안 한국말을 더듬거리며 복음을 전하던 볼품없는 선교사들에 비하면 새로운 슈퍼스타의 등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변화였다.

복음까지도 미제가 최고

한국 교인들은 “끊임없는 북괴의 남침 위협”앞에서 “노동자들이나 선동”하는 조지 오글과 같은 목사에 비하면 빌리 그래함의 단문형의 명쾌한 설교 앞에서 복음까지도 미제가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모든 변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 교회가 보수화되고 시장화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거대한 마케팅 이벤트를 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교회 문화를 지배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를 보수 일변도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단선적인 접근이다. 적어도 이 대회 이전에는 보수가 주류였을지언정 일변도는 아니었다. 한기총이 없던 시절 교회협의회(NCC)의 조절능력이 있을 때였으며 함석헌, 김재준, 장준하, 계훈제, 인명진, 안병무 등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 기독교계 인사들의 활동도 두드러질 때였다.

그러나 엑스플로 '74는 한국 교회의 시장화를 가져왔고 기성 교회들은 시장의 법칙에 적응하지 못하며 축소되게 된다. 엑스플로 '74 다음해인 1975년 인혁당이라는 조작된 사건으로 8명이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은 뒤, 바로 그 다음날 사형 집행이 되어버리는 한국 사법사의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

인혁당 사건, 선교사들의 추방

이 사건에 항의하던 조지 오글 목사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추방을 당했다. 그나마 세계 교회와 창구 역할을 하던 이들의 추방으로 한국 교회는 빌리 그래함 스타일의 성취주의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번다고 했던가? 엑스플로 '74를 성공시킨 주축이 한국 내 주류 교단이 아닌 관계로 이들이 목회하는 교회의 성장은 있었지만 한국 교회 전체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온누리교회 전경. ⓒ뉴스앤조이 이승균

바로 이러한 틈새를 공략한 것이 온누리교회와 사랑의교회의 성장이다. 엑스플로 '74를 통해 교회의 시장화가 주류가 된 그 현장에 주류 교단인 장로교 간판을 단 온누리와 사랑의교회, 감리교 간판을 단 금란교회 등이 시장화와 교단의 배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성장을 지속한다.

방송국을 출입하며 연예인을 상대로 전도하던 하용조 목사는 이촌동 강변에 온누리를 개척하며 방송국 쇼를 보는 듯한 예배 형식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온누리야 인정하기 싫겠지만 온누리의 부흥에는 스포츠 신문에 소개되는 신학생 조영남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조영남은 신앙생활이 연예신문의 기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을 졸업한 조영남은 신학 관련 책도 두 권 썼다.

30대가 된 한국형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기존 교회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 하게 된다. 이들 신흥 인텔리들은 제자훈련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적응해갔다. 후발 주자들은 그나마 다양한 종교 문화 속에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라도 공존을 수용해가던 기성교회를 비판하며 ‘선교’를 정면에 내세웠다.

80년대 호황을 거치고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자본주의의 우월성이 잠시 빛을 보던 시절 이들 후발 주자들은 선교라는 미명 아래 경쟁 논리로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선교 단체라는 또 다른 후발 주자들이 중원의 패권을 꿈꾸며 경쟁 시장에 뛰어든다.

땅밟기, 자본주의와 시장 논리의 부산물일 뿐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리고 땅밟기라는 천박한 행사로 한국 교회 얼굴에 먹칠을 한 이들을 꾸짖으려는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한국 교회의 배경을 무시한 땅밟기 비판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 비판하는 이들도 땅밟기라는 것이 20여 년 전부터 생겼다고 말하지 않는가? 거기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있고 그 배후에는 이 논리로 성장한 대형 교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유일신 사상에 기초한 기독교의 배타주의”가 이런 난센스를 불렀다고 주장한다. 미안하다. 틀렸다. 초대 교회는 “교회 밖에 구원 없다”는 말로 그냥 비기독교 세력을 무시했을 뿐이다. 임박한 종말론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초대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내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구원을 받을까봐 오히려 걱정이었다.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타문화와 갈등한 것은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부터다. 다시 말해 유일신 사상이 배타를 부른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정된 니케아 종교회의의 승자(아타나시우스파)의 여유가 사라지면서 부터다. 많은 이들이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배타의 중심에는 “오직 예수”가 있다. 이것을 극복하거나 재해석할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배타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다신교 사상은 배타가 없어서 여러 신들이 혼재하는 힌두교와 이슬람, 시크교는 서로 그렇게 싸우는가?

박노자가 최근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 자세히 나와 있듯이 불교의 폭력성도 만만치 않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던 시절 도교와 불교의 싸움도 피비린내가 났었다. 신이 없이 그들은 무(도교)와 공(불교)으로도 그렇게 싸웠다. 어떤 이는 기독교 제국주의를 말하기도 한다. 기독교 제국주의가 생긴 것은 이슬람과의 갈등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근본주의는 유럽에서 불어오던 이성의 칼바람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득을 볼 사람들은?

나는 기독교의 배타주의와 제국주의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기독교만의 현상이 아니고 종교에 상관없이 죄 된 인간이 가진 공통적 본성일 뿐이다. 땅밟기 사건의 호들갑스런 보도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인가? 바로 그들이다. 짐작 컨데 그들은 언론의 비난 속에 지금 순교자적 착각으로 상당히 들떠 있을 것이다. 예전에 밤에 몰래 단군상의 목을 베던 이들은 시장의 법칙을 모르는 차라리 ‘순진한’이들이다. 땅밟은 이들은 노이즈 마케팅의 법칙에 충실한 교활한 자들이다. 아마도 그 단체를 향한 교회들의 지원도 음으로 양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낡은 LP판 튀듯이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거론되는 관용구들은 이제 그만 쓰자. 교활한 자들은 노이즈 마케팅에 충실한 매체에 고마워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이다. 여전히 대형 교회들의 성장 방법을 벤치마킹하는 이들이 있는 한 땅밟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형 교회에서 품을 파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이들이 있는 한 먹칠은 계속된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배타적 기독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버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장의 논리에 좌우되는 교회

어떤 이는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라고 따끔한 충고를 한다. 그런데 그 분은 한 번도 권력의 힘에 정식으로 맞서 싸운 적이 없는 분이다. 가끔 대형 교회에서 집회를 하면서 그들에게 기독교적 윤리를 실천한다며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기독교에 비판적인 김규항은 자신의 인기 있는 블로그에서 땅밟기 사건을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에서 훨씬 작게 다루어진 조용기의 작은 교회 비판을 비판한다. 김규항에게는 교회가 시장 논리에 좌우되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 사태에 대한 많은 이들의 호들갑을 보면서 김규항의 탁월성에 놀랐다. 땅밟기를 걱정하는 건전한 기독교인이라면 이번에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영화상에 자기 작품 <시>의 평가 거부를 선언한 이창동 감독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그는 거대 보수 신문사가 주는 영화상을 받지 않겠다는 어려운 결단을 했다. 그는 수상의 유혹 앞에서 거대 보수와의 커넥션을 끊어 버린다.

대형 교회의 성장 배후에는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와 전두환의 성장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성장주의 속에서 어린 여공들이 각혈을 하며 죽어갔고 21세기에도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발생한다. 이 연결고리를 모르면서 교회의 대형화를 꿈꾸는 목회자들이 있는 한,  자녀 교육과 세련된 시스템을 핑계로 대형 교회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신흥 인텔리들이 늘어나는 한 땅밟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수평 이동 때문에 성장한 대형 교회들이 땅밟기의 원조가 아니던가?

(2011년 11월 6일 미주 뉴스앤조이에 실렸던 것을 다시 올린 기사입니다)

 김기대 목사 / LA 평화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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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몰라? 2014-07-18 17:21:21
조영남...언제봐두...보믄볼수록....밥맛이 없쪄...

목사님 2010-11-25 07:23:15
좋은글에 늘 감사드리지만 항상 목사님 글에 느끼는 부분이지만 전달하시고자 하는 논지 이외에 많은 예들이 난무하므로 정말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글도 조용기, 빌리그래험, 조영남, 김규항, 게다가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등장한 이창동... 정말 머리속에 온갖 지식들을 랜덤식으로 열거하시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논지가 산으로 갔다가 강으로 갔다가 하는것 같고 글 자체도 난해하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그네 2010-11-21 20:56:20
꽁 잡는 것이 메라는 말이 있지요. 목사의 신학이나 설교가 정말 기독교 신학에 뿌리를 둔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교인을 얼마나 모을 수 있는가, 그 재주로 평가를 받습니다. 뉴저지 에디슨에 위치한 큰 교회 목사 설교도 성공주의를 깔고 성경을 해석하더군요. 답답하지요.

야곱의 목소리 2010-11-20 17:13:43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단 한국 교회의 문제가 엑스플로 74와 관계가 있다는 해석이 일반적인 것인지 묻고 싶군요. 땅 밟기 사건을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는 것은 좀 무리이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본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갈 때도 있겠지만요.

양대규 2010-11-18 17:40:44
윽, 오타. 마이너한 지정(X) ==> 지적(O)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