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례식도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을까"
"나의 장례식도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을까"
  • 박경환
  • 승인 2007.06.19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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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고 김영환 조숙연 부부 추모예배 및 환송예배, "선교에 열정적" 회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했던 분들’,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언제나 밝은 웃음을 보이셨던 분들’. 사람들은 고 김영환 조숙연 부부를 그렇게 기억했다. 환송예배에 참석한 한 교인은 “나의 장례식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만큼 부부가 남긴 이 땅 위의 마지막 발자취도 그들의 삶처럼 아름다웠다.

▲ 추모예배와 환송예배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픔 못지않게 하늘 소망이 가득한 예배였다. (사진 제공 코넷)
지난 8일(금) 저녁 7시 레스트랜드에서 있었던 추모예배는 조용히 붐볐다. 예배당과 로비와 통로를 메우고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모인 수많은 조문객을 보면서 고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빛내리교회 박형은 담임목사의 집례로 진행된 예배의 분위기는 분명 안타까운 임종으로 인한 아픔이 있었지만 절망적이지 않았고 도리어 따뜻한 느낌이었다 .

예배 순서 중 자녀들이 조사를 대신해 준비한 슬라이드를 통해서는 고인들의 삶을 다시 되짚어가며 그들이 남긴 영적인 유산을 되새길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대로 슬라이드를 통해 본 그들의 삶은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기쁨과 감사로 넘쳤다. 열심으로 이웃과 교회를 섬겼고 선교를 위해 헌신했던 고인들의 삶은 참석한 모두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큰 도전을 안겨주었다.

예배가 끝나고 한 사람씩 유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이 되자 많은 조문객들로 긴 줄을 이루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애써 참으며 인사하는 자녀의 모습은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조문객과의 인사가 다 끝나고 나서야 아들 김한수 씨는 “두 분이 정말 돌아가셨나 보다”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이에 장녀 김한나 씨는 “천국에 계신 부모님이 슬퍼하실 테니 울지 말자”며 함께 부둥켜안고 서로를 위로했다 .

이튿날인 9일(토) 오전 10시에는 빛내리교회에서 환송예배가 있었다. 박한규 목사의 집례로 진행된 이 예배도 전날의 추모예배와 마찬가지로 많은 조문객들이 자리에 함께했다. 박 목사는 설교를 통하여 “개인적으로 형님을 한 분 잃었다”며 가까이에서 함께 해왔던 고인들의 삶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나누었다 .

환송예배 후 장지인 레스트랜드로 이동했다. 며칠 전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폭우가 무색하도록 날이 너무나 맑고 화창했다. 두 개의 관을 나란히 두고 치러진 하관예배는 김경록 목사가 집례했다. 조문객들은 마지막으로 관 위에 꽃을 올려놓으며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하관하기 전, 이제 돌아가도 된다는 레스트랜드 관계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싶다는 자녀들의 뜻대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고 김영환 집사의 모친 이정숙 권사의 흐느낌을 마지막으로 유가족과 조문객들은 장지를 떠났다.

▲ 고인은 유난히 선교에 애정을 가졌다.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 모처럼 난 메모리얼데이 휴가를 이용하여 교회 청년부를 따라 오클라호마 인디언 선교 답사를 다녀왔다. "아이처럼 기뻐하셨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사진 제공 코넷)
현재 장녀 김한나 씨는 삼성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달라스 통신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동시에 인터콥이라는 선교단체의 달라스 지부 대표간사로 섬기고 있다. 고인들은 인터콥의 선교훈련 프로그램인 비전스쿨을 통해 선교에 헌신했다고 한다. 김한나 씨는 “우리(김한나, 은선 자매)가 작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왔을 때 얼마나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셨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 김영환 집사는 집사 안수를 받자 마자 교회의 선교부로 자원하여 들어갈 만큼 고인들은 선교에 특별한 열정이 있었다. 평소 고인들은 직접 선교를 가고 싶어했는데 직장 관계로 긴 휴가를 내지 못해서 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 모처럼 난 메모리얼데이 휴가를 이용하여 교회 청년부를 따라 오클라호마 인디언 선교 답사를 다녀왔다. “아이처럼 기뻐하셨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장녀 김한나 씨에 따르면 고인들에게 마지막 주일이 된 6월 첫 일요일에 김 씨 부부는 마치 마지막을 준비라도 하듯 몇 가지 인상적인 일들을 했다고 한다. 한 예로, 인터콥 선교단체를 섬기는 하재준 홍성숙 간사 부부를 만나 점심을 같이하면서 “빛내리교회에서 비전스쿨과 선교예배인 월드미션(열방을 향한 예배와 기도모임)을 시작하자”며 “교회의 선교 부흥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격려했다. 또한, 평소 친분이 있던 같은 교회 이상헌 집사에게는 청년부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김한나 씨는 마치 남은 힘을 다해 빛을 발하는 촛불처럼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하신 것 같다고 회고했다.

▲ 이번 일을 통해 달라스 한인 사회 전체가 어려움을 함께하며 아픔을 나누었다. (사진 제공 코넷)
이번 일을 통해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던 것은 달라스 한인 사회 전체가 어려움을 함께하며 아픔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고인들이 섬겼던 빛내리교회에서 장례 비용을 후원했고 이 교회의 김천식 집사는 자신의 장지를 제공했으며 여선교회에서 식사 및 부주를 도왔다. 삼성 텔레커뮤니케이션에서도 전사적인 모금 운동을 펼치고 고인의 장례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법인장과 연구소장을 비롯한 전 직원들이 세밀한 배려를 했다.

장례식에는 달라스 외에도 미주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했다. 장녀 김한나 씨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어떻게 다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부모님이 남기신 소중한 영적인 유산을 이어받아, 이제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겠다”는 자녀들의 굳은 다짐을 통해, 벌써 고인들의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 이 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와 기사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코넷>(http://www.thekonet.com)에 실린 것을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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