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그리스도인
민주주의와 그리스도인
  • 최태선
  • 승인 2019.07.16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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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의 유해는 결국 찾지 못했다. 유해들을 화장하여 먼 바다에 버렸다는 최근의 보도를 보았다. 못 찾을 수밖에! 천인공노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른 부분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들이 왜 유해를 태워 먼 바다에 내다버리는 수고를 하였는가. 물론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 증거를 없애려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북한과 같이 공산주의자였다면 구태여 유해를 불태워 먼 바다에 버리는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 유해들을 전시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경고라는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유해를 그렇게 은폐한 것은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로 자신들을 위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주주의에서는 그렇게 사람들을 이유 없이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증명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절에 사람들이 잡혀가 영원히 사라진 이야기들을 다 알고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독재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어려운 것은 독재가 불가능한 정치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연륜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역시 치러야 할 과정이라는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본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페이크뉴스와 태극기부대다.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폭력과 무질서가 못마땅하고 불편하지만 그건 이제 새롭게 열린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겪어야할 과정이며 치러야할 대가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건 그들의 못 말리는 사대주의이다.

도대체 성조기를 흔드는 건 무슨 연유인가. 다윗의 별을 흔드는 건 차라리 희화인가. 거기에 기독교의 비극이 담겨 있다는 걸 그들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자신들을 이용하는 일본의 극우들을 보고도 반성은커녕 신나 하는 그들의 모습은 큰 힘만을 신봉하는 사대주의 이외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독립문 앞에는 영은문의 주초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을 맞아들이던 모화관(慕華館) 앞에 있던 일각문(一脚門)의 주춧돌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문의 이름이 영은문(迎恩門)이다. 황제의 은혜를 영접하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새 임금이 즉위하여 중국사신이 조칙(황제의 전언과 명령)을 가지고 오면 임금이 친히 모화관까지 나오는 것이 상례였다. 

1407년(태종 7)에 송도의 영빈관을 모방하여 서대문 밖에 모화루를 세웠다가 1430년(세종 12)에 모화관으로 개칭하여 그 앞에 홍살문을 세웠다. 1537년(중종 32)김안로(金安老) 등 3정승이 뜻을 모아 모화관 남쪽의 홍살문을 개축하여 청기와를 입히고 영조문(迎詔門)이라는 액자를 걸었다. 1539년 명나라 사신 설정총(薛廷寵)이 칙사가 올 때에는 조(詔)ㆍ칙(勅)과 상사(賞賜)를 가지고 오는데, 영조문이라 함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고 영은문(迎恩門)이라 써서 걸도록 하여 이에 따라 이름을 고쳤다. 그러니까 영은문은 중국 측의 요청으로 황제가 내리는 재물(상사)을 은혜로 받으라는 것이며 그것은 곧 조선이 중국의 속국임을 명심하라는 일종의 다짐이었다.

청일전쟁 후인 1896년 모화관은 사대사상의 상징물이라 하여 독립관(獨立館)이라 고쳐 부르고, 영은문을 헐고 독립협회 주도로 성금을 모금하여 독립문을 세웠다. 

나는 태극기부대와 친일파들이 독립문 앞에서 우리 민족의 과거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원하던 독립이 성조기를 흔들고 일본의 아베를 두려워하는 자신들이 훼손하고 있다는 이 처참한 현실을 목도하기를 바란다. 

영은문과 관련하여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중국에서 오는 사신은 대개 조선 출신의 고위 환관이었다. 그들을 환영하고 대접하기 위해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생이 차출되는데 기생들은 자신이 차출되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시도했다고 한다. 환관인 중국 사신이 정상적인 성행위를 하지 못하기에 그가 행하는 성적놀이는 너무 가학적이었고 그 수치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수모를 당하던 기생이 조선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대주의의 진면목이라고 확신한다. 얼마 전 판문점에서의 3자 회동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소외되었던 것이 약과라는 걸 모르고 오히려 그것을 지적하는 건 사대주의에 빠져 자신을 미국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아베의 경제보복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가는 우리 민족의 전정한 독립을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려움과 혼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독립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베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차선의 최선을 구하는 곳이고 민주주의는 바로 그 최선의 차선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정치제도이다. 그 민주주의가 바야흐로 한국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경제식민지로부터의 탈피라는 우리의 독립에의 의지를 불태우고 그것은 애초에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나는 차제에 태극기부대 분들도 사대주의에 빠진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서 돌아서 나와 도도하게 흐르는 진정한 독립과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게 되기를 바란다.

목사로서 나는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하나님 나라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하나님 나라 정의에 부합되는 정책을 선택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때로는 이끌고, 때로는 협조하고, 때로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저항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희생양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는 길에 선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태선목사 / 본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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