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하고 열등한 집단
미개하고 열등한 집단
  • 박충구 교수
  • 승인 2019.07.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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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의 책읽기를 “일본의 죄악사“로 정하고, 정독을 한 후 정리하면서 내 마음에 남는 생각은 '일본인들의 특수한 도덕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라는 숙제였다. 물론 책의 저자들도 이 문제를 고심한 것 같았다. 조선을 700년동안 대대로 노략질을 하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인을 무수히 죽이고 코를 베어가며,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인들에게서 인간애적인 가치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본도로 단칼에 사람 목을 쳐 죽이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조선인의 목을 베어 늘어놓고 즐기기도 했다. 사람의 코를 베어다 소금에 절이는 족속이니 무엇을 더 말하랴. 명성황후 시해에 관한 기록은 오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근대 역사의 참혹한 한 페이지가 되고 있다는 것에 나는 경악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주한 일본 대사 미우라 고로가 벌인 “여우사냥”이라는 이름의 작전에 의하여 칼을 든 무사 20명이 황후의 숙소에 난입하여 칼로 옆구리를 베어 시해하고 황후를 차례로 강간했다. 그러고 나서 황후의 시신의 얼굴부터 발끝까지 칼로 난자했다. 공식적인 기록에는 “... 황후를 끌어내고 두세 군데 도상을 입히고 또한 발가벗겨 국부검사를 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천인공노할 짓이다. 그것도 모자라 명성황후의 가슴을 도려내고 시체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 한다. 증거를 감추기 위해서다. (181쪽).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서 이런 사실을 조선은 은폐한 것일까. 일본인들은 도대체 어떤 심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조선 여성을 끌어다가 집단 강간도 하고, 조선의 국모를 죽이고 욕보이고 불태울 수 있었을까.

"일본의 죄악사"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일본인의 집단 정신 병리적 현상은 일종의 사회 불안(social anxiety)증세(346쪽)다. 지진과 쓰나미의 위협을 받는 섬나라 사람들이 가진 불안심리가 다른 나라에 제 2의 일본을 건설하려는 욕망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이어령이 지적한 바와 같이 소토(확대)지향주의, 거대주의, 팽창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며, 이런 욕망이 사무라이적인 충성과 죽음의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저자들은 일본인들이 성가학증(sadism)적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집단 성폭행과 윤간을 부끄러움 없이 자행하는 일본인들의 심리가 일종의 정신적 질병처럼 일본인들을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에게서 소유가치를 넘어서는 존재가치에 대한 철학적 빈곤의 문제도 지적했다. 이에 더해 저자는 일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개인윤리와 집단윤리의 거리를 지적했다. “개인의 친절 온유, 다감함과는 별도로 집단으로서의 폭력과 잔혹함이 아무렇지 않게 공존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348쪽)”이라고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인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죄의식이다. 사무라이 문화의 가학성과 천황숭배 문화가 개인의 소중함을 극소화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천황까지 그 뿌리가 이어진 일본사회의 남성 중심주의가 부른 여성 차별의 결과(350쪽)”라고 보았다. 하지만 남존여비 사상이 있다하여도 일본인처럼 조직적으로, 집합적으로, 지속적으로 여성의 성을 유린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요소들을 동원하여 일본인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도 여전히 미진한 것이 있다. 도덕적 우월성과 인간애의 높은 가치를 지니지 못한 일본인들의 습성 그 자체가 그들로 하여금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정직한 용기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저들에게는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죄의식이 없을까? 이 이유를 종교 문화사적으로 밝힌 책이 있다. 고스케 고야마가 1986에 쓴 “후지산과 시내산“(Mount Fuji, Mount Sinai)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고야마는 일본인들의 죄책감의 결여는 그들의 종교문화에서 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종교는 보다 나은 인간을 향한 도덕적 갱신을 요구하는 신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종족 신으로만 기능하는 데에서 회개와 갱신의 요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과연 지난 700년간 이웃나라인 조선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이유가 초월을 모르는 그들의 종교 때문일까? 그들의 사무라이 문화가 남긴 생명경시 사상과 적대문화, 그리고 그들의 종교에는 타자성을 결여한 신관으로 인하여 회개와 갱신의 요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죽음에 관한 책을 쓰면서 한 때 나의 관심이 죽음의 역사와 문화에 자연스럽게 접속되었다. 기록이 없는 고대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에 관한 자료는 남겨진 그들의 유골이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이나 페루의 친체로 유적지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서 내가 원시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퍽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원시인들이 가졌던 최소한의 윤리는 개인의 소중함보다는 집단의 생존이라는 가치였다. 고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들은 자기 집단의 생존을 위하여 명료한 두 가지 가치관을 가졌다. 첫째는 자기 집단에 충성하는 일이다. 충성은 자기 집단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개인보다 집단의 우선성과 자기 집단을 향한 충성과 호혜성은 원시 집단의 생존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원시집단의 특징은 타방을 향한 적개심과 증오를 키우는 것이다. 원시 집단은 강함이란 증오감을 의미하고, 타방을 향한 잔혹한 행위도 불사하는 것을 용기라고 가르친 것이다. 특별한 살해 수단이 없었던 그 시기에 원시집단이 상대를 단시간 내에 죽이는 방식은 두개골을 함몰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원시족속의 습속을 연구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건장한 남성의 유골은 대퇴부가 깨졌거나 함몰되어 있었다. 그 시대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이웃집단의 습격을 받아 살해당했다. 원시집단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하여 일말의 양심이나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상대를 죽이고 빼앗아야만 한다는 증오와 살해의 윤리를 사회규범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방의 남성은 때려서 죽이고 타방의 여성은 성적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삼았다.

미개인의 윤리는 타방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무라이, 신토이즘, 섬나라의 불안, 소유와 존재의 철학 등등으로 일본인들을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요소들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이웃의 아내를 겁탈하고, 이웃을 것을 빼앗고, 이웃의 생명을 함부로 죽이고, 이웃의 문화를 약탈해 가는 일을 700년 동안 지속하는 족속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 어려움은 저들이 인간이라는 전제를 버리기 어려워하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괴로움이다. 이웃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품위 있고 아름다운 인간이 아니라 미개인이다. 사람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하고, 조선의 정기를 끊겠다고 쇠말뚝을 박는 이들이 미개인이 아니라 문명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단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 국가주의, 종족주의에 대해서는 나는 언제나 반대다. 그러니 이 글을 일종의 종족주의나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쓴 글이라고 평하지 말아 주시기를 바란다. 아니 그런 평을 하려면 먼저 "일본의 죄악사"를 읽은 후에 하시기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의 불행은 미개한 이웃을 둔 데에서 연유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부 친일주의자들이 조선말기 왕실이나 관료들의 무능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 혹은 일제가 조선인을 괴롭히고 매질할 때 그들의 손으로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 앞잡이들을 내세웠다는 사실, 미일의 간교한 협약의 역사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무능하거나 비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미개인이었던 까닭이다.

현대 일본인 73%가 혐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성능 좋은 자동차와 카메라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현대 세계에서도 그 미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수 백년 동안 이웃을 땅을 탐하며 이웃의 것을 빼앗고, 이웃을 죽이고, 그의 아내와 딸을 집단으로 범하고서도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 인간이라면, 그저 한없이 미개하고 열등한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박경리 선생도 "일본인에게는 격을 차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격을 차리면 오히려 얕잡아 본다”고 하신 것이 아닐까?

박충구 교수 / 전 감신대 기독교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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