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트위터로 극명하게 드러난 SNS의 한계
대통령의 트위터로 극명하게 드러난 SNS의 한계
  • 권영석 목사
  • 승인 2019.08.16 00: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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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가 어느 새 13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이제는 트위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널리 사랑받는 매체가 되었다 하겠습니다. 트위터와 유사한 SNS 앱들까지 포함하면 지구인 전체가 어느새 SNS 없던 시대를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새]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며, 트위터나 페북을 중단하기란 금연을 실천하는 것처럼 어려워져서 섣불리 중단하려다간 도리어 금단 현상에 시달릴 수도 있다 하겠습니다. 가히 사이버 시대가 도래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13살이 된 신생 매체가 지니는 특성과 한계를 충분히 인지하기까지는 아직은 좀 더 지켜보아야 하겠으며, 자칫하면 SNS의 유용성보다 SNS의 악용으로 인한 폐단과 부작용이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최근 트위터에 올린 트럼프 대통령의 망발이 세계적인 망신거리로 회자하면서 "트위터 정치"는 이제 종말을 고하도록 해야 함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특히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는 생각해 볼수록 참으로 무책임하고 또 가히 폭력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동료 시민을 향해서도 쓰지 말아야 할 망발을 일국의 대통령이 그것도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국민을 대표하는(Representative) 국회의원을 향해 "Go back to your home country"라고 하거나 흑인인 커밍스 의원의 선거구인 발티모어를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없는 "Rat and rodent infested mess"'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자신의 트위터에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 체] 버젓이 공표하였으니 말입니다.

지난 몇 주일간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쏘아 올린 트위터(새 소리)가 엄청난 토네이도(회오리바람 소리)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물론 대통령이 날린 트위터의 내용이 워낙 휘발성이 큰 이슈(인종차별)였기에 더욱 그리하였겠습니다만, 내용과 별도로 트위터란 소셜 네트워크가 지니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이런 생뚱맞은 현상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반복되고 있는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만일 이런 트윗이 차기 대선을 겨냥하여 미리부터 계산적으로 포석하기 위한 노림수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트위터가 인간의 욕심과 악한 동기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하는 사례라 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SNS는 글을 올리는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은 다중(多衆)이란 점입니다. 한 사람이 무대 위에 서 있고 나머지는 전부 무대 아래서 그 사람에게 집중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친구만 해도 기백만이라고 하니, 게다가 리사이클할(퍼나를) 경우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들까지 감안하면 삽시간에 일 대 전부(다)의 소통 구도가 생겨나게 됩니다.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다면 힘 안들이고 전 세계인들에게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이 바로 SNS인 셈이지요. 이런 힘을 싫어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더구나 굳이 이런 영향력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할 정치인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인터넷 기술을 이용한 [기술적 내지 기계적/중립적인] 손쉬운 파급 효과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깔려있는 이런 사회-심리적인 효과 때문에 사람들은 SNS에 매혹되는 것이 아닐까요?

한 순간에 그리고 적어도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만인 앞에서 독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자신의 말/글이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는 느낌은 사실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범인들이 대중 앞에서 언제 한 번 마이크를 잡아볼 수 있겠으며, 어떻게 뉴스 속보에 얼굴을 디밀 수가 있겠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SNS가 손쉽게 달성하도록 한 셈이며, 친구들의 숫자 면에서는 역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겠지만 적어도 플랫폼이 제공하는 페이지의 크기와 형태는 만인 평등으로 꼭 같은 크기의 지분/지면을 가지고 있으니 이 또한 매력적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현대 사회에서는 가급적 자신을 드러내고, 가능한 한 목소리를 높이고, 일방적일지라도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 대접을 받고 뭔가 정체감/존재감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지라, SNS야말로 현대 사회의 요구에 딱 맞아 떨어지는 소통 수단이자, 자기 부양의 도구로서, 그것도 큰 돈 안들이고도 누구든 접근 가능한 매체로 등극하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어쩌면 SNS 자체가 지니는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겠지만, SNS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이는 일종의 사회 심리적 정체감의 일부를 형성할 만큼 마술적 내지 주술적인 힘을 행사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효율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면 비난 받아야 할 이유가 없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자긍심의 고양책이나 자신이 지닌 힘과 영향력을 실제보다 더 증폭시키기 위한 부양책으로 활용된다면,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기만에 빠지거나 반대로 사람들을 기망하는 데에 오용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소통 수단의 측면에서도 이는 워낙 신속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어서 진리에 기초한 선한 정보를 소통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지만, 범죄자들이나 악한 동기를 지닌 자들의 손에서 거짓에 기초한 사악한 정보를 확산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기에 자칫하면 선보다는 악이 그리고 정의보다는 불의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가 되는 지름길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이런 악영향을 차단하거나 금지하기란 그 만큼 더 어렵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거짓[뉴스]도 3번만 반복하게 되면 진리로 둔갑하게 된다는데, 더구나 핸드폰 화면에 말쑥하게 정돈된 상태로 [그것도 때로는 합성 사진과 함께] 떠돌아다니는 정보 가운데서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지요. 아마도 이 때문에 현대의 스마트 사회에서 가짜 뉴스를 근절하기란 그만큼 더 어렵게 된 것이 아닐까요? 사이버 수사대의 덩치가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거의 빛의 속도로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스마트-하는' 것을 따라 잡기란 기껏해야 사후약방문 수준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SNS가 그저 개인적인 차원의 정보가 아니라, 권위/권력 구도 안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수단으로 남용된다면 이는 곧 권력의 사유화 내지 나아가서는 권력/권위 기구 내의 무질서를 자초하는 주범으로 전락하기 십상일 것입니다. 극명한 예를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서 여러 차례 경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중요한 보직을 맡은 관료들을 트위터 한 줄로 해임 내지 경질시킨다던가, 유색 여성 국회의원들을 마치 매국노로 둔갑시키는 듯한 표현을 대통령이란 대표성과 권한을 이용하여 기백만 트친에게 전달하는 것은 권력의 남용이자 정당한 권력을 사적인 폭력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라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공인으로서 트럼프는 대통령이지만, 트럼프의 트윗은 대통령의 트윗이라기보다는 트럼프 사인(私人)의 트윗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이 대통령의 트윗이 되려면, 국민을 대표하는 법률과 정책에 의거하여 미국(America)의 가치를 고양하고 미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지 아닌지를 면밀히 살피기 위해 국무회의를 거쳐서 수렴하고 또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전달해야만 하는 법입니다. 작금의 해프닝에서 드러난 유색 여성 국회의원들을 향해 "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하거나, "Go back to your home town"이라고 한 트윗은 명백히 반미국적(Un-American, 즉 United States을 이루기 위한 Unity가 아니라 Un-unity)인 발언인 셈이니, 아마도 역사 속에 이런 해프닝도 드물 것입니다.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그 국민을 서로 이간질하고 마음에 안 드는 절반을 쫓아내려 한다면, 이는 대체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지, 이러고서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대통령을 계속해서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되는 것인지, 그야말로 헛갈릴 수밖에 없으며, 행정부 내의 위계질서는 엉망진창이 되고 권력을 사유화한 독재자 한 사람 이외의 모든 관료들은 그저 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심부름하는 하수인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얼마 안가서부터 인사경질이 계속 자행되더니 이제는 거의 예스맨만 남았다고 하는 소문이나, 관료들은 출근하기가 무섭게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친 사고를 확인하고 수습하기에 급급하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어느 시점에선가는 SNS를 이용한 이런 은밀한 권력의 사유화를 견제해야 할 것이며, 만시지탄으로 이미 임계점에 도달하였다는 조짐들이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난 마당에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공적인 권력, 즉 위임된 권력 구도에 위치하게 된 자들은 사적으로 SNS를 이용하여 공적인 직책 수행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한 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공적인 의견 수렴 절차도 있고 소통을 위한 권위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는데도, 굳이 SNS를 통해 사적으로 소통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만일 그 이유가 정말로 국가적인 위기상황이나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위해 긴급히 알려야 할 필요 때문이라면, SNS가 지니는 장점인 소통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십분 활용하는 것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겠으나, 사적인 의견이나 정서를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것은 본인의 의도가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트윗을 접하는 사람들의 인식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왜곡되거나 남용되는 방식으로 전달되어서 국가 전체의 기강을 도리어 해이하게 하거나 심하게는 공적인 기구로서 [행]정부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나아가서 국가로서 일체감을 상실하여 결국 정부의 기능 자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권위를 위임받은 사람(정치 권력자나 경제 권력자)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권한 행사가 정녕 권한을 위임해 준 사람들(국민)이 정해 준 가치와 기준(대표적으로는 헌법에 명시된)에 부합한 책임있는 언행이 되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게다가 신속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SNS까지 동원하여 그 힘을 [사적으로] 극대화하게 된다면, 이는 가치를 중시하는 섬김의 정치, 하나됨의 정치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힘의 정치, 성취 중심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 쇼맨십의 정치로 변질될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이며 그런 만큼 부패할 위험부담도 더 커진다 하겠습니다.

단지 공직자들은 권력의 남용을 스스로 경계하고 공사를 구별하기 위해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트윗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SNS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 상, 이는 힘의 논리를 극대화하고 힘을 사유화하려는 경향이 불가피하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향해서는,] 자기 이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무대 아래서 자신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관객처럼 인식하도록 부추기는 나르시즘적 속성을 띤다면, [다른 트위터들을 향해서는,] 그저 수많은 트친 중의 하나일 뿐 건성으로 훑어보고 넘어가[도 되]는 방관자적 대상의 하나일 뿐 인격적 교감이 가능한 소중한 친구로 인식하는 것이 도리어 더 어렵게 되고 맙니다. 이처럼 상호 이율배반적인 SNS의 속성으로 인해 사용하면 할수록 더더욱 자기중심적이 되고, 더더욱 독단적이 되는 경향이 생겨난다고 하겠으며, 이 때문에 가능한 한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의미 이상으로 사회 심리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SNS를 남용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보의 진실성/검증성과 정보공개의 동기를 더욱 철저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피해와 상처를 확산하는 양날의 검과 같다 하겠습니다. 적어도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여서 공적인 직책을 이용하여 사적인 명분이나 이익을 챙기기 위해 SNS를 남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에 자동차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개인의 신분이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월세 방에 살망정 자동차는 최고급을 타고 다녀야만 하는 우스꽝스런 인생을 선택하는 이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혹 SNS의 사회 심리적 특성에 매료되어 트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면서 알맹이보다는 껍데기에 주목하면서 일생을 끌려 다닌다면 안 될 말이라 하겠습니다. 더구나 공과 사를 구별 못하여 자신에게 위임된 권한을 자신의 SNS에 덧입혀서 함부로 휘둘러 댄다면, 이는 자신의 인생만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위임해 준 사람들을 도리어 기망하는 적반하장이 될 것입니다. 위임된 권위를 사적으로 남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권력의 남용/배반이라는 것이며, 바로 여기서부터 부패한 권력 곧 독재의 싹이 돋아난다 하겠습니다.

새로운 소통의 매체로서 SNS의 순기능을 십분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다지고 유익한 정보도 손쉽게 공유하며, 선한 영향력도 확산하고, 또 부수적으로 관계망도 넓히고 심지어 사이버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을 문제 삼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이 무대의 중심에 서 보기도 하고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유용성을 부정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주객이 전도되어 SNS의 사회 심리적 특성에 기대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여기다 걸려 하거나 뭔가 작위적으로 인기를 유발하거나 쇼맨십의 무대를 조성하기 위해 SNS를 남용하려 든다면, 이는 뭔가 정상적인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되고 유용한 정보와 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소통하기 위한 도구여야지, 결코 자신의 주장을 과시하거나 영향력을 증폭시키기 위한 [독]무대로 SNS가 오남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트위터와 정치란 애초부터 가당찮은 조합이며, SNS가 자칫하면 정치를 돕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치를 효과적으로 망치고 부패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정치판 자체가 온 국민이 주목하는 무대인 셈인데, 별도의 독무대를 따로 만드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일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대변인도 있고, 국무회의를 통해서든 담화문을 통해서든 얼마든지 자신의 소신과 애국심을 정책에 담아낼 수 있는데, 굳이 아침부터 트위터에 들락거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국회의원들의 반국가적 언행을 문제 삼으려면, 정식 절차를 밟아서 문제를 제기하면 될 일인데, 굳이 개인적으로 직격탄을 쏘려다가 결국 역으로 직격탄을 맞고 말지 않았습니까?!

트위터가 비록 유용한 소통의 도구이긴 하지만 결코 만능이 아닙니다. 특히 국민 전체의 민의를 수렴하고, 그에 기반하여 정책을 세우고,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다시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행]정부는 일종의 관료 조직 체계이기 때문에 위계를 무시한 채 일대 다수의 독무대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SNS 앱으로 메인 소통의 역할을 대체하려 하거나 대체하는 결과가 야기되도록 방치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정치는, 당장은 지지자들에게 달콤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을 위대하게 하기는커녕 자신의 한계와 미성숙함만 더욱 신속히 확산하는 역효과를 거둘 것입니다. 트럼프 트위터를 현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도 정부 관료들조차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다행히] 더 많은 게 현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험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인간이 발명한 문명의 이기가 늘 그렇듯이, SNS 역시 양날의 검과 같아서 함부로 쓰다간 도리어 안 쓴만 못하여서 더 크게 다치고 맙니다.

권영석 목사 / 전 학원복음화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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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2019-08-16 22:49:48
뭔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