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이 김근주 교수 강의를 막는 방식
예장합동이 김근주 교수 강의를 막는 방식
  • 강태우 기자
  • 승인 2019.10.10 17:42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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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강태우 기자] 지난 9월에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장 김종준 목사) 104회 총회에 '느헤미야기독연구원'의 김근주 교수에 대한 헌의안이 올라왔다. 대구수성노회 노회장 곽양구 목사는 “김근주 교수가 동성애, 동성혼을 조장하고 비성경적 신학 강의를 하고 있다. 본 교단 산하 소속 모든 노회와 지교회에서 특강을 금지해야 한다”는 헌의를 올렸다. 총회 현장에서는 “담임목사와 당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결의했다.

노회는 어떤 내용을 근거로 김근주 교수가 동성애, 동성혼을 조장하고, 그의 강의가 비성경적이라고 판단해서 이러한 헌의안을 올렸을까.

곽양구 목사에게 헌의안을 올린 배경과 이유를 물었다. 곽 목사는 “대구수성노회에 속한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담임)가 노회에서 제안해서 헌의를 올렸다. 나는 잘 모른다. 구체적인 것은 답변하기 곤란하다”라고 했다.

신학자의 신학 사상에 대해서 총회에서 다루자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노회 회원이 제안하니까 그걸 총회에 올렸다는 것이다. 총회에서도 이 헌의안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도 없었고, 토론도 전혀 없었다.

곽 목사는 “총회는 안건이 많다 보니 총대가 특별히 관심 있는 헌의안이 아니면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그리고 총대들은 정치부나 신학부에서 논의된 것으로 생각하고 특별한 논쟁이나 반론 없이 통과된 것 같다”라고 했다. 헌의안을 올린 본인뿐만 아니라 총대들 역시 관심사가 아니었을 거라는 대답이다.

헌의안을 만든 대구수성노회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연구 보고서나 자료가 있을까 확인해보았다. 노회 담당자는 “그와 관련된 어떠한 서류나 연구보고서는 없다. 총회 헌의안이 전부다. 권성수 목사가 노회에서 발언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김근주 교수 특강 금지 헌의안을 제안한 권성수 목사에게 전화했다. 권성수 목사는 총신대 대학원장을 역임한 학자 출신이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전혀 학자 출신답지 못했다.

권 목사는 “나는 총회에 안 갔다. 이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 총회에 안 갔기 때문에 더 질문하지 마시길. 나는 곧 은퇴할 사람이다”라고 다소 엉뚱한 답변만 내놓았다. 김 교수 건을 노회에 제안한 것이 사실인지 묻자 권 목사는 “아마 그랬을 거다. 그런데 총회에 안 갔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라고 반복했다. 총회에도 자료가 없는 것 같다고 하자 권 목사는 “자료야 여러 사람이 갖고 있지. 내가 가진 것은 없다. 어쨌든 나는 총회에 안 갔기 때문에 그 정도로 하죠”라는 말만 반복했다.

 

[기독연구원느헤미야] 김근주 교수 연구실에서
[기독연구원느헤미야] 김근주 교수 연구실에서

합동 총회의 결정에 대해 김근주 교수의 입장을 들었다.

- 이번 104회 합동 교단 총회의 결의 소식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처음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합동 교단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 상관도 없고 ‘별 걸 다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폭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합동 교단이 뭐라고 규정을 하든지 저는 제 할 일을 할 것이고 앞으로도 제 사명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저 개인에 대한 모욕이고 폭력이다. 교단이 자기들 맘대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문제다.

특히 한동대 김대옥 목사의 경우 합신 교단과 백석 교단 측으로부터 이단성 판결을 받았는데, 이것은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도 작년에 대부분의 교단으로부터 이단 소리를 들었다. 한국교회의 교단들이 교리랑 상관없이 성경 본문의 해석 문제를 가지고 이단이라고 결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 대형 교단들이 이런 일을 자행하는 것은 횡포고 폭력이다. 104회 합동 교단 총회의 복음주의 6개 단체에 관한 신학 보고서를 보니 대체로 무난했다. 신학이 다르니 주의가 필요하다 정도다. 그러나 신학자도 아닌 이정훈 교수의 ‘청어람’에 대한 신학 평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총회 보고서는 담임목사의 지도를 받으라 말하지만, 일선 노회들은 느헤미야와 교류 금지 등을 이야기한다는 소리가 벌써 들린다. 더 구체적이고 강하게 나온다. 합동이 왜 자꾸 이렇게 좁은 신학에 갇히는지 안타깝다.”

- 이번 총회 헌의안과 관련된 사전에 면담이나 자료 제출 등의 과정이 있었는지.

“전혀 없었다. 합동 쪽에서 이와 관련해서 어떤 연락도 없었다. 나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확인해 보니 대구 수성노회에서 저를 교단 내 특강 금지하는 내용을 헌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수성노회 특강을 간 적이 없는데 다소 이해가 안 되었다. 물론 대구에 소재한 교회에 특강을 간 적은 있었다.”

- 실제로 이번 결정으로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입는 피해는. 그간 합동 교단에서 강의나 설교한 비율은 전체 외부 사역 활동 중 얼마나 되는지.

“반반이다. 통합과 합동이 비슷하다. 합동 교단에 가장 좋은 점이 있다. 몇 해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 교수로 있을 때 월요일 성경 주해 과정을 열었는데 매 학기 지원자 중 90%가 합동 출신 목사들이었다. 합동 측 목사들은 여전히 성경 본문 안에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문 주해에 관심이 많다.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제가 나온 통합은 본문 전달 방식에만 너무 관심이 많다. 합동 출신 목사님들은 정말 말씀을 배우는 데 열심이었다. 합동 교단의 참 좋은 점이다. 그분들은 제가 통합 쪽 목사이고 저의 정치적 입장을 아는 분들이지만, 월요일마다 성경 본문 해석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고 과정을 등록했다. 합동 쪽 지방의 큰 교회에서도 구약 성경 특강 요청이 많았다. 앞으로 합동 교단에서 특강이나 설교 요청이 없을 듯하다.”

9월 23일~9월26일에 걸쳐 충현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장 김종준 목사) 104회 총회
9월 23일~9월26일에 걸쳐 충현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장 김종준 목사) 104회 총회

- 합동 교단 총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자신의 신학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자기 것을 고수하는 것만으로 안 된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실 교단마다 큰 차이가 없다.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다. 다 칼빈주의다.

합동 측이 ‘기독연구원느헤미야’를 조사하면서 주로 살펴본 책이 [칭의와 정의]이다. 칭의를 너무 협소하게 정의하며 자신들이 ‘기독연구원느헤미야와 다르다고 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합동이 마음을 열고 더 교류하고 배우고 나누고 기반을 넓혀 가면 좋은데 너무 협소한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데 그런 협소한 태도로 세상과 대화할 수 있겠는가? 반문하고 싶다. 이해는 되지만 안타깝다.

반드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신학을 하지 않은 울산대 이정훈 교수에게 복음주의 단체인 ‘청어람’을 조사하게 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수치이다. ‘청어람’의 신학적인 문제 연구를 신학자가 아닌 타 전공 교수에게 맡겼다는 것은 코미디다.”

- 이번 합동 교단의 결정에 대하여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특별한 계획은 없다. 그냥 지금처럼 맡겨진 사역을 하며 살겠다. 저를 부르면 어디든지 가서 제가 해야 할 말을 하겠다. 합동 교단 사랑의교회에서 초대해도 갈 거다. 그러나 어디 가든 제가 두 번 설교할 생각을 하지 않고 꼭 해야 할 이야기를 하겠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나눌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어디 가든 누구에게든 나눌 것이다.”

- 최근 한국교회의 보수화를 넘어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정치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정치는 삶이다. 가장 나쁜 것은 정치를 전문가의 손에 넘기는 것인데, 그것은 마귀의 속삭임이다. 정치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타당하다.

그다음의 문제는 우리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성경의 시각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보수 교회는 그동안 정치 참여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는 줄기차게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 이것은 모순(矛盾)이다.

이제라도 보수적인 교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교회 안에서 성경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어떻게 정치에 참여하고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지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는 대부분 극우가 되어 버렸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보수도 전혀 아닌 끔찍한 카톡의 가짜 뉴스에 현혹되었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어떻게 일상 정치를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교회에서 거의 나눈 적이 없다 보니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를 이야기하는 정치인은 적그리스도적이고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 성경 신학자로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정치 참여 문제를 이해해야 하는지.

“바울은 자기 당대에 주님이 올 것을 확신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는 로마제국과 싸움이 관건이 아니라 당장 내일 오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계속 교회마다 연보를 모아 서로 나누며 공동체를 세우며 살았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정말 내일 주님이 오심을 믿는다면 재산을 나누어야 한다. 대형 교회가 가진 재산을 나누어 작은 교회에 흘려보내 평균케 하는 것이 바울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대부분 당장 주님이 내일 올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 시대처럼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독립된 주권 국가에 살고 있다. 신구약 성경에서 독립된 국가로 살았던 때가 언제인가? 바울 시대가 아니라 왕정 시대다. 이때가 지금 우리랑 비교해서 배우기 적합하다. 그럼 예언자들이 왕에 대하여 뭐라고 평가했는지, 예언자들이 임금들을 왜 반대했는지를 바라보고 생각해야 한다. 이게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정치 권력이나 세상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어야 한다.

그럼 당연히 나오는 것이 ‘정의와 공의’다. 시편 72편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임금이 등극하면 읽었다. 거기에 임금이 어떠해야 하는지?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나와 있다. 이런 본문들을 한국 교회가 나누면 좋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국가에 선거가 있는 전 주일에 시편 72편을 설교한다. 한국교회가 모두 선거 전주에 시편 72편으로 설교하면 좋겠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설교를 하면 절대 안 된다. 성도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와 공의를 이해할 때 자기 아파트를 따라서 투표하지 않고, 자기 출신 지역을 따라서 투표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따라서 투표하지 않고, 가치를 따라서 투표할 것이다.”

- 교회에서 성도들의 진보와 보수 등의 정치 성향의 차이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할 것인가.

“저는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주로 고백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길은 겁나 어렵다. 하나도 쉽지 않고 너무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 자체가 많은 추종자가 있을 수 없는 길이다. 정말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저 자신을 봐도 어렵다. 그러므로 정치적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이 바뀌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라면 어느 정당을 지지하던 약자에 대해 긍휼함은 필수이다. 예수님을 만나면 약자에 대해 긍휼함을 가질 수 있다.

전 한국 교회의 우경화에 대한 걱정보다는 약자에 대해 긍휼함이 사라지는 것이 걱정이다. 예전에 할머니 권사님들은 동성애에 대한 논리가 없어도 약자에 대해 긍휼함이 있었다. 이분들이 성 소수자들이 교회에 올 때 가장 눈물을 흘리며 긍휼함을 가질 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본질이 죄인을 사랑하는 주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우경화되었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가? 약자를 혐오하고 배척하고 배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다. 동성애 대처가, 혹은 문재인 정부 반대가 문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긍휼함이 사라졌다는 것이 한국 교회의 문제이다.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다.”

- 최근 통합 교단 총회의 명성교회 세습 수습안 통과에 대하여 같은 교단에 속한 신학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통합은 가증한 집단이다. 여성 목사 안수가 제가 신대원 다닐 때 통과되었으니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통합 총회에 여성 총대가 5%도 안 되는 것으로 안다(2019년 통합 총회 1%(16명/1,500명)). 물론 합동은 여성 총대가 한 명도 없다. 그래도 합동은 신학적 일관성이라도 있다. 통합 측은 여자가 담임목사인 교회도 전국에 100개도 안 될 것이다. 이번 총회 장소가 서울 영락교회에서 포항 기쁨의교회로 바뀌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명성교회 세습을 막기 힘들겠구나!’ 감을 잡았다. 대구·경북 지역은 명성교회의 영향력이 크다. 명성교회의 물질적인 지원을 받은 교회들은 세습을 반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번 총회에서 두 명의 목사 고시를 통과하고 군종 가는 목사 후보생의 안수를 취소했다. 김삼환 목사는 총회에서 말할 기회를 주었다. 반면에 안수 취소된 학생에게는 총회에서 아무런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장신대 교수들은 명성교회의 세습을 막기 위해서 그동안 진짜 노력했다. 그런데 명성교회 쪽에서 장신대는 동성애를 지지한다며 걸고넘어지자 세습 반대에 집중하려고 지난해 무지개 퍼포먼스에 참여한 장신대 학생들을 지켜내지 못했다. 결국 닭 쫓던 개가 되었다. 세습은 결국 통과됐고 두 학생 중 하나는 목사 안수가 취소되었고 한 학생은 자퇴했다. 장신대가 끔찍한 선택을 했다. 두 명의 학생을 지켜내지 못하고 명성교회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이미 명성교회는 한국 교회에서 영향력을 잃었다. 그러나 장신대는 학생을 잃었고 중요한 가치를 잃었다. 장신대가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 장신대가 이 학생들의 가치를 존중해 주었어야 했다.”

- 한국 교회 교단에 희망은 있는가.

“개인적으로 교단에 대하여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다. 그리고 교단의 핵심인 대형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에게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대형 교회도 역할이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저는 오히려 그런 분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대형 교회가 뭔 역할을 했나요? 명성교회와 사랑의교회가 도대체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서 무슨 역할을 했나?” 말썽만 피우지 마라. 사고만 치지 마라. 일선의 작은 개척 교회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소형 교회가 전도하면 대형 교회가 그 성도들을 다 빨아들인다. 개인적으로 대형 교회에 대해서 눈곱만큼의 희망도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떤 교회를 세워가고 어떤 교회를 꿈꿀 것인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이 관심이다. 옥한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우리가 탄 배가 침몰해 가는데 내가 탄 선실이 행복하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대부분 목사나 그리스도인들이 ‘남 욕할 것 뭐 있어! 나 잘하자!’라고 결론 낸다. 물론 ‘나 잘하자’도 필요하지만 내가 탄 선실을 지상천국으로 만들면 무슨 소용이 있나? 배가 침몰하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끝없이 침몰하는 배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지금은 바로 침몰하는 한국 교회를 향해 외칠 때다. 우리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밖에 나와서 한국 교회와 사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규탄해야 한다. ‘남 비판하지 말고 나나 잘하자!’ 하는 사람들, 다 거짓말이다. 다 죽는다. 다 망한다. 대형 교회를 비판하면 그것이 창피해서라도 우리가 다른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신학도들에게 비판의식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대안 없이 비판하지 말라고 하는데 왜 자꾸 젊은 교역자들에게 대안을 말하라고 하냐? 당신들은 이제까지 대안을 만들지 않고 뭐 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자신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고 비판하고 나를 돌아보고 다시 점검하고 다시 비판하고 다시 점검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교수님의 설교와 강의의 주제는 늘 공평과 정의 그리고 하나님 나라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기’, ‘지금’, ‘나는 다른 길을 걷는가?’라고 이해한다.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불러서, 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만나 보니 내가 문제가 많았다. 성경에 담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그만큼, 대학 때는 또 그만큼 복음이 가진 세계를 경험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갈망하고 꿈꾸게 하셨다. 그게 하나님 나라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진짜 소시민이던 나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웠다.

그리고 제 안에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마음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마음들, 성 소수자들에 대한 마음들, 이것은 내 안에 있던 것들이 아니라 복음이 내 안에 세워주셨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정의와 공의’다. 정의로운 삶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초대이다. ‘무슨 내 주제에?’라고 할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저를 이 길로 가라고 초대하셨다. 나는 못 가지만 그분이 나를 그 길로 가게 하신다.”

- 신학자로서 한국 교회가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동성애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동성 성행위가 문제라고 말한다. 신구약 성경은 동성 성행위를 비판한다. 동성 성행위가 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창세기 19장, 사사기 19장에서 ‘낯선 나그네 짓밟기’ 차원이다. 이것은 낯선 여성에 대한 성폭행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구약성경에서 동성 성행위의 배경은 동성애가 아니라 약자 짓밟기가 본질이다. 소돔에서 동성 성행위를 금지하면 소돔이 괜찮아지냐? 그렇지 않다. 그러나 ‘낯선 나그네 짓밟기’를 금지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이 남자와 여자의 동성 성행위를 비판한다. 끝도 없는 욕망, 끝도 없는 탐욕의 맥락 속에 동성 성행위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게이들이 탐욕에 미친 자들인가? 로마서 1장 본문으로 오늘날 게이, 레즈비언들을 접근하기 어렵다. 그런데 오늘날 끝도 없는 욕망으로 죄를 짓는 대표가 이성애자들이다. 어린아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건드리고, 여자들을 성폭행한다. 모두 이성애자들이 저지르는 것이다.

교회가 꼭 필요한 것은 실제로 게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게이들을 만나서 듣지 않는다. 왜 그 사람이 게이가 되었는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만나서 들어보면 공감을 갖고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긍휼함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사람을 만나면 이해가 될 수 있는데 만나지 않는다. 만나서 이야기를 듣지 않고 막연하게 비판만 한다. 교회에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반드시 당사자들을 만나서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 부탁하고 싶은 두 번째 것은 동성애를 깊이 있게 연구하라. 한 교회가 동성애 문제를 결정하려면 먼저 ‘커미티(Committee)’를 구성해서 그 커미티가 6개월에서 1년 동안 활동하며 동성애에 대한 양쪽 의견을 두루 들어보고 실제 게이, 레즈비언의 이야기도 듣고 전문 의사의 이야기도 들어 본 후 동성애를 연구하게 하라. 그리고 연구 후 결과를 나누고 교회 공동체가 공청회를 하고 토의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동성애에 대하여 결정하면 좋겠다. 이런 과정을 거친 교회는 동성애를 반대할지라도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교회 중에 이런 연구와 노력을 하는 곳은 없다.

성경에는 동성애란 단어 자체가 없다.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 성폭행이 나올 뿐이다. 그저 성폭행일 뿐이다. 소돔 사람이 나그네를 성폭행하려고 할 때 결코 동성끼리 사랑한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끌림이 없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나그네를 성폭행했다. 우리 교회가 거짓말하는 것이다. 저는 성경 신학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고 교회 주일날 책상 벌려 놓고 반동성애 서명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전화해서 인권조례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하자. 그럴지라도 현재 차별 금지법이 하고 싶은 것은 게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신천지라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게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거나 조롱을 당하거나 인격 모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일에 앞장서야 하는 곳이 교회여야 하는데 지금 교회는 오히려 반대한다. 우리 구약성경에 우상숭배는 죄다. 그렇다고 같은 회사, 같은 팀에 절에 다니는 사람을 우상숭배라고 비판하고 해고하지는 않는다. 차별 금지법이 말하고 싶은 것은 게이라는 이유로 해고나 인격 모욕을 당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게이들이 결코 부당한 일을 겪지 않도록 법제화를 잘하고, 그런데 만일 성경 본문에 근거해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생각하면, 사랑으로 돌아서게 해야지 차별금지법 반대로 대응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교회와 성도가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성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반인과 똑같은 혜택을 주는 것을 결사반대한다. 이것은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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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2019-12-13 15:16:20
차별금지법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자꾸 금지된 단어가 있다고 제한해서 쓰지를 못하겠습니다.
뭐가 금지된 단어인지 도무지 알 수 는 없지만...
현재 미국, 영국, 유럽의 상황을 보라. 법은 그 조문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조문이 판례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아야 한다. 동성애자 커플의 케이크 주문을 받고 거기에 결혼을 축하한다는 문구를 넣기를 거부한 사람이 당한 고초는 이미 뉴스 기사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차별금지법의 맹점은 동성애자가 당하는 차별을 부당히 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성애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처벌하게 되는 역차별법이 된다.

김정훈 2019-12-13 15:04:35
또한, 성적욕망으로 인한 범죄를 이성애자들만 저지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요즘 가출청소년들 중 남자 아이들이 돈을 쉽게 벌기 위해 동성애에 자기 몸을 던진다는 것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게이가 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독을 끊지 못하는 것은 죄로 인한 성적인 욕망과 쾌락 때문이다. 그들의 욕구에 어떤 이들은 희생을 당하고 있다. 홍석천만 해도 인터뷰에서 자신이 동성애자가 된 계기가 학창시절 당한 성폭행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소돔과 고모라의 파멸에 대해서는 유다서 1장 7절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에서 명백하게 이유를 제시

김정훈 2019-12-13 15:03:48
이 글을 읽다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이 글과 저의 댓글을 읽는 분들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다보니 경어체가 아니어 죄송합니다.

김근주 교수가 동성애에 대해 우리 교회가, 성경신학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성경 내용으로 볼 때 김근주 교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성애가 없다니 무슨 말인가? 자신이 예를 드는 로마서 1장 27절에만 봐도 동성애자들이 서로를 향해 음욕이 불 일 듯 한다고 한다. 동성애자가 서로를 향해 음욕이 불 붙는 것이 동성애이지 그러면 이성애인가? 음욕이 폭행인가?

원성구 2019-11-14 00:52:22
조은성님의 글을 보니, 미국에 장로교단이 하나 뿐 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군요. 조은성님이 말한 미국장로교회는 PCUSA 교단을 말하는 것인 것 같네요. 현재 PCUSA 교단에 소속된 한인교회들이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고, 탈퇴를 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부동산이 교단으로 소속되어 있어서 탈퇴를 하려면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탈퇴를 못하는 교회들도 있고, 과감하게 반납을 하고 탈퇴한 교회도 있습니다. 저는 미국장로교단 PCA 에 소속된 교회에 있습니다.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의 약자죠. PCA 미국 장로교회는 동성애를 반대하고,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말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권진영 2019-11-13 21:21:52
안타깝네요, 소통의 부재로 인해 서로 오해가 많은 모습이... 둘다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