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미국 복음주의
  • 신기성
  • 승인 2019.10.1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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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필라델피아 반이민 개신교 그룹의 아이리쉬 가톨릭 박해를 묘사한 그림. 2곳의 가톨릭 성당이 불타고 약 20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다.(Picture: Historical Society of Pennsylvania)
1844년 필라델피아 반이민 개신교 그룹의 아이리쉬 가톨릭 박해를 묘사한 그림. 2곳의 가톨릭 성당이 불타고 약 20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다.(Picture: Historical Society of Pennsylvania)

[뉴스M=신기성 기자]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지지를 받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정책이 미국 기독교를 박해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Report for America]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븐 월드만은 TPM(Talking Point Memo)에 기고한 글에서 남미 이민자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인데, 미국 보수 기독교계가 이들의 미국 정착을 막고 추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드만은 미국 기독교의 성장을 위해서 서류 미비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남미에서 넘어오는 서류 미비 이민자의 83%가 기독교인이다. 만약 미국 정부가 그들을 모두 추방한다면, 약 9백만 명의 기독교인이 미국을 떠나게 되는 셈이다.

최근 몇 십 년간 남미 이민자들은 미국 가톨릭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체 가톨릭 교인의 40% 정도가 히스패닉계이다. 교회가 자신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 히스패닉 교인 비율이 백인보다 월등히 많다. 복음주의 개신교계도 마찬가지다. 약 1천6백만 명의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히스패닉계이며, 모든 이민자의 15% 정도가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다.

이민자들은 미국 태생의 시민보다 종교와 종교 단체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인 사회도 교회나 성당에 출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한국보다 높다. 이민 사회 한인 공동체가 교회나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정책은 서류 미비 이민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이민 절차도 까다롭게 만들기 때문에 이민 사회의 교회나 성당도 교인 수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에 들어오는 유학생의 숫자가 줄어들고, 미국에서 학위를 마쳐도 취업 비자를 받기 어려워 고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결국 반이민정책의 강력한 지지 세력인 복음주의 기독교계가 기독교인 이민자들을 내쫓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백인 복음주의권의 뿌리 깊은 순혈주의는 미국 기독교 역사에서 이미 여러 차례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냈다. 미국에 처음 들어 온 낯선 교단의 기독교인들은 당시 기득권 기독교인들에 의해 강력한 반발과 차별을 겪어야 했다.

미국 역사 속 기독교 내 갈등과 박해

미국인들은 이민 역사의 시작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필그림의 도착으로 여긴다. 그 이후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던 수백만의 이민자들이 미국에 건너와서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정착해왔다고 배웠다. 하지만 스미소니언의 케네스 데이비스는 이러한 믿음이 날조된 신화라고 지적한다. 이민 사회 내 종교 차별과 학대는 콜롬버스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첫 희생자들은 프랑스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건너 온 칼빈주의 위그노(Huguenot)들이었다. 그들은 1564년 플로리다 포트 캐롤라인(현 잭슨빌)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다음 해인 1565년에 가톨릭 스페인 군대에 거의 전멸을 당했다. 당시 스페인 군대 지휘관은 국왕 필립 2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포트 캐롤라인에 사는 프랑스인들을 전부 목매달았습니다... 그들은 이 지역에 참으로 혐오스러운 루터교 교리를 퍼트리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온 첫 번째 이민자들의 역사는 학살로 얼룩지고 말았다.

반세기 뒤에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반대로 가톨릭을 포함한 다른 개신교를 배척했다. 가톨릭은 이민 초기부터 시작해서 수백 년간 차별을 당했다. 카톤 마더 같은 유명 목사들은 가톨릭 교인들은 재산을 갖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1659년에서 1661년 사이 네 명의 퀘이커 교도들이 보스턴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독립전쟁 승리 후 매사추세츠에서는 개신교인들만이 공무원이 될 수 있었고 가톨릭 교인들은 교황의 권위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후에만 임용되었다. 1777년 뉴욕 주는 가톨릭 교인을 공직에서 배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법은 1806년까지 시행되었다. 메릴랜드 주에서는 가톨릭 교인은 용납되었지만 유대인들은 공직에 나설 수 없었다. 델라웨어 주에서는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은 누구나 삼위일체 신앙을 증명해야만 했다. 매사추세츠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몇몇 주에서는 주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개신교 주립 교회들이 존재했다.

1779년 버지니아 주지사 토마스 제퍼슨은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법적인 평등권을 보장한다는 법안을 마련했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1786년 버지니아 의회가 토마스 제퍼슨의 이 법안을 통과시키며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반가톨릭 정서는 19세기에도 계속됐다. 1830년대에는 아이리시 출신 가톨릭 교도들이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 1831년 뉴욕의 세인트 메리 성당이 개신교인들에 의해 전소되었다. 텔레그래프 발명으로 유명한 사무엘 모스는 1835년에 미국이 “장벽”을 세우지 않아서 다른 나라들이 “그들의 범죄자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적들의 편에 서 있는” 진보 미디어들에 의해 자신과 동지들이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미 이민자들을 대하는 방식과 거의 유사하다.

1844년 필라델피아의 ‘바이블 라이엇(Bible Riots)’은 두 곳의 가톨릭 성당을 불태우고 20여 명의 교인들을 숨지게 했다. 필라델피아 ‘반이민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1844년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서 일어났다. 반가톨릭, 외국인 혐오,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적 감정 등이 결합된 폭력 사태였다. 반이민 그룹은 가톨릭 교인들이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없애려고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아이리시 출신 가톨릭 이민자 증가에 따른 개신교인의 두려움과 분노가 표출된 결과였다. 연방정부는 1천여 명의 민병대를 보내 폭동을 진압했다.

미국 종교 갈등의 역사에서 몰몬교도 빼놓을 수 없다. 1938년 일리노이 주지사 릴번 보그는 모든 몰몬교도들에게 일리노이 주를 떠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는 일리노이 주의 평화를 위해서는 몰몬교도들이 모두 추방되거나 전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이 나온 지 삼 일 만에 민병대 중 일부가 몰몬교인들의 정착지 혼스 밀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몰몬교인 17명을 살해했다. 1884년에는 일리노이 주 감옥에 수감되어 이던 몰몬교 리더 조셉 스미스와 그의 형제 하이럼이 살해됐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1840년대에 반이민 및 반가톨릭 선동의 선봉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아메리칸 파티’라는 정치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노우 낫씽”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렸는데, 사람들이 아메리칸 파티에 관해 물어보면 늘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1854년에 작성된, 아메리칸 파티 가입 지원서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모든 이해단체 혹은 공직 선거에서 미국 태생의 시민만 선출한다. 모든 외국인들을 배척하고, 외국에서 왔든지 미국에서 태어났든지 관계없이 가톨릭 교인은 배척한다.” 아메리칸 파티는 매사추세츠와 델라웨어 주에서 주지사를 당선시켰고 밀러드 필모어라는 대통령 후보를 내었다. 필모어는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에 이어 3위(21% 득표)를 기록했다.

그들은 가톨릭 교인들이 시민과 종교의 자유를 전복시키기 위한 계획을 진행 중이라는 음모론을 퍼트렸다. 따라서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와 정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서 태어난 개신교도들이 정치적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신교인들은 가톨릭 신부나 주교들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갖게 될까 두려워했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존 에프 케네디조차 자신은 교황이 아닌 미국에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선언해야 했다.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은 현 미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인의 세 명 중 한 명은 이민자들이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염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퓨리서치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11%만이 이런 두려움을 느끼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57%가 이민자들을 너무 많이 받아들이면 미국의 정체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인종별로는 백인이(38%), 성별로는 남성이(40%),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에서(42%) 이민자들의 유입을 가장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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