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게 한 성소수자 딸
감독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게 한 성소수자 딸
  • 편집부
  • 승인 2019.11.12 13:1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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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합감리교뉴스]에 기고된 칼럼으로, 저작권자의 동의와 승인 아래 게재합니다. 더불어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 있음을 밝힙니다. 
리처드 윌키감독. 사진 제공, 총감독회
리처드 윌키감독. 사진 제공, 총감독회

약 35년 전, 저와 제 아내 줄리아는 <제자성경공부(Disciple Bible Study)>의 첫 교재를 썼습니다. 그 후로 심도있는 이 성경 공부는 4편까지 출판되었고, 전 세계 3백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최소한 네 편 중 한 편으로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간, <제자성경공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이 성경 공부를 통해 누군가의 삶이 변화되었고, 누군가는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으며, 무너진 결혼 관계를 다시 세웠고, 교회를 치유하여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는 참 기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경 공부 교재를 통해 어떻게 교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셨는지 생각하다 보면, 저는 보람과 더불어 겸손해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저는 우리 연합감리교회가 성 정체성 문제로 분열을 겪고 있음이 마음 아픕니다. 저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저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우리를 분열하게 내버려 두는 일은 상상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년 전, 우리의 딸 사라는 저와 제 아내 줄리아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이고, 다른 여성과 함께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사라는 스물일곱 살이었지요. 저와 줄리아는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동성애를 정죄하는 듯한 성경 본문들을 자세히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하다고 생각했고, 목사로, 또 교회의 지도자로 연합감리교회 장정이 말하고 있는 바를 지지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라가 저에게 동성애자임을 알려왔을 때, 저는 비로소 이 문제에 직면한 부모의 입장이 되었지요. 사라가 그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 그 밤, 저는 줄리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라의 성 정체성이 후천적으로 생긴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어렵지 않게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네 명의 아이들을 모두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된 가정에서 키웠다고 믿기기 때문입니다.

네 아이는 모두 신앙생활에 헌신했고, 교회 봉사도 다양한 방법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사라는 어린 나이에 선교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오랫동안 도심 빈민선교로부터 종교 서적 출판까지 여러 방면에서 연합감리교회를 섬겼습니다. 사라는 일생을 연합감리교인으로 살고 있지요.

그날 밤 우리 앞에 선 어린 사라는 우리가 그녀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주길 원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마음이 괴롭고 번민에 차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라는 참 행복해했지요. 줄리아와 저는 사라의 성 정체성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우리 딸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우리 딸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생겼지요.

성경이 가진 권위에 대한 저의 헌신과 제 딸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일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었지요.

저는 먼저 제가 동성애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음을 깨닫고 참 놀랐습니다.

저는 목회하는 동안 주로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의 남용, 오용 그리고 악용에 대해서는 관여했지만, 한 번도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가득한 우리 교회 청소년부의 학생이 이성과 데이트하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도, 왜 그러는지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웨슬리안서비스길드(Wesleyan Service Guild)의 여성들이 50년 또는 60년 동안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온 것에 대해 참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가졌어야 했던 사생활이나 그들의 공개할 수 없었던 고통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동성애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갔고, 교회 안에서 고통받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성애 문제를 다루고 있는 성경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아직도 그 일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제가 하는 것처럼 성경의 큰 그림을 본다면, 몇몇 구절을 가지고 성경을 논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성경에 있는 말씀 중 하나라도 사소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이 동등하게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말라기나 오바댜 같은 소선지자들의 책들은 창세기나 출애굽기가 가진 영향력과 무게에 비교할 수 없지요.

많은 성경 번역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빨간색으로 인쇄합니다. 예수의 말씀이 빨간색으로 인쇄된 것은 그 말씀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어떤 특정 말씀을 문맥과 상관없이 성경에서 뽑아내어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가져다 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몇몇 말씀들은 그 말씀의 문맥과 상관없이 시간을 초월한 명료함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예컨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든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성경은 그 전후 문맥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문맥은 그 구절의 의미와 중요성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또 감소시키기도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선 육신이 된 말씀입니다. 그는 주님이시고, 성경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하고, 저는 동성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을 그 문맥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먼저 수 세기 동안 동성애를 ‘소돔의 죄’라 명명하며, 죄악시하는 일에 사용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성난 소돔 사람들은 롯을 방문한 낯선 이들을 강간하고 모욕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이 본문을 읽는 사람이면 본문이 말하는 죄가 동성애가 아닌 손님에 대한 소돔 사람들의 폭력적인 냉대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쉽게’라고 말한 이유는 이 본문의 경우 성경만 제대로 읽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그가 쓴 책에 이 일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또한, 예수께서도 누가복음에서 소돔의 죄는 손님에 대한 추잡한 냉대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물론, 레위기와 신명기에 실린 성결법이 남자들 간의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을 봐야 합니다. 이 법전은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유대 사람들을 구별시키기 위한 구체적 목적을 가지고 쓰였습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을 염두에 두고 쓰인 본문이 아닌, 당시에 살았던 특정한 히브리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본문은 유대교와 모든 종교 안에 언제나 존재했던, 누구를 포함하고, 또 누구를 제외할 것인가 하는 긴장을 반영한 것이지요.

오늘날 어떤 유대인도, 또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 성결법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우를 먹는 일에 주저하지 않지요. 왜냐하면 예수께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린 간통을 저지른 사람을 돌로 쳐 죽이지 않는다. 왜냐면 예수께서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그 누구도 아이들을 죽이고, 부모에게 대들었기 때문에 죽여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주 상세히 죄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죄 가운데는 여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사이의 성관계도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맥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바울은 오직 두 가지 동성애 관계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부유한 사람이 어린 소년을 노예로 살 수 있었고, 성적으로 그를 학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부 그리스-로마 사회에선 사제이며, 동시에 공창인 남성과 여성이 있었는데, 그들은 풍요와 신비의 상징으로 성행위를 하곤 했었습니다. 고대에서 행해지던 이 두 가지 풍습은 절대로 내가 내 가정과 친구들 사이에서 목격한 사랑스럽고, 충실한 관계와 닮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써놓은 죄의 목록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바울이 그가 생각 할 수 있는 모든 죄를 단순히 열거하고 있다는 큰 그림을 놓치게 됩니다.

바울은 우리가 모두 영광에 도달하기에 부족하며, 모두 하나님의 속죄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저는 바울이 나열한 죄들을 생각할 때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죄인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입니다.

예수께선 거듭해서 의도적으로 사회의 가장자리, 소외된 사람들에게 집중하셨습니다.

그분은 장애인과 귀신 들린 사람,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기적을 행하셨을 땐,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긴다고 그를 꾸짖기도 했습니다. 혈우병을 앓으며, 비천한 사람 취급받았던 한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치유함을 얻었지요. 우리 주님은 자신의 발아래 슬피 울던 창녀를 용서하셨고, 유대인들이 싫어하던 로마 병사의 종도 낫게 해주셨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로마 사람들보다 더 멸시받았지만, 예수께선 온갖 관습을 뒤집으시고, ‘선한 사마리아인’을 그의 비유의 주인공으로 삼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정죄하는 것은 모두 예수께서 보여주신 행동과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또 이 우리 안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라고 말씀하시며, 교회가 이방인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초석을 마련하셨습니다.

몇 번이고 예수께선 관습과 사회적 규범 위에 친절과 용납을 올려두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를 사랑하라.”라고 예수께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환대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어떻게 성 소수자 공동체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제가 위에서 밝혔듯이, 저는 저의 목회의 많은 부분을 여러 가지 성적 이슈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는 일에 바쳤습니다.

저는 성이란 마치 불과 같아서 해(害)도 많고, 선(善)도 많이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매매, 소아성애, 강간, 성매매 그리고 성 착취 등 신앙과는 맞지 않는, 또 믿음의 사람들이 경계해야 하는 많은 성적인 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실 수 있고, 그가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헌신적이고 안정적이며 사랑이 풍성한 관계로 인도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예수의 사랑으로 자신들의 게이 아들과 레즈비언 딸을 꼭 안아주는 많은 부모 중 한 사람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제 딸이 지난 30년 동안 이어진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기쁨을 맛보고, 우리 가족이 그들의 관계를 통해 큰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지난 70년 동안 제가 목회를 하면서, 연합감리교회가 몇몇 성경 구절을 둘러싼 오해로 갈라질 수도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는, 저는 예수께서 성경의 주인이심과  항상 우리에게 가르치신 사랑하고 포용하는 신앙 공동체를 만들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디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길 부탁합니다. 저도 우리의 위대한 전통을 확인하는 목소리를 높이며 분열이 아닌 치유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했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윌키 감독은 1986년부터 1994년 은퇴할 때까지 아칸소연회의 감독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그의 아내 쥴리아 키친 윌키과 함께 <제자성경공부>를 저작했으며, <제자인스티튜트(Institute of Disciple)>를 창설했다. 제자인스티튜트는 현재 캔사스주 윈필드에 있는 사우스웨스턴대학에 위치하고 있다.

 

원문출처:https://www.umnews.org/ko/news/bishop-gay-daughter-sent-him-back-to-scriptures#.Xcnjlk6hMNh.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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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2022-08-03 09:47:49
목회자의 딸이 동성애에 빠졌다면,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합리화 시키기 위해 성경을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치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닮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chang 2022-08-03 09:46:02
교회의 지도자라는 사람이 이런 성경에 대한 해석과 이해를 가지고 있으니, 답답하고 한심하고 괴로울 따름입니다.
동성애라는 죄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고, 문맥을 보라고 이야기 하는데,
문맥이 말하는 바가,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죄를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8장에 기록된 '하나님 백성이 살아야 할 거룩한 삶'은, 애굽과 가나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근친상간, 동성애, 소아성애, 수간을 비롯한 모든 음란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야 하기에, 하나님이 없는 멸망의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법이고 명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