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이 시위하는 맹학교는 6년 넘게 살았던 나의 고향"
"한기총이 시위하는 맹학교는 6년 넘게 살았던 나의 고향"
  • 신순규
  • 승인 2019.11.27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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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근처에 위치한 서울맹학교는 내가 6년 넘게 살았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때 기숙사 생활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아침 6시 정각 요란한 벨이 울리면 250명이 넘는 맹학생들이 급히 일어나 옷을 입고 운동장으로 달려 내려가는, 생각해보면 아찔한 일이 매일 일어났다. 6시 3분에 시작되는 아침 체조에 늦게 도착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몇 십 개가 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야 했다. 그랬는데도 내가 알기로는 큰 부상을 입는 사고는 없었다.

크리스천으로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매일 아침 6시에 우리들을 보호해준 것이리라. 그 옛날, 유난히 많았던 서울맹학교의 가파른 계단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면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이 생각에 동의할 거라 믿는다.

그런데 근래 한국 뉴스에서 서울맹학교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기총이라는 단체의 집회가 학생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아주 큰 소리 때문에 수업도 하기 어렵게 되었고 독립 보행은 아예 위험해졌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기총은 내가 알기로 크리스천 단체이기 때문이다.

CBS 노컷뉴스는 '한기총이 청와대 근처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시설인 맹학교 앞에서 보복성 시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https://www.nocutnews.co.kr/news/5249247)
CBS 노컷뉴스는 '한기총이 청와대 근처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시설인 맹학교 앞에서 보복성 시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https://www.nocutnews.co.kr/news/5249247)

나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어렸을 때는 맹학교 교육을 받았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미국에 와서 일반 학교를 다녔다. 대학과 대학원도 물론 정안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환경에서 생활했고, 지금도 나의 주위에는 시각장애인이 없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만이 아는 것들을 잊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치명적으로 중요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흰 지팡이를 사용해서 출퇴근을 한다. 북뉴저지에 있는 우리 집에서 뉴욕시 다운타운에 있는 월가까지는 약 1시간 반이 걸리는데, 한 번 갈아타야 하는 통근 기차와 뉴욕시 지하철을 이용한다. 이 출퇴근길에서 내가 만나는 가장 위험한 장애물은 소리다. 뉴욕시는 공사 소리, 길거리 뮤지션들의 음악 소리, 그리고 가끔 접하게 되는 정치 집회 소리 등으로 아주 시끄러울 때가 있다. 소리가 너무 클 때는 아예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작아질 때까지 혹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맹인들은 방향의 센스, 현재 위치의 센스, 그리고 차도의 상황에 대한 센스 등을 청각을 통해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큰 소리들은 아주 복잡한 거리를 걷고 있는 정안자들 눈을 누가 갑자기 덮어버리는 것과 같은 비상사태가 되기도 한다.

한국도 미국처럼 언론의 자유와 집회를 통해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다. 다른 이들은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내세우기 위해 장애인들의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크리스천들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먼저 지켜야 할 것이다. 레위기 19장 1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나는 사실 한기총이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른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의 이 특별한 사정을 알았다면 이 단체의 지도자들도 서울맹학교 근처에서 집회를 그렇게 시끄럽게 하진 않았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날카로운 정치적인 논쟁은 더 중요한 가치를 잊고 그것을 공격하는 상황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기도 한다. 예수님이 만난 맹인들 중 광명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을 믿는 크리스천들이라면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다른 방법으로 행사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신순규 :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이 글은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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