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인 어머니는 무당? 목사 유감… 
송가인 어머니는 무당? 목사 유감… 
  • 이재근 목사
  • 승인 2020.05.29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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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롯'을 계기로 인기를 누리는 송가인은 어머니가 무속인임을 공개하고 자랑스러워 했다 (사진=송가인 페이스북)
'미스트롯'을 계기로 인기를 누리는 송가인은 어머니가 무속인임을 공개하고 자랑스러워 했다 (사진=송가인 페이스북)

[뉴스M=이재근 목사] 1.몇몇 목회자들이 많이 화나신 듯 해요. 최근 트롯 열풍이 탄생시킨 최고 스타, 송가인씨의 어머니 송순단씨가 굿을 한다는 소식에요. 이미 몇시간전 진행되었네요. 한국시간 28일 저녁이었으니까요. 서울 강남 한복판 LG 아트센터 창립 40주년 기념이란 제법 큰 규모로 말이죠. 믿음에 신실하려 최선을 다하는 목사님들 입장에선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해요. 하나님의 징벌?인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점에 이무슨 망측한 짓거리라며 나라는 망할것이고, 책임은 현직 대통령에게 있다고 까지 흥분하며 불편하신듯 하구요. 그래서 더욱 정중히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싶어요. 

2. 종교학의 아버지 머르치아 엘리아데의 말처럼 인류 시작된 이래 샤마니즘 (무속)은 전세계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속에도 무당이 나타나죠. 구약의 대표적인 예는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입니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 이미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오죠. 그일로 사울은 몰락해요.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그 아름답고 촉망받던 젊은이의 말로치곤 매우 불행했어요.

그럼, 신약은 어떨까요? 바울의 선교현장이 대표적 예인데요. 루스드라에서 불구인 사람을 일으켜 걷게하자 바나바는 제우스로 바울은 헤르메스로 불리게 되요 (행 14장). 물론 바울 일행은 옷까지 찢어가며 분노하고 그리말라 사람들에게 외치죠. “우린 신이 아니랑께!”  더 심각한 상황은 3년이나 목회했던 에베소에서 발생해요 (행 19장).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하다 주를 믿게된 이들중 마술을 행하던 이들이 그 보던 책들을 사람들앞에서 불사릅니다.

그때 불태운 책값이 은 5만이라는데…아마 그많은 규모가 컸다는 뜻이겠어요. 한편, 위험에도 처해요. 데메드리오라는 아데미 신상 판매업자는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로 신상 제조업자들을 잃게되자 그 앙갚음으로 바울의 제자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공개처형위 위험에까지 몰고 갑니다. 에베소 군중들은 분노가운데 외치죠. “크도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3. 위에 등장한 성경속 사건들을 좀더 자세히 살피면 공통점과 함께 실은 차이점이 있답니다. 우선, 구약에 등장하는 무당, 무속은 오직 야훼만을 믿고 따라야할 이스라엘 민족 안에 존재했던 민간신앙이었어요. 이에, 구약의 본문들은 매우 자주 산당, 신당, 사당 등을 철폐하라 없애라해요. If not, 야웨의 진노가 임할것이라고 후에 바벨론 포로기 전후에 까지 그 말씀은 이어지지요. 즉, 구약에서 무속을 폐하라 할때는 그 주요 포커스는 굳이 따지고 보면 유대교인들 안에 자리한 무속을 경계하는 것이예요.

반면, 신약에 등장하는 이 종교적 현상들은 다른 민족, 다른 국가, 다른 문화권에서 기독교를 전하는 중에 빚어진 일이랍니다. 그리고, 타 종교나 무속의 신앙을 대하는 사도들의 태도는 그 메세지에 있어서는 매우 분명히 주 예수그리스도만이 경배할 자라 전하지만, 그 어떤 경우도 타민족, 나라의 종교나 철학에대해 폭력이나 폭언, 저주를 퍼붓는 경우는 없었어요. 신학의 어머니는 사실 선교학이랍니다. 왜냐면 최초의 신학자인 바울은 최초의 선교사였구요.

유대땅을 벗어나 사마리아부터 많은 부분 부딪힘과 갈등이 시작된 기독교를 유럽에까지 전하며 어떻게 복음을 선포(Proclamation)하며 동시에 변호(Apology) 할것인지 매우 적절히 보여준 분이셨지요. 바울의 선교신학이 적절히 드러난 곳은 헬라 문화의 메카, 아테네에서 방문한 아레오바고에서의 연설이예요. 거기서 그는 복음에 대해 매우 분명하고 단호합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인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많은 철학자들을 매우 정중히 대하지요.

한성깔 하신 바울이기에 아테네에 가득한 우상엔 격분했지만, 정작 신앙적 논쟁은 매우 톤다운…할줄 아는 노련한 선교사, 목회자, 신학자 였던거예요. 그럼, 이 성경적 근거로부터 우리의 또다른 고민은 시작되어요. 과연 21세기, 대한민국, 이 오랜 아시아의 반도국가, 5천년 문화와 종교적 다양성이 가득한 이땅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의 예를 따를 것인가? 구약때 처럼? 아니면 그 처음 목회자요 신학자, 바울처럼??  개봉박두!!! 

4. 만약, 구약의 예를 따르자면, 정말 기독교가 해야할 일은 기독교계 밖의 타종교를 때려잡을게 아니랍니다. 정말 해야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살며, 하나님을 예배한다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운다면서도 무당같은 짓거리를 해내는 목사들을 쳐내는 것이랍니다. 아울러, 매년 정월이면, 사업이 막힐때면, 자식일이 안풀릴때면 손에 손잡고 무당을 찾아가는 장로, 권사, 집사등 직분자들을 치리하는 것이겠구요. 하나님이 정말 분노하실 일은, 신실하다면서? 순결하다면서? 전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신앙과 삶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임한답니다. 그러니, 두려워 떨어야 할 사람들은 사실 교회밖 무당이 아니라, 교회안의 유사목사(Pseudo-pastors), 장로, 권사와 집사들 이랍니다. Really, really… 

5. 신약의 예를 따르자면, 교회가 해야할 일, 그것은 let the church be the church! 랍니다. 한쿡 목사들이 그토록 배우고 인용하려는 수많은 미쿡 목사들중에서 정말 따라배워야할 목회자요 신학자중 한분인 스텐리 하워와스는 평생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죠. ‘교회가 교회되는것’ 그것이야 말로 교회가 세상에 보냄받은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구요. 다른 종교가 어쩌고 저쩌고? 사도바울의 선교역사속에 등장하는 타종교인들은 한번도 강제적으로 억압적으로 폭력적으로 바울에의해 being forced to believe 된적이 없답니다.

단지, 복음이 전해지면 자기들 스스로 알아서 willingly 책을 불사르고 돌이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 즉 회개를 했던 게지요. 한국은 기독교 국가? 아닌데요. 미국은 기독교 국가? 아하! 이것도 아니랍니다. 굳이 따지고 보면 기독교 국가인듯 싶지만, 미 건국의 아버지들 다수는 심지어 유럽의 유사기독교, 이신론(Deism)자들이기까지 했지요. 오우~ 매우 불경스럽게도 말이죠…그러니 더욱 바울을 따라... 

6. 구약의 경우를 봐도, 신약의 경우를 봐도… 우리가 LG 아트센터 창립 40주년 행사를 막아서야할 이유는 없어요. 오히려 데메드리오 사태를 진정시킨 에베소의 그 서기장 처럼 저들이 사람을 해하거나, 도적질을 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하지 않은 이상에는 사회적 법과 제도의 틀안에서 평화롭게 내버려 두어라 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요. 일단 저는 그 굿판이 뭐그리 효능이 있을까? 싶어요. 뭐 그리 대단할까? 싶구요. 그런데도 그 굿판을 엎어버러야 한다면, 남한땅 전국 팔도에 있는 그 많은 사찰들, 무당집들, 이젠 이슬람 회당까지 쇠망치와 톱을들고 찾아가야 할까요? 이게 정말 진실되고 자신있고 확실하다 믿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지닌 이들의 모습이어야 할까요? 

 7. 적어도 목사들이라면,  그 대단치 않을 무당 굿판에 흥분할께 아니라, 코로나 이후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염려하고, 어떻게 사람들의 삶이 소외된 이들을 향할 것이며, 어떻게 교회가 보다 공의를 행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의 정의를 따라 행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정말 기도많이 하는 신령한 목사라면 더더욱…서릿발 같은 말씀의 준엄함을 그렇게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당들이 날뛰니 나라가 망한다구요? … 아니요, 30년 신학과 목회의 현장에서 보니 말씀 그대로예요.

나라와 교회가 망하는 건 목사들이 그저 왕곁에 제자상으로 머물로 아무말 하지 않을때랍니다. 아무말도 않으면서 도리어 괜히 나와 얼굴색, 언어, 삶의 방식(문화), 종교가 다른 이들을 손가락질 할때 랍니다. 예언은 않고, 졸다 목이 부려저 죽은 그 육중한 엘리 제사장의 모습을 답습하면서요. 
저와 생각이 달리하실 분들이 많으실줄 알아요. 하지만, 저는 바울의 본을 따라 아레오바고에 서서 정중히 이야기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해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그런 목회자, 신학자이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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