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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M 편집부
  • 승인 2020.05.3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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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엽 교수 기고:
검찰의 한명숙 증언 조작의혹과 양승태 사법농단에서 보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절박성
이인엽 (워싱턴앤리 대학 정치학 교수)
이인엽 (워싱턴앤리 대학 정치학 교수)

전 총리이자 서울 시장 후보였던 한명숙에게 뇌물을 줬다고 거짓 증언했다가, 그것이 검찰의 협박과 회유에 의한 거짓이었다고 양심선언을 한 한만호씨의 옥중 비망록이 뉴스타파와 MBC에 의해 보도 되었다 (죄수와 검사II 1~5편, https://newstapa.org/tags/죄수와검사). 이에 대한 파장이 심각한 상황인지라, 법무부가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수사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선다고 한다. 한만호씨의 증언번복 이후 검찰이 그를 공격하기 위해 증인으로 세웠던 최씨도 검찰의 위증교사를 주장했고, 이와 유사하게 검찰에 의해 증인으로 동원되었다가 막판에 증언을 거부한 한은상씨도 검찰 수사팀이 회유 협박을 했다고 관련 13명의 검사를 고발했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의 수사 행태는 조폭 양아치 집단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위의 보도를 보고 분개하는데, 양승태 사법거래의 피해자 중 한 분이었던 이외식씨가 지난 5월 20일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사건을 취재했던 박상규 기자(탐사보도 셜록)의 페이스북에서 접하고 가슴이 먹먹해 진다. 검찰과 법원 모두가 정말 얼마나 썩었고 개혁이 필요한지 다시 절감하게 된다. 이들의 악행을 기억하고,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계속 촉구하는 차원에서 관련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한명숙 사건과 한만호의 비망록 

먼저 뉴스타파의 보도(죄수와 검사 1~3편)를 정리해 보자. 한신건영 대표였던 한만호는 2007년 12층 건물을 세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자금 흐름이 막혀 부도가 나고 구속되어 3년형을 받게 된다. 형을 살며 재기를 꿈꾸던 중, 난데없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소환으로 2010년 4월 통영에서 서울 구치소로 이감된다. 자신이 왜 소환되는지도 몰랐던 한만호는 부도관련 추가 고소가 있는가 우려 했으나, 검찰로 부터 한명숙의 이름을 듣는다. 한명숙이 대한통운 전 사장이었던 곽영욱으로부터 현금 5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가 곽사장의 진술번복으로 무죄가 선고될 상황에 처하자 (소위 '의자가 뇌물을 줬다'는 사건), 위기를 느낀 검찰은 다른 사건을 만들기 위해 한만호를 불러들인 것이다.

​소환 첫날 그는 자신의 자금 6억원이 한나라당 친박계로 제공되었음을 실토했으나, 검찰은 그 내용은 급히 덮고 종료해버린다. 한만호가 한명숙 관련 금전 거래를 부인하자, 검찰은 한만호 구속 후 그의 회사에 들어와 회사를 뺏으려 하던 법조 브로커 남모씨를 불러들이고, 남씨는 추가기소 운운하며 서울시장 선거도 있고 이건은 아주 ‘윗선’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협조 안하면 무척 힘들어질 것이라 협박한다. 동시에 협조하면 사업 재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검찰은 한명숙 유죄만 나오면 재기할 수 있고 회사 찾고, 증언 이후 며칠 안으로 출소할 수 있으며 추가 기소를 막아주겠다고 회유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감과 재기에 대한 유혹으로 밤을 꼬박 새운 그는, 결국 악마와의 거래를 합리화 한다.

이후 73회 조사를 받았으나 진술조서가 쓰여진 것은 단 5회. 68회 동안은 매주 불러서 9억원을 3억씩 세번에 나눠 전달했다는 혐의사실을 만들어 내고, 답변 내용을 암기시키고 검찰조서까지 보여주며 테스트하고 변호인의 질문에 대응하는 과정을 반복 연습시키며, 잘 하면 특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래도 20년 넘게 CEO 한 사람을 마치 저능아 취급했다. 그 모멸감은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다. 한만호는 없어지고 오로지 검찰의 안내대로 따르는 강아지가 되었고..."

​한만호는 그래도 이 사건이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것 만은 아니길 바래서, 선거가 끝난 다음에 발표해 달라고 검찰의 약속을 받았으나, 검찰을 들락거리는 기자들을 보게 되고, 수사 초기에 언론의 악의적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자 두려움과 죄책감이 뼛속까지 저며왔다고.

​"수사관에게 '노무현 대통령도 저래서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총리님도 이러다 그렇게 되시는 것 아닐까요? 정말 걱정됩니다'(고 물었다.) 얼마나 엄청난 범죄를 날조한 것인지 살아있음이 더 고통스러웠다."

결국 검찰의 약속과 달리 자신의 거짓 진술 서울 시장 선거에 이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깊은 양심의 가책을 느낌다.

​"밖에서 사람들이 조중동이나 일부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라 해서 과장된 말이려니 했는데 제가 직접 당해보니 조금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어요."

"검찰은 선거전에 계속, 지지율과 여론조사 결과 분석하며 증인의 허위 진술 내용을 언론질 해댔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가 20% 이상 차이가 나오자, 사장님 서울시장 선거 하나마나 아닙니까 하며 웃으며 흐뭇해했다."

한명숙은 결국 2010년 6월 0.6% 2만6천표 차이로 오세훈에게 낙선했다

​"회초밥을 먹었다. 무고한 총리님의 살점을 발라먹고 있다는 생각으로 복통 설사로 무척 고생했다."

"검찰이 언론을 통해서 무차별 이미지 훼손 기사 나올 때마다 죄책감으로 가슴 속에서 선혈이 터져나올 듯한 고통을 느꼈다."

"금수회의가 따로 없습니다. 입만 열면 생고기 뜯고 난 비리칙한 냄새가 납니다. 포식을 끝낸 짐승처럼 저희들끼리 회해롭습니다. 피묻은 발톱을 핥고 고깃점이 묻어있는 털 고르는 일이 남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에 고통하던 그는 2010년 12월 20일, 한명숙에게 정치자금을 줬다는 진술을 완전히 번복한다. 그러자 검찰은 한만호의 부모를 찾아가 언제 출소 할지 모른다는 말로 협박한다. ​

한명숙은 2011년 11월 1심재판에서 결국 무죄를 받는다. 그러나 그 직전인 7월에 검찰은 출소한 한만호를 한달만에 위증죄로 다시 기소했고, 이는 그의 증언 번복에 대한 보복성 기소가 아닌지 깊이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다. 

2년뒤인 2013년 9월 16일 한명숙 뇌물사건 2심에서 정형식 판사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선고 (징역 2년, 추징금 8억8천만원). 정형식 판사는 이재용 2심에서 집행유예를 내린 걸로 유명한 인물이다. 다시 2년 뒤 2015년 8월 20일 재판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한명숙 뇌물 사건 상고 기각, 최종적으로 징역2년과 추징금 8억8천만원을 선고한 유죄가 확정된다. 이후 검찰은 한만호의 위증사건을 다시 수사해 2016년 5월 19일 징역3년 유죄판결로 법정구속한다. 위증죄로 다시 징역을 살고 출소한 그는 1년도 되지 않아 사망한다.

한명숙 사건 뉴스타파 보도 (뉴스타파 홈페이지)
한명숙 사건 뉴스타파 보도 (뉴스타파 홈페이지)

2. 사건의 배경 

위의 사건을 보면 정부와 정치검찰, 보수언론이 어떻게 협력하고 칼을 휘둘렀는지 잘 보여준다. 검찰의 표적수사가 아주 "윗선"에서 결정되었다는 한만호씨의 비망록을 보면, 한명숙 사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지시가 있지 않았는가 의심이 되는 대목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유명한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복역했고 (진보 기독교의 강원룡 목사가 주도한 사회 운동을 박정희 정권이 용공이라 조작해 탄압한 사건), 여성운동 민주화 운동에 일찍부터 헌신한 인물이다. 김대중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여성부 장관을 역임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과 최소의 여성국무총리로 일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오마이뉴스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한명숙을 꼽았다고 하며, 노대통령 서거 시에는 장례위원장을 맡았었다. 이명박 정부하에 만일 한명숙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면 유력한 여성 대권후보로 자리잡았을 가능성도 있고, 이명박 정권은 이런 싹을 잘라버리고자 한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대법원의 유죄확정으로 한명숙은 의원직과 12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데, 당시 71세임을 감안하면 정치적 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한만호를 취재한 구영식 기자는 많은 의혹에도, 한겨레나 경향 등의 진보언론도 한명숙이 유죄라고 보고 취재에 관심이 없는 듯 했다고 이야기 한다. 진보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뉴스타파와 MBC의 보도로 파장이 일자, KBS에서는 2011년 당시 한만호씨 출소 직후 진행했던 인터뷰를 이제야 공개했다. 뉴스타파는 취재중에 한만호씨 사진하나 조차 구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이 사건으로 일가가 풍비박산됨), 검찰과 유착해 뇌물수수 의혹을 신나게 써댄 조중동은 물론이고, 이렇게 인터뷰를 떠 놓고도 공개하지 않은 KBS나, 검찰의 주장을 의심하지 않고 한명숙의 유죄를 문제삼지 않은 한겨레, 경향등의 진보 언론도, 언론의 책임을 다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시민들은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하지 않으면 이런 내막까지 알 수 가 없고, 검언유착에 휘둘리기 쉽다. 한만호씨는 사망하고, 한명숙은 정치 생명이 끝나버린 지금, 늦은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뉴스타파가 이 사건을 터트린 것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절감하게 해준다. 

​고 한만호씨는 13대째 고양시에 살며, 그의 부친은 조상 때 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대규모 꽃농장을 할 만큼 부유했는데, 이런 배경으로 건설회사를 설립해 경영했었다고 한다. 부도 후, 검찰의 표적수사에 동원되어 심적 고통을 느끼다, 양심선언 한 이후 위증죄로 다시 형을 살다 출소 1년만에 사망했는데,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고 사진 하나 찾을 수 없어서 몽타주 기법으로 얼굴을 그려 방송에 썼다고 한다. 

그가 처음에 공포심과 유혹에 넘어가 검찰에 협력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용기를 내어 사실을 밝힌 것은 양심과 용기가 있는 인물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의 유족이 이제라도 그의 심경이 담긴 보도를 본다면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3. 한명숙 전 총리와 한만호 비망록 관련 뉴스타파 보도 후속 편 

​뉴스타파의 후속 보도(죄수와 검사 4~5편)를 보면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검찰이 한만호의 양심선언을 거짓증언으로 몰아가기 위해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이다. 자신들의 기소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검찰은 한만호와 같은 구치소에 있던 사기범 김모씨(34세)를 동원한다. 그를 구치소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는 한만호의 말과 달리, 김씨는 자신이 원래 한만호와 아는 사이였고, 한만호가 말하기를, “한명숙의 집에 가서 돈을 줬으며, 한명숙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 말했다 증언한다. 한달 뒤 이와 유사하게, 같은 구치소의 마약사범인 최모씨가 증인으로 나와, 자신에게 한만호가 말하기를, “한명숙에게 9억원을 줬었고, 도와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증언한다. 뉴스타파가 지적하듯, 50세인 중년의 사업가가 구치소에서 처음 만난 16세 연하의 사기범이나 마약사범에게 자기 범죄사실을 자세히 실토했다는 것이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한만호의 양심선언을 의심하게 만든다. 

​김씨와 최씨는 공통적으로 같은 구치소에 수감되어있었던 제3의 인물인 한은상씨(뉴스타파 보도에서는 H씨로 언급됨)가 이 모든 이야기를 같이 들었다고 증언을 한다. 그러나 한은상씨상 검찰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오지는 않는다. 뉴스타파는 수소문을 해서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인 한은상씨와 연락하게 되는데, 그는 "여기서 보는 검찰은 참으로 많이 썩은 집단입니다. 그들이 범죄자일진대 그들이 조사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해 사건의 충격적인 전말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검찰이 과거 한명숙을 공격하기 위해 한만호에게 허위 주장을 연습시켜 증언하게 했듯이, 이제는 한만호의 양심선언을 반박하기 위해, 검찰이 김씨와 최씨에게 없는 사실을 연습시켜 말을 맞추고 허위증언을 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구속된 한은상씨는 구치소에서 한만호와 알게 되었고, 한만호는 그에게 자기가 양심선언을 할 예정이며, 검찰에 의해 압박당하고 있으니 이를 다른 검사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었다고 한다. 한은상씨는 자신이 조사를 받으러 다니던 담당 검사 전모씨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데,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라며 부부장 검사인 홍모씨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준다(뉴스타파의 연락에 이들은 자세한 언급을 회피함).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는 이미 끝났고 한명숙은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으며, 한은상씨를 통해 전해진 한만호씨의 이야기는 묵살된다. 

이후 검찰은 자신들의 각본에 의해 한은상씨까지 동원해 한만호를 공격하는 증인으로 동원하려 하는데, 한은상씨는 계속해서 거부한다. 그러자 검찰은 한은상씨의 아들 금융거래 관련해서 소환을 한 후, 증인으로 나올 것을 요구하는데, 한씨는 "결국 어린 아들을 볼모로 잡고서 이런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부정의한, 양아치 짓을 하는 것을 보고서 출정(검찰의 조사)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한씨는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라는 '삼인성호'라는 말을 언급하며, 자신과 김씨, 최씨는, 검찰이 한만호를 죽이기 위한 몰이꾼으로 동원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한씨는 검찰에 협조하는 척 하며 증언을 암기하고 입을 맞추는 집체훈련에 참가하는데, 동시에 검찰과 수사관들에게 값비싼 음식등을 대접해 영수증을 증거물로 남기고, 결정적인 순간에 증언을 거부했는데, 이것이 김씨와 최씨가 한씨를 언급했음에도 증언자로 나서지 않은 전말이라는 것이다.

​4. 국가 공권력인가 조폭 양아치인가

정리하자면, 매우 '윗선'의 결정에 따라, 검찰은 한명숙을 서울시장선거에서 떨어 뜨리고 정치생명을 끊어놓기 위해 한만호를 위협, 회유해 뇌물사건을 만들다는 의혹이다. 그가 가책을 느껴 양심선언을 하자, 사기범, 마약사범들과 일종의 딜을 통해 한만호를 공격하는 위증을 하게 만들고, 증언을 거부하는 한씨는 아들을 볼모로 협박해 세명의 증인으로 한만호를 공격하는 초법적인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제 비망록을 남겼던 한만호씨는 물론이고, 검찰의 증인이었던 최씨와 한은상씨의 주장들이 상당히 일치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권과 검찰의 정치적 유착관계속에 검찰은 무고한 사람도 죄인으로 몰아 짓밟을 수 있고, 구치소 수감자 정도는 위협이나 거래를 통해 위증을 시키고, 없는 말도 만들어 공격하는 불법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저질렀고, 특히 가족을 볼모로 협박하는 행태는 국가의 공권력이 아닌,마피아 영화에서 볼만한 인질극과 협박질 같은, 조폭 양아치의 모습과 가까워 보인다. 범죄자들이 범죄자를 수사한다는 H의 말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이런 검찰의 모습은, 고문만 하지 않았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때려잡고 고문하고, 군사독재시기 무고한 사람 간첩으로 조작하던 세력의 후예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더 한탄스러운 것은, 범죄를 기소해야 할 검찰이 이런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러도, 검찰 독립이라는 허울좋은 구호 속에서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은 검찰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변호사로 일하면서 과거의 수사에 대해 원칙에 따라 진행했고 기억이 나지 않는 다는 말만 반복하며, 검찰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방패 속에서 어떤 일을 저지르고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한은상씨는 “이들이 요직에서 승승장구하고 잘나가는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악의 표본”이라 고발하고 있다. 

이 시대에 악마와 지옥은 어디있을까? 권력의 입맛에 맞게 무자비한 칼을 휘둘러 사냥감을 도륙하고도, 조직의 방패속에 숨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는 검찰, 그들이 남겨주는 사냥감을 달려들어 마구 물어뜯는 하이에나 같은 언론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바로 악마들이 설치는 지옥도가 아닐까?

영화 '더킹(2017)'은, 살아있는 정치 권력의 지시에 따라 의도를 가지고 정적을 수사 해서, 잡아넣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면, 그들의 입맛에 맞게 힘 빠진 과거 권력을 수사하는 것이 검찰의 관행이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관행과 고리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정치검찰의 악행과 비극적인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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