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훈아만도 못해서 되겠습니까"
"우리가 나훈아만도 못해서 되겠습니까"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0.10.11 04: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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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님께서 옥중서신을 공개하셨습니다. 순교를 강조하며 목사님들의 대동단결을 호소하셨습니다. 그 기사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나훈아만도 못해서 되겠습니까"라며 "의사 선생님들은 똘똘 뭉쳐 집단으로 대처하니 당장 정부가 굴복하는 것을 보지 않았나. 이렇게 목사들이 의사 선생들만 못한가"라고 했습니다.

옥중서신을 쓰시면서 자신이 바울 정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나봅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이번에는 아미시까지 언급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순교의 영을 받으시긴 받으셨나봅니다. 본인의 소망대로 이번에는 꼭 옥중에서 순교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분으로 인해 마지막 남은 진정한 기독교마저 오염되기 전에 꼭 그렇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처럼 우리 사회에 회자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더구나 이런 미친 사람의 소리를 듣고 정말 선지자처럼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목사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분이 이처럼 미쳐 날뛸 수 있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가 복음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분의 기사를 읽으며 호세아가 생각났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

정말 우리 시대를 향한 예언처럼 들립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해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이처럼 자세히 설명하는 예언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져 진실도 사라지고 사랑도 없는 오늘날의 세상을 정말 적확하게 묘사하는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채석장에서 일하거나 나무를 해 숯을 구워 파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풍요로 버려지는 쓰레기 때문에 더 이상 파묻을 곳이 없어진 나라의 사람들이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요. 심지어 그런 아이들을 방송에 내보내면서 돈을 모으는 사람들조차도 먼저 자신들의 것을 챙긴 후에야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돈을 보내는 오늘의 현실은 진실도 사라지고 사랑도 없다는 호세아서의 말씀을 정말 실감나게 해줍니다.

특히 아무도 예상 못했던 코로나는 땅이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진 바로 그 상태를 너무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마스크를 안 쓰고 다른 사람들 옆을 지나치는 것이 두려운 시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서 분노가 번뜩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마스크를 잊고 외출을 하게 되면 되돌아가서 마스크를 챙겨야 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쓰레기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못하고 감추어진 채로 손도 못 대는 일이 되었습니다. 정말 땅이 탄식한다는 말이 너무도 실감이 납니다. 미국의 대통령까지 걸릴 정도로 코로나는 지구의 주민들을 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주와 시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라는 말 역시 오늘 우리의 현실을 너무도 잘 대변해숩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면밀히 돌아보십시오. 호세아서가 말하는 현실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면 그것이 더 명확히 보일 것입니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라는 예언 역시 실감 나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생물 종들이 말없이 멸종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지도 못할 만큼 많은 생물종이지만 머지않아 절반이 되고 또 그 절반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가 숙주를 잃어버린 바이러스의 공격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은 지적입니다. 가장 잘 적응하는 인간 역시 더 이상 적응할 수가 없는 여러 종류의 위기들이 기록을 갈아치우며 닥치고 있습니다.

성서는 이런 일들의 책임을 제사장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 비난하지도 말아라. 제사장아, 이 일로 네 백성은 너에게 불만이 크다. 그래서 낮에는 네가 넘어지고, 밤에는 예언자가 너와 함께 넘어질 것이다. 내가 너의 어머니 이스라엘을 멸하겠다.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 나도 너를 버려서 네가 다시는 나의 성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 네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네 아들딸들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 제사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에게 짓는 죄도 더 많아지니, 내가 그들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겠다. 그들은 내 백성이 바치는 속죄제물을 먹으면서 살고, 내 백성이 죄를 더 짓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백성이나 제사장이 똑같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내가 그 행실대로 벌하고, 한 일을 따라서 갚을 것이니,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음행을 하여도 자손이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나 주를 버렸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을 맡은 제사장들이 주님이 제사장들에게 가르쳐 준 것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진 것은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이 많아질수록 하나님께 짓는 죄가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과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넘쳐나고 그 수가 늘어날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들은 복음(율법)을 마음에 두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을 갖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형교회의 탄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전광훈과 같은 목사님들이 등장하고 목사의 영광이 수치로 바뀌었습니다. 이젠 어디가서 목사라는 사실을 선뜻 밝히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목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경계하고 접근을 피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장 재수 없는 사람이 목사인 그런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하고 간단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을 보고 그들이 복음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목사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보기 어려운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어제 저를 새롭게 알게 된 분에게 제 글을 하나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분은 경험이 많은 분이었고 참된 복음을 듣기 원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글을 보고 이런 내용을 처음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분만이 아닙니다. 저 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매일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의 꿈을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처음이거나 생경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찌르는 것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제 글이 이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오늘날 제사장과 마찬가지인 목사들이 율법을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목사가 제사장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아무런 구별이나 차이가 없는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목사라면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의 본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전광훈 목사님과 같은 분을 따라한다면 그분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겠습니까. 정말 소가 웃을 노릇일 것입니다. 그가 정말 본이 되는 목사라면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평화를 도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폭력적이고 사나운 사람들이 됩니다. 다른 이들을 빈정거리면서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 모습이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음행을 하여도 자손이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바로 그 모습일 것입니다. 그 이유 역시 명확합니다. “이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나 주를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헌금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 것입니다. 주님을 돈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자비롭게 받아 주십시오. 수송아지를 드리는 대신에 우리가 입술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다시는 앗시리아에게 우리를 살려 달라고 호소하지 않겠습니다. 군마를 의지하지도 않겠습니다. 다시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놓은 우상을 우리의 신이라고 고백하지도 않겠습니다. 고아를 가엾게 여기시는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고 권력과 무력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우상들을 제거할 때 고아를 가엾게 여기시는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망가진 지구 위에 내려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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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있네 2020-10-11 13:20:33
놀고있네 전광훈이 목사입니까? 다들 정신좀 차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