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다가 하버드 간거야?”
“어떻게 하다가 하버드 간거야?”
  • 양수연 기자
  • 승인 2021.02.10 0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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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 이어 딸도 하버드.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특별한 교육 비결
백혜선 씨 가족. 아들 앤서니, 딸 애나 모두 하버드 학생이 됐다.
백혜선 씨 가족. 아들 앤서니, 딸 애나 모두 하버드 학생이 됐다.

 

자녀를 모두 하버드 대학에 입학시킨 부모에게 비결이 뭐냐고 질문했을 때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김빠진다. 당신이 운이 좋은 것이라면 누군가는 운이 나쁜 것이고 그것은 주피터를 아버지로 둔 그리스 여신 포르투나의 세계관일 뿐이다. 그럼 열심히 기도했기에 붙었단 것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 있다. 입시 철이면 명문대 앞에서 “부처님께 비나이다" 절하는 모습이라든가 십자가에 무릎 꿇고 “내 자식만은 제발 거기 합격”을 부르짖는 모습.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다시 물어본다. 

“도대체 자녀 모두를 어떻게 하버드에 보내신 거예요?”

엄마 백혜선 씨는 나에게 질문을 받자 갸우뚱 표정이 된다.

“글쎄….. 저도 모르겠어요. 애나야, 너 어떻게 하다가 하버드 갔니?”

조수석에서 천진난만 앉아있는 하버드 합격생 애나는

 “글쎄…..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하버드 갈 수 있었을까요?” 그러더니 뒷자리에 있는 오빠 앤서니에게 질문을 넘긴다. “오빠, 나 어떻게 하버드 간 거야?”

듬직한 하버드 대학생 앤서니는 그걸 왜 자기에게 물어보냐는 듯, 

“나도 모르지. 너 원래 다른 데 가려다가 그냥 넣어본 거 아니었어?”

서로에게 물음표를 던지며 나도 몰라요 너도 몰라요하며 모두 까르르 웃는다. 이 가족 보게나. 

공부 루틴을 잘 관리했다는 등 똑똑이 엄마의 다부진 경험담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난감하기만 하다. 일단 이들이 차로 이동 중이므로 다짜고짜 어떻게 하버드에 갔냐고 물었던 나의 조급함이 경솔함이 되기 전에 어서 끊고 나중에 인터뷰해야겠다. 서로 물음표를 난발할 뿐인 이 가족을 일단 ‘물음표 가족'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아들, 딸 모두 하버드 대학생이 된 백혜선 씨 가족. (줌 인터뷰 중 캡쳐)
아들, 딸 모두 하버드 대학생이 된 백혜선 씨 가족. (줌 인터뷰 중 캡쳐)

 

물음표 가족의 둔감력.

엄마 백혜선 씨와 전화 통화를 한 건 몇 주 뒤 늦은 밤이었다. 그새 15마일 북쪽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이사 일로 얼마나 바빴을지 짐작이 되었다. 그런데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이 물음표 가족의 집은 대낮 같은 생기가 풍겼다. 잘 됐다. 이번엔 평범한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애나는 어느 학교를 나왔어요?”

“초등학교는 뉴욕의 스페셜 뮤직 스쿨을 나왔고요. 중학교는 흠…... 피프티 투(52)인가?” 

엄마는 갸우뚱하며 저쪽에 앉아 있는 딸에게 소리친다. 

“애나야! 너 중학교 어디 나왔지?”

이런, 또 물음표다. 엄마가 딸 중학교 이름을 몰라서 묻는 참신한(?) 물음표다.

“아 맞다, 피프티 포(54) 나왔어요. 뉴욕은 학교 이름에 숫자가 달려서 헷갈려요. 하하하.”

전화기 너머로 백혜선 씨의 호탕한 웃음이 흘러넘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다 나는 갑자기 매우 놀란다. 

하하하 호방 웃음을 짓던 백혜선 씨가 지나가는 소리로 제 손이 부러져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다.

손이 부러졌다고? 나는 놀라서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나는 백혜선 씨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독자에게 서두에 상기했어야 했다. 

손 부러진 것을 아무 일 아닌 듯 저렇게 말하는 피아니스트를 내 평생 본 적이 없다. 손에 작은 물집이 나도 온갖 인상을 쓰고 나을 때까지 토라져 있는 피아니스트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아니, 뭐라고요? 손이 부러지셨다고요?”

빙판길에 미끄러져 손이 골절 된 지 한 달도 안됐단다. “재활 치료 중인데 아유~ 괜찮아요.” 한다.

나는 왠지 숙연해졌다. 속으론, ‘말해봐요. 안 괜찮잖아요. 당신은 피아니스트잖아요.’ 끙끙 소리가 치고 올라왔지만, 저 분은 저렇게 웃고 있다니. 

나는 무릎을 쳤다. 아하, 그녀의 비범함은 ‘둔감력'이구나. 

둔감하다는 무신경하다는 뜻으로 보통 안 좋게 쓰이지만, 나오키상을 수상한 베스트 셀러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은 다 둔감하다.’ 작가는 그래서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도 내지 않았는가?

그런데 애써 둔감하게 살아야 할 사람도 있지만, 창의적이고 예민한 예술가는 현실에 둔감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렇지만 현실에 둔감한 예술가도 손이 부러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인 양 크게 상심할 것이다. 예술사의 둔감력은 오직 예술을 위한 미덕이니 말이다. 

백혜선 씨는 타고난 자신감과 통찰력으로 둔감력을 예술적 단계로까지 고양한 사람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과대(過大)와 과소(過小)의 극단을 초월하여 최적화 개념에 이른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덕을 운운하는게 더 나은 것인가?

도대체 이 사람은 음악 안했으면 뭘 했을까 싶다. 

“전 길 찾아다니고 뭘 발견하는 걸 좋아해서 아마도 택시를 운전하거나 여행 가이드했을 거예요.”

물음표의 삶

 

알려진 바와 같이 백혜선 씨는 한국인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하고 29세에 최연소 서울대 교수가 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러던 그녀가 2005년에 서울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아이들 교육과 피아니스트로서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미국 이민을 왔다. 그녀는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씩씩한 백혜선 씨도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수많은 물음표에 직면해야 했다. ‘그래도 그렇지 서울대 음대 교수 자리를 내놓을 정도로 그렇게 도전할 만한 것이야?’라는 물음표. ‘그래도 그렇지 이혼하고 이 어린 아이들과 타국에서 살 수 있단 말이야?’라는 물음표. 

그렇게 물음표를 극복하고 이민 왔건만, 피아노와 관련 없는 생업 전선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사기도 당해보고  배고픈 생활을 해야 했을 때는 회한의 물음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음표 앞에서 그녀는 분명 ‘둔감력'이라는 무기를 발휘했을 것이다. 녹록치않은 생의 한가운데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는 능력, 둔감력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다. 백혜선씨는 종일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면서 매정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백혜선 씨의 예술적 역량을 알아본 음악 명문 클리블랜드 음악원이 먼저 그녀를 교수로 모셨다. 그리고 지금은 보스턴으로 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교수가 됐다. 그녀가 소망했던 베토벤 소나타 완주 프로젝트도 지난 해에 마무리했고 눈물로 키운 앤서니와 애나가 차례로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다. 지금이 백혜선의 제2의 전성기라 한들 그 누가 부인하겠는가.

“인간의 힘으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세계. 영성의 힘이라고 저는 200% 확신합니다.”

보스턴에 살지만, 백혜선 씨는 뉴욕 한인교회 성가대를 이끈다. 그녀를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로 던져 놓으신 하나님께 찬양하고 연주한다. 

지금도 시차가 달라 새벽 4~5시까지 아시아 학생들에게 레슨을 주고 쪽잠을 자고 아침에 학교 회의에 참석하고 하루가 쉴 틈 없이 바쁘지만 신앙과 성가대 지휘는 그녀의 삶의 중심이다. 

백혜선 씨의 교육 비법 - 그리움을 가르쳐라.

 

백혜선 씨는 이왕 한국에 나갔을 때 빡빡한 공연 일정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평균 두 달은 자녀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추수감사절에도 가족이 흩어져 있을 때가 많았다. 특히 지난해는 베토벤 소나타 프로젝트를 11월 28일에 끝내야했는데 고등학교 마지막 땡스기빙인데 빨리 집에 오라고 애나가 울면서 애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열심히 가정을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도약의 삶을 위해 집을 비운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엄마가 밖에 나가야 너희들 원하는 거 사줄 수 있어.” 라고 말하고 동분서주 일하고 연주했던 삶. 오죽하면 아들 앤서니의 하버드 대학 입학 에세이 주제가 “엄마의 부재”에 관한 것이었겠는가.(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20)

아이들은 그렇게 둥지에서 잠시 떠나있는 엄마를 하염없이 울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기들도 엄마와 비슷하게 도약을 준비해야 함을 이해한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쟤네 엄마는 남다르다"고 느낄 때 백혜선씨는 아이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걸 안다. 그렇다면 엄마가 ‘잘 나가는' 모습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냐? 포인트는 그게 아니다. 

“엄마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죠.”

역시 백혜선 씨 다운 고난도 비결이다. 백혜선 씨는 이렇게 상황의 역설을 긍정의 힘으로 변용해낸다. 혀를 두르는 최고의 비결이다. 엄마가 그리움의 대상이 됨으로써 아이들은 꿈꿀 수 있다. 

그러나 백혜선 씨가 바쁜 공연 일정으로 집을 비우는 동안, 아이들이 알아서 자라게 내버려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또 백혜선 씨의 역설이 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것.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최대한 부대끼는 것이다. 백혜선 씨는 아이들의 성향을 면밀히 관찰하여 초중고를 각각 바꾸어 가며 아이에게 최선의 것을 선택했다. 애나가 피아노에서 오보에로 악기를 바꾼 뒤 자기의 보이스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지극정성 엄마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 백혜선 씨는 아이들을 결코 다그치지 않는다. 완벽을 향하는 섬세한 예술가이지만 완벽을 설교하지 않는다. 그대신 이렇게 아이들에게 속삭인다. 

“엄마는 실수투성이란다. 실수해도 괜찮아”

딸에게 반능청으로 너 다닌 중학교 이름이 뭐냐?고 묻는 엄마, 서로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버드 갈 수 있었지?” 묻는 아이들. 이렇게 궁합이 딱딱 맞는 물음표 가족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은 “어리석은 질문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답을 알고 있을 때 질문을 한다.”는 뜻이다. 

백혜선 씨는 말한다. 

“저는 흑백으로 딱 답을 내지 않아요. 회색 지대가 많고 물음표가 많아야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기독교인은 행운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둔감력을 주심으로써 그저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맡기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둔감하고 능청하게 살면 백혜선 씨처럼 모를 것 같다가 이루게 되는 삶이 가능할 것이다. 하버드 대학 입학 비결? 제 2의 전성기? 그녀는 하나님이 주신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를 살기 위해 착실하고 겸손하게 둔감력을 기른 것 밖에는 한 일이 없다. 

양수연 편집장 / <월간 NEW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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