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 고혈, 흡혈
보혈, 고혈, 흡혈
  • 김기대
  • 승인 2021.10.19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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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의 새 지평을 연 넷플릭스 드라마 어둠 속의 미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좀비물이 성행하는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가 가진 흡혈 속성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고혈(膏血, 기름과 ) 짜낸다는 말로 권력자들의 수탈 행위를 표현했다. ‘고혈 춘향전에서 암행어사가 이몽룡이 변학도의 잔칫상에 올린 한시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단어다.

금덩이의 좋은 술은 천인의 피요(金樽美酒 千人血 금준미주천인) 옥쟁반 위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玉盤佳肴 萬成膏 옥반가효 만성).

춘향전의 저자가 인용한 시는 본래 성이성(成以性·1595~1664)이라는 실제 암행어사가 지은 시라고 한다. 성춘향과 성이성, 혹시 가문에서 춘향전을 짓지는 않았을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자본주의가 이렇게 괴물화되기 이전에도 기득권의 수탈은 존재했지만 그때는 피를짜내는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빨아먹는괴물의 시대가 되었다. 피를 짜낸 피해자들의 희생은 자신과 가족에게서 끝이 났지만 오늘날 피를 빨린 피해자들은 체제에 편승해서 똑같은 좀비가 되어야 살아갈 있다는 점에서 정확하게 자본주의 질서와 일치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는 이런 문제의식을 찾기 어렵고 영웅 서사에 의지한다. 좀비들의 공격에 살아남은 영웅, 그가 어린 아이 또는 약자를 돌보는 신파, 좀비에 감염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자들이 많은 구역을 봉쇄하고 몰살시키려는 무능한 공권력이 좀비 영화의 흔한 문법이었다. 시대의 모순을 지적한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빠져 있다.

이런 상투적인 문법을 비껴가는 시도들이 새로운 좀비 드라마에서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개의 시즌을 마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킹덤 프리퀄인 아신전에서 조선을 공포로 몰아 넣은 좀비가 조선으로부터 차별당한 여진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좀비의 근원을 설명한다. 우리 사회의 일원이 중국교포동남아 노동자들과 신부들이 기여한 바가 큰 데 차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현실을 아신전 빗댄다.

* (프리퀄 Prequel, 영화 등에서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근원을 밝히는 에피소드, 예를 들어 조커와 배트맨이 싸우는 배트맨 시리즈가 흥행에 성공하면 그들이 어떻게 조커와 배트맨이 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나중에 제작하는 전편 의미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어둠속의 미사(Midnight Mass)’ 좀비의 공포를 끊어내는 방법을 제시한 새로운 유형의 드라마다. 모두 7부작인 어둠 속의 미사 에피소드마다 성경 제목을 달고 있다. 1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시편, 잠언, 애가, 복음서, 사도행전을 거쳐 7 계시록으로 끝난다. 공포영화로 유명한 마이크 플래너 감독의 2021 작품이다.

음주 운전 사망사고를 라일리는 알콜 중독자 재활 훈련(AA)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가석방되어 4년만에 고향 크로킷 섬으로 돌아온다. 크로킷은 그가 도시로 떠났을 때나 돌아온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난한 외딴 섬이다. 라일리와 새로 부임한 젊은 신부 폴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축이다. 음주사고 죄책감으로 악몽에 시달리는 라일리는 매월 1회씩 AA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뭍으로 나가야 하는데 새로 부임한 신부의 제안으로 섬에서 재활 훈련을 한다.

신부는 섬에서 오랫 동안 사목해서 몬시뇰(주교 서품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에 상당한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는 신부에게 주어지는 존칭) 불리던 노신부가 가난한 성당 신도들의 후원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다가 지병이 도져 돌아오지 못한 빈자리를 대신해 임시로 부임했다. 젊은 신부의 부임 마을에서는 여러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 마을 주민의 총기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소녀가 일어나고, 부임 첫날부터 심방을 치매 노파는 정신이 맑아질 아니라 회춘까지 한다.

라일리를 위한 AA 클라스의 개설, 병든 노파 심방, 다시 일어선 소녀 등의 이야기가 퍼져가면서 평소 서너명이 미사에 참여하던 성당은 활기로 넘쳐난다. 이런 신비한 현상을 석연찮게 보는 사람은 라일리와 교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어릴 여자친구, 치매 노파의 딸인 의사, 그리고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인 섬에 부임한 무슬림 보안관이다.

무슬림 보안관은 9.11사태 피해자들을 위해 헌혈에 나설 정도로 좋은 미국인이 되고 싶었지만 사회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진급은 하지만 무슬림에 관계된 사건에서는 배제되는 차별에 시달리던 끝에 자청해서 조그만 섬마을로 부임했다. 그러나 성당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 들은 아들(다시 일어선 소녀의 급우이기도 했다) 가톨릭에 자꾸 관심을 가지는게 아버지로서 걱정이다. 보안관은 아들에게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며 기적이 신앙의 기본이 아니라 신을 향한 신뢰가 모든 신앙의 본질이라고 설명해도 아들은 아랑곳 않는다. 감독은 극중 인물들을 통해 무슬림에 대한 우리의 편견도 고쳐준다. 무슬림 하면 테러만을 생각하는 집단 같지만 그들에게도 신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있고, 경건함이 있다.

 

(지금 부터는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실상은 이렇다. 새로 부임한 신부 폴은 성지순례 병을 얻었다던 전임 신부가 성지에서 사탄을 만나 좀비가 되고, 흡혈의 결과로 젊어진 인물이었다. 그는 오래 마을에서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데 여인이 치매에 걸렸던 노파였고 의사는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젊어진 연인 신부의 모습을 보고 다시 젊음을 회복한 기적 일어난 이면에는 신부가 심방 성례를 치르면서 포도주가 아닌 진짜 피를 먹이는 만행 있었다.

부활절 미사에서 신부는 흡혈파티를 계획한다. 부활절 하루 이미 좀비에 감염된 라일리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밤에 망망대해로 나가 섬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고 알려준다. 처음에는 의심하던  여자 친구는 라일리의 진지함에 그 이야기를 믿게 되지만 라일리가 피를 빨아 먹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충돌한다. 하지만 라일리는 자기의 의지로 혹은 음주 사망사고로 생긴 죄책감으로 자신은 재가 되기로 선택하고 친구의 눈앞에서 재가 되버린다. 여자 친구는 마을에 돌아와 의사에게 설명하지만 의사도 믿지 않는다.

아직 은혜로운 신부로만 알고 있는 주민이 부활절 자정 미사에 참석한다. 무슬림 보안관도 아들 보호 차원에서 함께 했다. 결국 흡혈파티는 벌어지고 모든 주민이 밤새 새로운 피를 찾아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다. 피를 빨린 피해자에는 가족도 있고, 친한 벗도 있지만 상관없다. 내가 살기 위해 빨아야 하고 빨린 자는 똑같은 좀비가 된다좀비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의사와 보안관은 총에 맞아 위험한 상태가 된다. 딸의 죽음 앞에서 신부는 자신의 팔뚝을 베어 딸에게 먹여 살리려고 했지만 의사는 끝내 피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한다.

밤새 광란의 흡혈 행위를 하던 마을 주민들은 가난했지만 서로 간의 정이 살아 있던 섬마을이 지옥으로 변한 것을 보고 그들이 벌인 행위를 자책한다. 이제 해가 뜨면 햇빛에 그들은 재가 것이다. 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피를 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가야 하고 그러면 미국 전역, 아니 전세계가 좀비 천국이 것이다. 일을 막아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지는  해가 뜨면 재가 두려움을 내주를 가까이’(가톨릭에서도 성가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르며 견뎌내고 결국 모든 주민들은 재로 돌아간다.

해변으로 피신한 보안관과 좀비에 물린 아들은 어머니의 신앙을 회상하며 아버지에 대한 흡혈 욕구를 억누르고 견디다가 재가 된다,

그나마 시신이라도 건진 사람은 무슬림 보안관과 의사다. 조그만 배를 타고 바다로 피신했던 라일리의 동생과 다시 일어선 소녀는 무사했다. 해가 무렵 소녀의 다리는 다시 예전 무감각 상태로 돌아갔다. 사탄의 기적으로 고쳐진 다리이니 해가 뜨면 다시 하반신 마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소녀를 향한 라일리 동생의 순정은 소녀의 다리가 마비였을 때부터 계속되었으니 말이다.

기적과 신비를 믿지 않던 의사는 상황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계속 연구하다가 벽에 부딪혔지만 죽음 앞에서도 마시기를 거부함으로써 이성 자존심을 거쳤다. 무슬림 보안관도 기적을 믿지 않았지만 의사의 이성이 아니라 그의 순수한 신앙으로 기적을 배격했다.

기적앞에서 흔들리고 환호하던 가톨릭 신자들은 라일리가 음주 사망사고로 죄책감을 지니며 살아 갔듯이 잠시나마의 어리석음이 가져단 죄책감을 해가 뜨기 전에 인지했다. 죄책감을 신앙으로 회개하면서 재가 되는 선택을 했고, 선택이 세계를 좀비로부터 지켜냈다전도서 내용처럼 늙음과 죽음은 당연한 현상인데 그것을 거부하고 싶은 잠시의 유혹이 마을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일상에서 신비를 발견하기 보다 기적의 표징을 찾다가 비극을 맞았다. 

어둠 속의 미사 자본주의 모순을 지적하면서도 해법을 주지 못했던 기존의 좀비물과 달리 신앙과 이성의 조화 속에서 우리가 얼마든지 자본주의 흡혈의 악순환을 끊어 있다고 가르친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선에서 사슬을 끊으면 된다.

우리는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소리 높여 부르면서 다른 이의 고혈을 짜내는 위치에 오르는 것을 성공이고 출세라 가르친다. 게다가 보혈의 능력이 고혈의 착취 수단이 되는 것을 목회자들이 오히려 독려한다. 이러한 독려에 판단이 흐려진 신자들은 오늘도 아파트값과 주식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혈의 이름으로 환호한다. 환호를 그치지 않으면 좀비천당 불신지옥의 세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불신이 지옥이 아닌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끝까지 초월의 세계를 믿지 않던 이성(의사)’ 초월은 믿지만 기적은 믿지 않던 무슬림(보안관)’,  불신 그나마 시신이라도 보존했기 때문이다. 좀비천당보다 불신지옥을 기꺼이 견뎌내는 신앙, 또는 기꺼이 재가 되는 신앙이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도 너는 마음을 지켜라.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잠언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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