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과 고령화 가족
심상정과 고령화 가족
  • 김기대
  • 승인 2022.01.1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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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시늉하기 벅찬 정의당

2012년 12월 4 18 대통령 대선 후보 토론회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11 23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퇴했고 26일에는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으니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 만이 3지대를 대표하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런데 이정희 후보는 자신은 박근혜를 떨어 뜨리기 위해 출마했다는 폭탄선언을 함으로써 시청자들과 다른 후보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문재인 후보마저 당황해서 눈을 껌뻑 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떨어진 박근혜가 아니라 문재인이었다.

발언 때문에 이정희 후보에게 닥친 후과는 너무나 혹독했다. 2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정당이 해산됐고 5명의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다음 1월에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징역 9년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고 이석기는 최근에야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해산안이 헌법재판소에 가기 까지 국회에서는 민주당마저 국회 의결에서 해산 편에 섰다.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던 김이수 헌법 재판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재판소장으로 인준받지 못했으니 모두가 피해자였다.

날의 발언이 가져온 득실은 차치하고 사퇴한 후보들에게 이제는 독자행보를 하겠다는 생각이 각인되었다. 무려 3명의 후보가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했지만 문재인은 당선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의 탄핵으로 7개월 빨라진 다음 대선에서 이들은 모두 독자 출마를 한다. 하지만 독자 출마에도 이들은 또한번 높은 벽에 막혔다. 안철수는 홍준표를 넘지 못해 3위에 머물렀고, 심상정은 유승민의 벽도 넘지 못한채 5위에, NL계가 주축이던 통합진보당의 색채를 이어받은 민중연합당의 김선동은 조원진에게 막혀 8위에 그쳤다.
 

4년전 낙선했던 문재인의 당선으로 여권은 다음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의 당에 빼앗겼던 호남을 다시 찾아오면서 거의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으니 이른바진보 승리라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 민주당을 진보라고 있을까? 유럽식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중도 우파에 가깝다. 국민의 힘이 극우에 포진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좌파로 보이는 뿐이다. 그들의 정책은 철저하게 시장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복지정책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때로는 가상해 보이지만 시장주의자들에 의해 번번히 좌초된다.

한국 극우세력의 정신적 토양이 되는 일본 때문에 한국의 진보는극일’ ‘반일같은 정서도 선점해야 하는 민족주의적 좌파 노릇도 해야 된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화해기조를 유지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이기 때문에 극우들에게 좌파로 공격받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북한문제는 미국의 양보 말고는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을 극우 정치나 한국의 극우언론도 알고 있지만 그들의 표밭관리를 위해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경제 제재도 이상 것이 없다. 상황이 이렇게 복잡한데 정의당의 모호한 대북관도 정의당이 범진보의 신뢰를 상실하는데 몫한다. 북한문제는 통진당 분리 사태때부터 잠복되어있던 것이어서 그런지 대북관에서 정의당은 때로는 국민의 힘과 다를 바가 없다. 동시에 일본 문제에 대해서 정의당은민족주의 빼고좌파행세를 해야 하니 역시 범진보의 확장성과 부딪힌다. 

쉽게 말해 더불어 민주당은진보 노릇하기가 어렵고 정의당은진보 시늉하기가 어려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한국진보정치가 뿌리 내리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런 현실에서 최악을 막기 위해하는 없이집권 여당을 지지하는 진보 세력들에게 정의당은 신뢰를 주어서 그들의 표를 잠식해야 하는데 지금은 대립각을 세우는 방식으로 나가고 있으니 지지율이 후퇴할 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삭을 주워 먹으라는 치욕적인 충고가 아니다. 오히려 더불어 민주당과 정의당에 양발을 걸치고 있는 세력들은 모든 (민족, 평화, 계급, 여성) 신경써야 하는 한국형 진보의 참 씨앗일 수도 있다.

현재 정의당과 심상정이 안고 있는 고민도 여기에 있다. 낮은 지지율에 대선후보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가 재개한 심상정이 내어 놓는 이야기에도 남탓만 있다. 심지어는 라디오 방송에서 조국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게 패착이었다는 말까지 한다. 틀렸다. 진보내에서 조국 사태를 비판하던 세력은 지금의 지지율 2%내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외연확장을 포기할 만큼조국사태 정의당이 풀어야 한국사회 모순의 본질인가?

그밖에 내세우는 페미니즘, 생태계 문제는 당연히 논의되어야 주제이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각론이 빠져 있다. 특히 페미니즘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미투분위기 속에서 Gender 아니라 Sex 문제로 축소된 듯하다. 여기 이르러서는 근본적인 젠더이슈가 폭발하지 않도록 페미니즘을 Sex(성별로서의 섹스가 아니라 행위로서의 섹스)문제에만 묶어두려는 우파들의 기획에 말려든게 아닌가라는 음모론적 생각까지 든다. 특히 정의당의 행보를 보면 그렇다.

정의당을 보면서 갑자기 영화고령화 가족’(송해성 감독, 2013 ) 생각났다. 어렵게 사는 엄마(윤여정)집에 얹혀사는 자식 셋의 출생은 모두 각각이다. 큰아들(윤제문) 윤여정의 전남편의 전처가 나은 아들이니 엄마와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고, 작은 아들(박해일) 그나마 윤여정의 정상 결혼 생활을 통해 낳은 아들이지만 막내딸(공효진) 엄마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다. 2 이혼하고 세번째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공효진에게는 사춘기 (진지희) 있다. 엄마는 고령일지 몰라도 자식들의 나이는 결코 고령이라고 없는데 고령화 가족일까?

 

파이란’, ‘역도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연출한 송해성 감독과 원작자인 천명관 작가 (보험외판원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그리고 베스트셀러 장편소설고래 작가로 변신해온 그는 존재만으로도 한국의 마이너리티다) 콤비가 블랙 코미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핏줄에 관계없이 따뜻함으로 엮여지는 화목한 가정? 아니다. 그런 주제는 2006년에 김태영 감독의가족의 탄생에서 이미 확인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모순이 오랫동안(그래서 고령화 가족이다) 축척된 가족의 각기 구성원이 서로 협력과 연대(좋은 말로 해서) 통해 아니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술수 통해 그들의 가족은 깨지 않고 나름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간다. 여기서 박해일은 현재의 정의당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똑똑하고 잘났다. 운동권 출신의 의분과 그것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박해일의 지질한 연기는괴물에서 괴물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던 장면에서 압권이었다. 영화에서도 그는괴물에서와 거의 같은 캐릭터로 등장한다. 감독으로 입봉영화를 말아먹은 역할의 박해일은 조폭들에게 끌려가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맞으면서도 깡패들에게 운동권적 언어로 계몽을 시전한다. 정의당이다.

잡다한 모든 세력을 끌어 모으는 윤여정은 더불어 민주당이다. 다만 잡다한 세력 중에 불의한 세력은 없다. 조폭에 몸담았었지만 끝까지 악인의 길은 가지 않았던 윤제문, 세번 결혼 만에 진실한 사랑을 찾았다고 믿는 공효진, 까칠한 사춘기의 진지희, ‘헤픈미용사처럼 보였지만 결코 헤프지 않았던 예지원이 윤여정 아래로 모여든다. 극중에 정상적인 가족관계로 맺어진 사람은 윤여정과 박해일 뿐이다. 잡다한 세력이 모여 들어도 윤여정과 박해일 사이에는 남들이 범접할 없는 특별함이 있다는 말이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부메랑 가족이다. 던지면 다시 돌아오는 호주 원주민의 사냥 도구인 부메랑에는 부메랑 효과라는 말에서처럼 모든 짓은 자기에게로 결과가 돌아온다는 뜻도 있다.

심상정과 정의당은 극중 박해일처럼 자존심은 조금 상했지만 결국 자신의 꿈을 따라가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박해일이 자존심을 택했다면 가족은 파멸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슬로베니아가 유고 연방에 속해있던 시절에 있었던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사회주의였던 유고에서조차 마르크스 레닌의 책은 금서였다는 것이다. 교조적 이념의 설자리가 줄어든 것은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아직도 순수이념에 집착하는 사람은 심상정과 정용진 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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