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안에 자리하게 된 제국주의의 영성
그리스도교 안에 자리하게 된 제국주의의 영성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2.02.25 0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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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힘

선거철이다. 글의 소재가 넘쳐난다. 그러나 나는 그와 관련하여 글을 쓰지 않고 있다. 새삼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절대적인 우상인가를 절감한다. 국가는 그것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마지막 우상이다.

잘 보라. 모든 후보자들은 국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들이 그러는 것은 국가가 그런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라. 그런 자세로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당선된 사람은 그런 자세로 정치에 임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는가. 가장 정치를 잘 한 사람도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박정희를 보라. 전두환을 보라. 나머지도 다르지 않다. 결국 그들은 사리사욕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안철수라는 분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분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인상이 바뀌었다. 그가 이번 정부를 비방하는 말들을 들어보라. 어떻게 그렇게 지독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이 되었는가.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치판이 그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분의 아내와 딸들까지 망가지기 전에 빨리 정치를 그만두셨으면 좋겠다.

최재형이라는 분도 마찬가지다. 그분도 인간적으로 좋은 분일 것 같다. 굳이 장로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장로가 되었다고 그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내 글의 독자들이라면 다 아실 것이다. 그래도 나름 성서적인 가치를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있던 분이다. 그러나 정치가가 되어 하고 있는 일을 보라. 배신은 차치하고라도 안철수님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말을 내뱉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말을 하나 내뱉을 때마다 그의 영혼은 파괴된다. 말이란 주워 담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물론 타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치가가 되지 않았다면 그토록 지독한 말은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선 후보들을 포함하여 이들 모두는 국가의 권력을 가지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망치게 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후보들 주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국가도 아닌 후보자의 가능성에 자신의 영혼을 판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이 환하게 보이지 않는가. 새삼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진 우상인가를 절감한다. 우상은 영혼을 파괴한다. 그리고 나는 국가라는 우상이 어떻게 사람들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보고 있다. 그래서 선거에 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는 종교였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다.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그리스도교는 더욱 진실한 종교가 되었다. 종교시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던 다른 종교들은 국가에 충성을 맹세하고 박해를 받지 않았다. 그런 종교들은 황제와 귀족들의 비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홀로 빛났다. 다른 종교와의 경쟁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과 사랑으로 그런 모든 불리한 상황을 극복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이교도들을 매료시켰다. 심지어 국가까지 매료시켰다. 그리스도교에 국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그리스도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복음이 가진 힘이다.

그런 그리스도교가 맥없이 국가에 항복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을 주도한 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황제가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면서 교묘하게 국가를 그리스도교와 연결했다.

황제로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의 힘을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회심시킨다는 최고의 목적을 위해 국가의 힘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영화를 보면 무력으로 정복을 한 후에 그곳 추장을 무릎 꿇려 강제로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면 모든 부족들이 그를 따라 그리스도인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리스도교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의 종교들이 하는 짓이다. 바빌로니아 제국의 신이었던 마르둑 역시 동일한 행동을 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이 박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신실하게 그리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나 교회의 자원조차도 회심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교도 역병 희생자들을 돌본 것은 그 희생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의 행위는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것이었을 뿐이다. 선한 자에게도 악한 자에게도 동일한 햇빛을 비춰주시는 하나님을 따라 그들 역시 다른 이들에게 선함을 보였을 뿐이다.

초기교회가 사람들이 모일 집이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장례식이나 과부들을 위한 물품을 요구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과 소유를 내어줌으로써 그들의 필요에 응했다. 그런 그들의 섬김과 희생과 관대함이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생각을 해보라.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리스도교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고 온갖 근거없는 비난들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시체와 피를 먹는 자들이며 근친상간을 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적대적인 상황을 오직 자신들의 신실한 삶으로 극복했다. 심지어 그런 자신들에게 매료되어 다가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한 사람조차도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았다. 그들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 그리스도인 지원자로 삼아 오랜 기간 훈련시켜 마침내 그들의 반사적인 행동까지 그리스도인의 덕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 교리교육을 시키고 믿음을 고백하게 한 후 세례를 주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자매와 형제들로 그들을 맞았다.

그러면 이제 생각을 해보자. 힘으로 정복한 부족을 무릎 꿇려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잘못된 접근이었나. 그런 그들이 복음을 아는가. 그런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덕이 생기는가. 그런 그들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가.

로마라는 국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정복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선교이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그리스도교는 이것을 선교라고 하고 그리스도교의 확장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확장이 아니라 로마라는 제국의 확장이었을 뿐이다. 그것은 선교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이후의 그리스도교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했다. 식민지 정복의 선봉에는 언제나 선교사가 있었다. 개신교 선교사들 뒤에도 그들의 국가가 있었다. 이 얼마나 슬픈 그리스도교의 역사인가.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향하게 하는 유인책으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에 로마의 재정을 투입하는 법령들을 반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로마의 재정으로 라테란 성당과 같은 성찬을 위한 바실리카를 건축하게 했고 장례식을 위한 바실리카도 건축했다. 그렇게 그는 로마 변두리에 여섯 개의 바실리카를 건축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하부구조가 되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신앙의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국교화로 이어졌고 이후로 교회는 세상의 하부구조가 되어 힘과 영향력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다.

교회는 힘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힘의 사용을 거부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어떤 힘이라도 남아 있는 한 인간은 그 힘을 의지하게 되는 존재이다. 그리스도교가 국가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의 본질은 우상숭배이고 이후로 우상숭배가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성서의 두 구절을 인용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하게 힘의 사용을 거절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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