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개혁 실패가 부른 보수의 ‘귀환’
[시론] 정치개혁 실패가 부른 보수의 ‘귀환’
  • 지유석
  • 승인 2022.03.16 0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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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회 거머쥐고도 개혁 미진한 민주당, 패배 쓴잔 감수해야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일제히 치러진 가운데, 선거사무원들이 개표를 위해 개표함을 열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일제히 치러진 가운데, 선거사무원들이 개표를 위해 개표함을 열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씨 탄핵으로 존립 위기에 몰렸다가 극적으로 정권을 되찾아 왔다. 

공교롭게도 윤 당선인의 당선이 확정된 3월 10일은 5년 전 박 씨가 탄핵된 날이기도 했다. 도대체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단 개인적인 소회부터 적고자 한다. 대선 직전까지 느낌은 좋았다. 지금도 나쁘지 않다. 지난 사전투표, 그리고 본투표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민주의식은 실로 감탄스러웠다. 비록 가장 당선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후보가 당선됐지만 말이다. 국민이 윤석열 당선인을 선택했고, 따라서 결과를 존중하는 게 주권자의 도리다. 

이번 선거는 집단지성과 집단욕망의 싸움으로 요약하고 싶다. 검찰총장직을 바로 내던지고, 정치에 입문한, 하지만 고발사주 의혹과 장모·부인 비리 의혹에 휩싸인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해선 안 된다는 쪽과 ‘빨갱이’가 나라를 망쳤고, 집값을 폭등시키고 종부세 폭탄(?)을 떨어뜨린 문재인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쪽이 팽팽히 맞섰다는 말이다. 

결과는 집단욕망이 0.73% 차이로 승리했다. 집단지성이 집단욕망에 패배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집단지성의 크기가 무척 커졌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만약 윤석열 아닌 다른 후보가 나왔다면?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막판 스퍼트를 내지 않았다면? 특히 N번방 추적단 ‘불꽃’ 박지현 씨가 2030여성들의 마음을 붙잡지 않았다면? 아마 민주당은 참패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한 걸음 더’이다. 검찰 조직은 충분히 개혁되기 전 너무 큰 권력을 움켜줬다. 이 조직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로펌 구실을 하면서 괴물이 됐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거칠게 저항했다. 그러더니 보수 제1야당을 집어삼켰고 급기야 대통령직까지 차지했다. 

민주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민주당은 지방권력에 이어 의회권력까지 차지했다. 

민주당은 사법권력을 제외한 모든 권력을 차지한, 전무후무한 위치를 점했다. 문제는 민주당의 개혁역량이 충분히 쌓이기 전 과분한 권력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모든 권력을 몰아준 건 적폐를 청산하고, 정치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같은 열망을 도외시한 채, 우왕좌왕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재계 반발로 중요한 사각지대를 남긴 채 국회 문턱을 넘었고 차별금지법은 10만 국민청원·삼보일배·도보행진 등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부에서 통과가 요원하다. 

민주당은 비판 여론이 비등할 때 마다 ‘기울어진 운동장’ 탓으로 돌렸다. 언론지형이 민주당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민주당의 불만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변명이 민주당의 책임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열망 속엔 언론개혁도 포함돼 있었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을 마련했지만 이는 오히려 시민사회와 언론업계 모두로부터 역풍을 맞았다. 그만큼 언론개혁의 방법에 대한 고민이 미숙했다는 말이다. 치열하고 정교한 제도적 고민 없이 기울어진 운동장만 탓하는 건 평범한 게으름일 뿐이다. 

이렇게 나쁜 쪽은 더 나쁘게 진화하는데, 좋은 쪽이라 생각했던 곳은 앞으로 한 발 나가지도 못하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브라질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가운데, 윤 당선인이 조셉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 사진 = 국민의힘 공보실 제공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가운데, 윤 당선인이 조셉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 사진 = 국민의힘 공보실 제공

지난 대선 기간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가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연출자인 페트라 코스타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개혁을 참칭한 정치세력이 집권해서 개혁을 충분히 이뤄내지 못하면 기득권 세력에게 역습을 당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제20대 대선 결과는 브라질의 사례가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부디 윤석열 당선인이 앞으로 5년간 50대 50으로 갈라진 이 나라를 잘 추슬러 주기 바란다. 

민주당은 다시금 신발끈을 동여매고 정치개혁에 중단 없이 매진해 주기 바란다. 혹여 행정부가 폭주하려 할 때 민주당의 다수 의석이 얼마든지 제동장치 구실을 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이 같은 구실마저 등한히 하면 2년 뒤 총선에서 민주당은 존립을 걱정해야 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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