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 소천, 민중신학 큰 별 지다
‘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 소천, 민중신학 큰 별 지다
  • 지유석
  • 승인 2022.04.09 0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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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진영 ‘민중과 생명’ 천착한 고인 기려, 8일 장례위원회 구성
한일장신대 총장을 지낸 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가 7일 소천한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한일장신대 총장을 지낸 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가 7일 소천한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한일장신대 총장을 지낸 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가 7일 소천한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고인의 빈소엔 에큐메니칼 인사의 조문이 잇따르고 있다. 

고 김용복 교수는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70년 귀국해 민중신학을 알리는 데 공헌했다. 

그간의 이력을 살펴보면 산돌교회(예장통합) 담임 목사, 산돌노동문화원 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 통일문제전문위원,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88선언 초안작성,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담당 부원장, 한일장신대학교 초대총장, 한국민중신학회 회장, 아시아태평양생명학연구원 이사장, 한국YMCA생명평화센터 고문, 평화통일을 위한 기독인연대 상임고문, 기독청년의료인회 고문, 사회적가치경영연구원 원장, 희년과 상생 사회적 네트워크 고문, Peace for Life 의장, 글로벌카이로스아시아태평양팔레스타인연대 초대회장 등을 두루 지냈다. 

이날 세브란스 병원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데 이어 ‘고 김용복 목사 에큐메니칼 장례위원회’도 꾸려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안재웅 이사장이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홍정 총무는 고 김 교수를 “평생 민중과 생명이란 화두를 붙들고 한반도가 겪은 고난의 세월을 믿음으로 승리한 분”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고 김 교수께선 모든 생명이 잔치를 벌이는 세상을 만들고자 꿈꾸고 실천하고, 믿음으로 정진했다. 명예나 부를 탐하기 보다 민중의 자리에서 시작해 그 자리로 돌아간, 실천의 삶을 사신 분이기도 하다. 고 김 교수를 역사 속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분의 제자도를 따라 살겠다”고 약속했다. 

안재웅 이사장은 민중신학자임을 강조했다. “고 김 교수는 이 땅의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민중신학에 상당한 영향을 준 토대를 마련해 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의 방향성을 늘 전해줬던 선지자였다. 그에게 고맙다”고 안 이사장은 밝혔다. 

한일장신대 총장을 지낸 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가 7일 소천한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한일장신대 총장을 지낸 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가 7일 소천한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한일장신대 총장을 지낸 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의 빈소가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가운데 안재웅 공동장례위원장이 헌화하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한일장신대 총장을 지낸 1세대 민중신학자 고 김용복 교수의 빈소가 8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가운데 안재웅 공동장례위원장이 헌화하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소셜미디어에서도 추모의 글이 올라고 있다. 대한성공회 주낙현 신부(영등포교회)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그의 방법과 고민이 내 이십 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던가? 민중신학계에서 그의 방법론이 신학적 문화기술지로 더 나아갔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고민을 깊이 했다. 그 탓에 교회사를 공부했고, 연관이 없는 듯 하지만 다시 전례학으로 지경을 달리 펼쳐나가는 작은 계기이기도 했다”고 적었다.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도 “고인은 내가 이 학교(한일장신대) 신학과 교수로 지금까지 봉직하며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후한 조건으로 받아주신 분”이라면서 “좁은 파당적 울타리에 매이지 않고 널리 인재를 구해 한국의 신학을 혁신하고자 한 김 박사님의 꿈은 아직도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지만 후학들이 그 바톤을 이어받아 꾸준히 정진해 나가리라 믿는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장례위원회는 9일 오후 5시 고별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고인의 발인은 9일 오후 8시이며, 장지는 국립하늘숲 추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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