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축하합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2.04.19 0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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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우울한 부활절이었다. 아침에 페친 한 분으로부터 부활절 축하인사 메시지가 왔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그분에게 “네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라는 답신을 보냈지만 그건 그냥 익숙해진 몸짓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속수무책 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죽고 또 죽어야 한다. 러시아 본토를 침범하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러시아의 엄포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며 이유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전쟁에서는 힘을 가진 자가 이길 뿐이다.

이보다 더 화가 나는 일이 있다.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부활절 연합 예배에 참석해 주신 우리 윤석열 대통령당선인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뉴스엔조이 기사에서 인용)

이것이 부활절 연합예배의 설교에서 소강석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욕이 나온다. 이런 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를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뿌리치지 못한 이후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는 반복되는 일이 되었다.

세상의 유력자들이 예배에 참석하기만 해도 감지덕지하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그런 그리스도교에서 축하하는 부활절이란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그런 곳에서 드려지는 성찬이란 또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내가 시니컬하게 느껴지는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부활이, 부활이 아니라 상투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허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부활은 모든 것을 바꾼 터닝포인트였다. 제자들에게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생명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제자들은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아첨을 하거나 마치 자신이 그런 권력자들 위에 존재하는 영적인 권력을 가진 것으로 아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란 도대체 소속이 어디인가. 다시 카노사의 굴욕이 반복될 것인가.

그렇게 우울해 하는 나에게 주님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과학이 발달했다면 “지체”라는 단어는 “세포”라는 단어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세포들이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는 어마어마한 정보가 담여 있는 DNA가 새겨져 있다. 우리 몸의 어떤 세포에도 이 DNA가 새겨져 있지 않은 세포는 없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DNA가 새겨져 있지 않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백날 성찬식을 해보라. 그건 아무런 의미도 효과도 없다. 그리스도의 DNA가 새겨져 있어야 성찬은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인 지원자들에게 그리스도의 DNA를 새겨주었고, 모든 정보가 담겨 하나의 세포로서 몸의 지체를 이룰 수 있게 되었을 때 세례를 주어 그것을 확증하고 몸의 일부로 받아드렸다. 그렇게 줄기세포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몸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부분에 사용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한다. 물론 그 전에 성도는 온전케 되어야 한다. 성도가 온전케 된다는 것의 의미는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DNA가 온전히 새겨지는 것이다.

첫 번째 제자들의 기사는 그리스도인에게 DNA가 새겨지는 방식을 암시하는 禪門禪答이었다.

"랍비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와서 보아라."였고 제자 지망생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냈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DNA가 새겨지는 방식은 함께 지내며 보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장인과 도제식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식은 예수님이 제자 삼으신 방식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 지원자들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보고 그리스도의 DNA가 새겨졌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 지원자에게 그리스도의 DNA가 온전히 새겨져 있는가를 확인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위 기사의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누가 와도 환영을 받는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오면 할렐루야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나사로와 같이 헌데를 앓는 거지들은 문전박대를 당한다. 이것은 상징이나 풍자가 아니다. 오래 전 르포기사에서 확인되었듯이 노숙자들을 환영하는 교회는 한 군데도 없었다. 하룻밤 묵을 곳을 제공하는 곳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DNA가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인 지원자들에게 그리스도의 DNA가 새겨지는 과정과 시간을 감내하지 못한다. 아니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의 DNA가 새겨져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DNA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리스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믿느냐는 질문에 아멘이라는 대답만 하면 된다.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겠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만 하면 된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DNA가 새겨질 도리가 없다.

그리스도의 DNA가 새겨지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보라.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먹먹할 뿐이다.

이것이 내 우울의 정체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나는 우울했고 주님은 그런 내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상기시켜주셨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나의 무력함과 쓸모없음에 낙담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그리스도의 몸의 상기는 활력이 되었다.

손의 역할을 하는 민들레국수집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성찬을 거행하는 목사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대기상태에 있는 줄기세포라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 나는 필요한 때에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필요한 지체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이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룩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사람들이다. 부활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에게 감격이 된다. 그것을 일깨워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부활의 감격을 진심으로 전한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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