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증오의 저편에 서 있는가?
교회는 증오의 저편에 서 있는가?
  • Michael Oh
  • 승인 2022.05.2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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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나이트 총회장, 인종 문제로 교단 내에서 받은 노골적 비난 협박 메시지 공개
아시안 증오 범죄에 자성과 적극적인 행동 촉구

[뉴스M=마이클 오 기자] 인종 혐오의 뿌리는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교계도 깊게 내려 있다. 평화와 비폭력 전통 위에 세워진 교회까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다.

지난 15일 아시안 대상 총격 사고가 일어난 제네바 장로교회(게티이미지)
지난 15일 아시안 대상 총격 사고가 일어난 제네바 장로교회(게티이미지)

메노나이트 교단 총회장 글랜 가이튼(Glen Guyton)은 지난 5월 16일 교단 서신을 전했다. 최근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인 대상 혐오 범죄에 대해 교단의 적극적인 행동과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 서신이 발표되자 메노나이트 교단 내외부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있다. 서신이 인종 문제를 대하는 교단 내 실상을 폭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튼 총회장은 최근 댈러스와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잇달아 일어난 총격 사건을 언급하면서 애도와 슬픔을 표했다. 더불어 메노나이트 비전 선언문을 인용하면서, 메노나이트 교회가 여전히 이 선언문을 믿고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우리 비전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은혜와 기쁨과 평화의 공동체로 장성하여, 하나님의 치유와 희망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흘러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 소명을 믿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우리 눈이 어두워져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까?”

격앙된 듯 들리는 질문의 이유는 곧바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메시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가이튼 총회장은 자신의 교회도 “폭력을 일으켰던 동일한 증오와 수사(rhetoric, 修辞)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한 뒤, 자신이 익명의 교인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안녕하시오, 글랜. 충고하나 하지요. 당신의 반인종주의 용어들일랑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처박아 두시오. 그리고 어서 엉덩이나 쳐들고 일어나 누군가 당신에게 뭐든 주기를 요구하지 말고 생산적인 일이나 좀 하쇼 !”

“충고 한마디: 뒤를 조심하시오, 형제! 당신이 그럴듯하게 정치적인 올바름의 주자가 된 이유(흑인, 퇴역 군인, 비 메노나이트 출신)는 바로 당신이 공격당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뜻하지. 심지어 당신을 뽑아준 자유주의자들, 등에 칼 꽂기를 좋아하는 그치들에게도 말이요.”

“난 교회를 사랑해요. 하지만 내가 게이나 트랜스젠더 그리고 BLM(Black Lives Matter)나 경찰과 진보적 법관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국수주의자, 동성애 혐오자로 불릴 때, 당신은 오직 가난한 자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더욱 조장하는 것이요. 이걸 모른단 말이오?”

이 메시지는 가이튼 총회장이 그동안 메노나이트 교단과 교인으로부터 받은 편지 일부라고 밝혔다.

메노나이트 교회는 태생부터 수많은 희생과 죽음으로 평화와 비폭력 전통을 세워온 대표적인 교단이다. 오늘날까지도 세계 각지에서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치르고 있는 희생과 노력은 많은 이에게 상징적인 위상으로 다가간다.

글랜 가이튼 메노나이트 교단 총회장(메노나이트교단 홈페이지)
글랜 가이튼 메노나이트 교단 총회장(메노나이트교단 홈페이지)

하지만 이런 교단의 대표인 총회장에게까지도 서슴없이 혐오와 협박조의 메시지를 보낼수 있는 현실은 충격적이다. 일부 극렬한 교인의 일탈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가이튼 총장이 서신에 공개했다는 사실은 사태의 실상이 그리 가볍지 않다는 것을 가늠하게 한다.

메노나이트 교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미국 주류 복음주의와 백인 우월주의의 결탁은 이미 상식에 가까운 인식이다. 일부 진보적인 교단과 교회조차도 더 이상 통일된 입장과 방향성보다는 교인 각자의 정치적 위치와 상황에 따라 분열되고 분화되고 있다.

신념과 신앙을 향한 투쟁이 더 이상 교단이나 진영의 범위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국 교회와 미주 한인 교회 역시 이 현실에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혐오와 증오가 신앙의 언어를 통해 유포되고, 폭력과 죽음이 진리의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오늘날이다.

외롭게 푯대를 지키는 가이튼 총회장이나 저마다 자리에서 신앙의 양심을 위해 핍박받는 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용기가 요구되는 시대다.

<서신 전문>

https://www.mennoniteusa.org/menno-snapshots/our-church-must-take-action-we-are-not-beyond-the-hate/?fbclid=IwAR0Ac6Is65gHlo4sMdkbaykrgBemA689kWWg1V8dlhSyemD4lKU3JQ1iK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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