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선거의 의미를 묻는다
[시론]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선거의 의미를 묻는다
  • 지유석
  • 승인 2022.06.01 0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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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맞는 선거의 계절, 현명한 선택을 위한 조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오는 6월 1일 일제히 치러지는 가운데, 지난 27일과 28일 이틀간 사전투표가 실시됐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오는 6월 1일 일제히 치러지는 가운데, 지난 27일과 28일 이틀간 사전투표가 실시됐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2022년 상반기 대한민국을 요약하는 키워드는 ‘선거’다. 지난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6월 첫날 다시 한 번 지방선거를 치러서다. 

지금 선거판은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있다. 선거철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번 선거는 유독 심하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 후 곧장 치르는 선거인 탓에 지난 대선의 여진이 여전하다. 

5월 마침내 정부 여당에 등극한 보수 국민의힘은 윤석열 새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선 지방선거 승리가 절실하다며 지지를 호소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제1야당으로 자리를 맞바꾼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공화국’ 정부를 견제해야 하기에 승리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정치논리 틈바구니에서 ‘지방선거는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라며 정책 연속성을 위해 지지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지방선거의 경우, 이번이 여덟 번째다. 그런데 이렇게 ‘중앙’ 정치 논리와 엮이며 선거전이 벌어지는 건 아마 처음일 것이다. 이건 역으로 치열했던 지난 대선의 여파가 여전함을 방증하기도 한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또 그리스도인 유권자는 어떤 선택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선택일까? 

흔히 선거는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종종 ‘국민의 뜻’임을 의심하게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층은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이나 대형재난을 겪은 이들에게나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기도 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다. 외국 사례도 민주적으로 선거가 치러졌다고 해서 민주적인 리더가 등장하는 건 아님을 입증하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일이다. 

트럼프는 정통 정치인과 거리가 멀었다. 트럼프 스스로도 아웃사이더임을 자처했다. 문제는 이런 아웃사이더가 민주주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보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대선 이후 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특히 강성 민주당 지지층이 심각한 충격에 빠진 것도 범죄자를 잡아 죄를 주는데 익숙한 새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다가 오는 지방선거는 대선 제2라운드일 수밖엔 없다. 

정치 냉소 부른 정당체제 오작동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오는 6월 1일 일제히 치러지는 가운데, 지난 27일과 28일 이틀간 사전투표가 실시됐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오는 6월 1일 일제히 치러지는 가운데, 지난 27일과 28일 이틀간 사전투표가 실시됐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이렇게 선거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정당체제의 오작동이다. 정당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정치권력의 획득이다. 이를 위해 일반 시민들에게 정치의식을 확산하고 인재를 키운다. 그 과정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을 유권자에게 내놓아 선택을 받게 한다. 

그러나 지금 기성정당은 이 같은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 인재를 키우기보다 계파로 줄 세우고,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당을 하루아침에 바꾸는가 하면, 단지 이름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영입해 후보로 내세운다. 그리고 언론은 이런 과정을 감시하기보다 정파성에 편승해 함량 미달의 정치인을 과대 치장한다. 

이런 현상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만연해 있다. 그러니 유권자로선 최선을 택하기보다 차악을 택할 수밖엔 없는 지경이다.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이제 선거만 닥쳐오면 두렵다. 절대 선출직 공직에 나서선 안 될 정치인이 ‘민주적’ 절차로 선출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현실이 아무리 환멸감을 안겨 주더라도 유권자의 권리는 포기해선 안 된다. 현실적으로 최선을 선택할 수 없다면 차악이라도 택해야 한다. 

유권자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입증해 주는 유력한 근거다. 민주주의에서 아무리 악한 정치인이라도 선거는 피할 수 없고, 그래서 최소한의 선을 고민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선거는 갈수록 최선을 택하기보다 차악을 선택하는 기술로 진화하는 중이다. 

다만, 유권자의 선택을 돕고자 참고할 만한 조언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4가지 조언을 내놓았다. 1)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2)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3) 폭력을 용인허거나 조장하고 4) 언론의 자유를 포함해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정치 지도자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이 네 가지 조언을 잘 기억하면 어느 선거든 표를 줄만한 후보를 추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같은 조언은 그리스도인 유권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간 그리스도인, 특히 보수 개신교 성향의 그리스도인은 단지 정치인이 교회 신도란 이유로 ‘묻지마’ 지지를 해왔다. 물론 최근 들어 이 같은 경향은 다소 희석됐지만, 다수 목회자들은 이 같은 경향이 여전하다. 

민주주의는 힘없는 자라도 한 표를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그리스도 신앙과 맞닿아 있다. 이런 소중한 권리를 합당하게 행사하기 위해선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의 조언에 귀기울여주기 바란다.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치인을 민주적으로 뽑을 때 하나님의 뜻도 이 땅에 이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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