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민주주의 위기 몰고온 ‘로 v. 웨이드’ 파기
[이슈 분석] 민주주의 위기 몰고온 ‘로 v. 웨이드’ 파기
  • 지유석
  • 승인 2022.06.3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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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대법원 보수화 파장, 향후 선거 내전 양상 불가피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로 v. 웨이드’ 판결을 파기하면서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다. Ⓒ 이미지 출처 = 영국 ‘가디언’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로 v. 웨이드’ 판결을 파기하면서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다. Ⓒ 이미지 출처 = 영국 ‘가디언’

지금 미국 전역이 떠들썩하다.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로 v.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다. 이 때문에 일부 주에선 임신중지가 불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미국 보수 개신교계는 반색하는 모양새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 총재인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대법원의 이번 판단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판결”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모든 주가 뱃속 아이들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고 국가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하도록 기도한다”며 대법원 판단을 반겼다. 

사실 임신중절은 미국 사회의 해묵은 논쟁거리이고,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핵심의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논의의 핵심은 임신중절을 둘러싼 찬반이나 종교적 견해가 아니다. 핵심은 ‘정치’다. 

‘로 v. 웨이드’ 판례는 1973년 나왔고, 이후 50년 간 이어져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닐 고서치, 브렛 캐버너, 에이미 코니 배럿 등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연방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보수 대 진보 5 대 4 내지 4대 5로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행정부가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임명하면서 이념 지형은 보수 대 진보 6대 3으로 보수가 절대 우위를 차지했다. ‘로 v. 웨이드’ 판결이 뒤집힌 결정적 이유는 연방대법원의 이념지형이 바뀐 데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의회·백악관과 독립해 사법적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물론 상하 양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만약 민주당이나 공화당 어느 한쪽이 의회와 행정 권력을 동시에 쥐고 있다면 동의는 요식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민주당이 행정부·의회를 장악하고 있으면 대법관 성향이 다소 리버럴해지는 반면 공화당이 다수당에 집권 여당이면 대법관은 보수 일색으로 채워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정권 교체에 따라 대법관 성향이 바뀌고, 이런 변화가 오래도록 유지돼 왔던 법적 판단에 영향을 준 건 무척 심각한 징후다. 

이런 식이라면 현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이 대법관 결원이 생겼을 경우 리버럴 성향의 대법관으로 공석을 채울 수 있고, 대법관의 바뀐 이념 지도가 또 다시 기존 사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더 심각한 건 정권 교체에 따라 50년 간 존중된 헌법적 권리가 하루아침에 불법으로 뒤바뀐다면, 앞으로 선거는 내전 양상으로까지 번질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미국 정치에 보수 개신교계가 기름을 붓는 건 또 다른 위험 징후다. 이와 관련, 미국 보수 개신교계가 로 앤 웨이드 판결 파기를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영국 좌파 성향 신문 <가디언>은 25일 “종교적 우파는 우파 정책그룹, 조직단체, 데이터 이니셔티브, 언론 등 복잡하고 정교한 인프라를 개발하는 데 수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인프라의 중요한 구성 요소는 법적 영역”이라고 적었다. 

즉 보수 개신교계가 ‘로 v. 웨이드’ 판결을 뒤집기 위해 법적 영역에 자금과 조직을 일찍부터 쏟아 부었다는 의미다. 실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묻는다. 지금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선거는,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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