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의 애도 문화와 아베의 죽음
만주국의 애도 문화와 아베의 죽음
  • 김기대
  • 승인 2022.07.12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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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정치다

알베르 카뮈의이방인도입 문장은 유명한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프랑스 원어가 ‘Aujourd’hui, maman est morte’ 원어에는오늘(Aujourd’hui)’ 다음에 쉼표가 있는데 대부분의 한글 번역본에쉼표가 빠져 있다는 쉼표 논쟁에 대해 처음 알았다. 물론 민감한 문제일 프랑스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쉼표가 있는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굳이 삭제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번역본도 있다. 프랑스어를 몰라도 이건 아니다. 카뮈가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삶의 일상성이 파생한 부조리다.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를 위하여 고향에 갔을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가 어색했고, 돌아보니 엄마를 처음 양로원에 보냈을 적이 있었지만 그것 역시 관습이었다고 회고한다. ‘돌아가셨습니다라는 경어체를 사용한 역자는 카뮈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모친상을 당한 아들의 통상적인 애도 방식 속에 뫼르소를 억지로 포함시켰다.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던 졸역이다.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 마찬가지다. 뭔가 대단한 것처럼 전개해 나가다가 통속성에 빠져 버린다. 그런 점에서 죽은 엄마(메릴 스트립 ) 남긴 일기를 보고 통속적으로 분노하려다가 엄마의 짧은 사랑을 받아 들이는 영화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자녀들이 훨씬 성숙하다.

아베가 죽었다. 5일전, 4일전? 모르겠다. 미국 일본 사이의 시차까지 있으니 모호해진다. 날짜를 기준으로 기억하면 되겠지만 그의 죽음이 대단하다고 기억의 공간에 담아 필요는 없다.

혈족 같은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사적 애도를 제외한 모든 애도는 정치 사회적이다. 카뮈는 사적 애도에서 조차 일상성을 벗어난다. 더군다나 사적 애도를 넘어선 정치 사회적 공간에서의 애도가 진영에 따라 다르게 나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 공간에는 아베는 미워해도 죽음은 애도해야 한다고꼰대질이다. 어떤 이는 마가릿 대처 영국수상이 죽었을 그가 가져온 신자유주의에 피해를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 했다고 쓰면서선비질말라고 애도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아베의 죽음은 대한민국 사람에게는 정치,사회, 역사적 영역인데 사적 애도와 정치적 애도를 구분 못하는 정치인들이 애도에 동참했다. ‘내가 만나봐서 아는데 좋은 사람이었다라는 사적 애도다. 문재인이 그랬고 이낙연이 그랬고, 정진석이 그랬다. 뒤로 줄줄이. 누구도 사적 경험을 다른 이에게 강요할 없다. 내가 (언론을 통해서) 만나본 아베는 나의 애도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나같은 사람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 그의 죽음은 슬프지만하는 상투어도 쓰지 않으련다.

만난 적이 없어서 모르는 윤석열은 정치적으로 조전을 보냈다. 현직 수상도 아닌데 분향소가 차려지면 조문하겠다고 나대니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어리벙벙’(주변의 위로에 대한 뫼르소의 반응, 김화영 번역본) 것이다.

아베는 괴뢰국 만주국의 핵심 관료였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아베를 외할아버지와 엮어 애도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그를 거론하는연좌제 아니다. 기시는 일본 근대 우익의 원조 요시다 쇼인의 영향을 받았고, 아베는 요시다와 기시를 정치 사상적 스승으로 삼고 있으니 이들은 시대를 뛰어 넘어 배를 타고 있다. 기시는 1957년에, 아베는 2015년에 미국 의회에서 연설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2015 박근혜 정부 시절 아베의 국회 연설을 두고 한국 외교부에서 발표한 성명서는 다음과 같다.

정부는 이번 아베 일본 총리의 의회 연설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통해 주변국들과의 참된 화해와 협력을 이룰 있는 전환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식도, 진정한 사과도 없었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일본이 의회 연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려면 과거사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반성을 통해 국제사회와 신뢰 화합의 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나, 지금 일본의 행동은 반대로 나아가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배 침략의 역사,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참혹한 인권유린 사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주변국들과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것이다.

박근혜의 아버지가 충성을 맹세했던 기시의 외손자를 향한 박근혜 정부의 성명서는 정치인들의 사적 애도와 윤석열의 조문에 비하면 과격한 편에 속한다.

만주국은 내가 그린 작품”이라고 호언했던 기시는 그때 만주국 총무청 차장이었다. 총무청 장관은 최고위직인 국무원 총리 바로 아랫자리지만 만주인들 몫으로 총리는 실권이 없는 자리여서 사실상 최고실세였다. 밑에서 실무를 장악하고 있던 기시가 만주국이 자기 작품이라고 큰소리친 허언이 아니었다.(한겨레 신문, 2012 9 12)

이처럼 기시는 1941 상공대신으로 군수물자를 조달했고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해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쟁범죄 책임자 명인데 그를 존경한다는 아베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가?

2015 3 현재의 일본 수상인 아베 신조에게 기시 노부스케는, 아베가 어릴 때부터일본의 장래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진지한 정치가”(安倍晋三,『美しいへ』, 文芸春秋, 2006) 인식되었다. 이렇게 아베에게 각인된 기시 노부스케는 아베가 정치인이 되고자 했을 , 아베가 그의 정치적인 색깔을 선명히 하려 , 보수적으로 일본의 미래를 그리려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지속적으로 의거하지 않으면 되는 <존재론적인 조건>이라는 점에서, 현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라고 있다.

글은기초학문자료센터신진 연구자 지원 사업 제출한 노명호의 연구 개요다. 다시말해 이런 연구를 터이니 지원해달라는 신청서에 달린 글이다. 제목은 무려 쇼와(히로히토 시절 일본 연호) 요괴 기시 노부스케의 보수적 DNA 아베 신조의 집념 - 정치적사상 계승관계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이다. 이후로 논문이 검색되지 않으니 연구자금을 못받은 하다. 박근혜 정부의 학술단체에서도 요괴까지는 수용할 없었다는 의미다. 재일교포 연구가 강상중이 그의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 기시를 귀태(鬼胎) 부른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문도 있다.

만선일보’(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한국어로 발간된 일간 신문)기사가 보여주듯 공적으로 애도해야 죽음과 공적인 애도가 금지된 죽음 간에는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것과도 같은 경계가 존재했다. 황군 토벌대의 숭고한 죽음을 열렬히 애도하고 비적으로 총칭되는 반만 항일 세력의 비천한 죽음을 구경거리 삼아 전시함으로써 만주국은 파시즘적 권능을 창출한다. 공적 애도를 금지하는 일은 또한 이미지와 말의 재생산을 엄격히 통제하는 일과 맞물려, 애도가 금지된 존재는 또한 재현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존재` 된다. ( 손유경, ‘만주 개척 서사에 나타난 애도의 정치학’, 2009)

조선인을 포함한 항일 세력을 동물, 비적, 비천, 보이지 않는 존재 등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죽음을 구경거리로 전시한 결정권자였던 기시의 외손자 아베를 애도않겠다는 선택이 최소한의 도리도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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