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에서 질스 마리아까지
토리노에서 질스 마리아까지
  • 김기대
  • 승인 2022.08.2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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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순례 (1) - 힘을 숭상했던 쓸쓸한 철학자

1876 바젤대학 교수이던 니체는 32 젊은 나이에 건강악화로 학교를 휴직하고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찾는다. 그의 병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가족력인 뇌연화증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음악가 바그너의 아내 코지마에 대한 짝사랑도 그를 괴롭혔다. 코지마는 니체가 쉽게 다가갈 있는 여성은 아니었다. 그녀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한스 뵐로우와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한스를 통해 유명 음악가들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난 그와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리하르트 바그너와의 사이에서 3자녀를 출산한 뒤인 1870년에야 한스와 이혼하고 바그너의 () 따르게 되었으니 사람의 관계는 유럽 음악계에서 은밀한 염문(艶聞) 넘어 공인된 불륜이었다.

니체가 바그너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사실혼 관계였던 1869년이었으니 니체는 코지마에게 목사의 아내였던 어머니에게서는 없었던 자신만만함을 발견했고, 아직도 그의 정신 세계 일부를 지배하는 루터교의 '도덕' 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이 쏟아내는 힘과 영웅서사들에 니체는 매료된 데다가 코지마까지 짝사랑하게 되었지만 바그너 부부가 보기에 니체는 허점 투성이의 천재일 뿐이었고 니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부부의 속내가 드러났다.

자신을 아이 다루듯 하는 바그너에 실망한 니체는 1 동안의 이탈리아 생활을 청산하고 바젤대학으로 돌아와서 강의를 이어가던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1879, 부임한지 10년만에 학교를 사직한다. 겨우 10 근무였지만 매년 3000프랑의 연금을 받게 (100년도 시절의 유럽 복지시스템을 보여주는 단면니체는 건강을 위해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1881 처음으로 바젤에서 멀지 않은 질스마리아를 방문했다가 거기서 영원회귀사상 구상한다.

니체의 여정을 따라 보고 싶었다. 의미 있는 (토리노와 질스마리아) 선정해 나름대로 니체 트립으로 명명한 여행을 시작했다. 메사추세츠 대학 철학교수인 캐그의 심연호텔의 철학자들(원제 Hiking with Nietzsche: On Becoming Who You Are)’ 내가 니체트립을 하게 된 소의경전(所依經典)이었다. 캐그는 대학입학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만큼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지도교수의 후원으로 질스마리아를 여행, 그곳에서 니체의 흔적과 마주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학업을 계속해 중년의 교수가 다시 질스마리아를 찾아 책을 펴냈다.

극단적 선택을 할만큼 괴로운 일은 없는 나는 그냥 외로웠던 사내 니체를 느껴 보고 싶었다.

몽블랑 둘레길(Tour du Mont Blanc) 트레킹을 마친 뒤에 샤모니 몽블랑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토리노로 이동했다. 밤늦게 도착해 호텔방이 남아 있을까를 걱정하다가 하룻 밤에 50유로(풍성한 아침도 제공된다) 하는 조그만 방을 잡아 이틀을 묵기로 했다. 니체는 토리노를 찾았을까를 알기 위하여.

 

1888 4월에 니체는 이렇게 썼다. “나의 소중한 친구 토리노는 정말 중요한 발견이다. 여기에서 나는 기분 좋고 중단없이 일한다. 나는 반신반인처럼 먹고 있으며 있다. 건조하고 쾌활하며 에너지를 주는 공기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느낌도 오래 가지 못했고 이듬해 1 광장에서 채찍질 당하던 말을 보호하기 위하여 말을 껴안는다. 이야기는 영화 토리노의 ’(벨라 타르 감독, 2012) 그려져 있다. 갑자기 말의 목을 껴안고 우는 이상한 사람을 만난 마부의 이야기가 영화의 소재다. 때부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11여년의 입원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하던 1900 8 25일의 일이 었다.

토리노 하숙집 자리에  남아 있는 니체의 초라한 흔적
토리노 하숙집 자리에 남아 있는 니체의 초라한 흔적

 

해프닝 이전부터 니체에게는 이상한 기미가 감지되고 있었다. 부르크하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신이 되느니 차라리 바젤의 교수로 남고 싶었습니다라고 썼을 부르크하르트는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평생 신은 죽었다라고 외치던 사람이 신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을 대체하는 신으로 생각한 속마음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신이 되겠다는 기개마저 사라지고 답지 않게 바젤 교수 시절이 좋았다는 소시민적 태도를 보이니 부르크하르트는 니체의 친구 오버베크에게 토리노로 가서 니체를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토리노에서 니체를 만난 오버베크는 하숙집 주인으로부터 니체가 나체로 춤을 춘다는 이야기를 들은데다가 그가 확인한 니체도 정상은 아니었다. “ 누구와도 비교할 없는 표현의 대가가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저속한 표현을 쓰면서 기쁨을 표현하고 괴이한 춤을 추고 요란한 몸짓을 했습니다.”라는 편지를 부르크하르트에게 보냈고 길로 니체를 바젤의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니체의 공생애 끝나는 순간이었다.

기쁨으로 시작한 토리노 생활이 1년도 안되어서 이렇게 되었을까? 토리노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토리노는 이탈리아에서 번째로 도시로 관광 안내 책자를 보면 왕립 박물관’, ‘토리노의 수의’, ‘이집트 박믈관’, ‘지옥의 등이 주로 소개된다. 니체의 하숙집은 가이드북에 나오지도 않는다. 니체는 어디를 둘러 보았을까? 예수의 형상이 나타났다는 토리노의 수의는 25년에 한번씩 공개되니 니체가 관람을 있었는지는 길이 없다. 다만 니체 공생애의 마지막인 1898년은 토리노의 수의가 처음으로 사진촬영이 해이기도 하다. 시간 니체는 바젤의 병원에 있었겠지만 촬영을 놓고 개월전부터 지역 언론이 떠들썩하지 않았을까?

예수를 향한 빌라도의 말에서 따온 니체의 저작 사람을 보라 토리노에서 완성되었다. 니체는 사람예수, 속절없이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에게서 연민을 느꼈. 예수는 힘을 갖지 않았을까? 책의 완성 단계에서 그는 일기나 편지 등에서 이렇게 쓴다.

나의 국제적인 활동을 위해 내가 유대인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가스트에게 보낸 편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인쇄할 사람을 보라에서 완전히 정리했다. 앞으로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12 27)”

과대망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번민이 시작되었다. 파괴와 생성에 관심을 갖던 니체는 대형 조각물 지옥의 앞에서 오랫 동안 상념에 빠졌을 것이다.

토리노 지옥의 문
토리노 지옥의 문

토리노 이집트 박물관은 이집트를 제외한 곳에 있는 가장 이집트 박물관이다. 피라미드에 대한 니체의추앙 이미 질스마리아에서 시작되었기에 이집트의 힘으로 가득찬 박물관은 니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니체와 살로메, 그리고 친구 파울레.  살로메는 이 묘한 동거를 삼위일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살로메가 채찍을 들고 있다.
니체와 살로메, 그리고 친구 파울레. 살로메는 이 묘한 동거를 삼위일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살로메가 채찍을 들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힘의 상징인 말이 마부에게 채찍질 당하는 모습을 보고 니체는 달려가 목덜미를 잡고 울었다. ‘ 추앙해 왔는데 힘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인가? 니체의 머리 속에는 친구 파울 레와 니체가 번을 구애했음에도 받아주지 않았던 살로메와 함께 찍었던 해전 연출된 사진이 불현듯 떠올랐다. 거기서 살로매는 채찍을 마부였고 니체와 파울레는 마차를 끄는 말이었다. 그는 채찍질당하는 말의 얼굴에서 자신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반신반인을 생각하면서 시작한 토리노 생활이 반인반수로 종결되는 드라마, 그가 좋아하던 그리스 신화의 켄타우로스의 피학(被虐)적 결말, 천재 철학자인 동시에 초라한 천재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가이드북이 권하는 필수 코스인 토리노의 유명한 오페라 극장 앞에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공연 안내가 붙어 있다. 바그너와 결별한 니체는 바그너의 장중한 오페라가 아니라 카르멘 같은 유쾌한 내용의 오페라에 빠져들어서 카르멘을 10 이상 관람했다. 그는 유쾌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유쾌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나는 질스마리아에 가기 위해 패션의 본고장 밀라노에서 기차를 갈아타며 취리히로 향했다.

 

여러 인용문은 캐그(전대호 옮김), 심연호텔의 철학자들. 필로소픽, 뤼디거 자프란스키(오윤희, 육혜원 옮김), 니체, 이화북스를 참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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