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장위10구역 재개발 조합, 세입자 울분 기억하라
[기자수첩] 장위10구역 재개발 조합, 세입자 울분 기억하라
  • 지유석
  • 승인 2022.08.30 0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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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사랑제일교회 ‘500억 합의’ 9월 6일 결정, ‘부결이 정의다’
사랑제일교회 들머리에 들어선 망루. 사랑제일교회는 재개발을 두고 수년 간 조합과 갈등을 빚었다. 교회는 명도소송에서 1·2·3심 모두 패했지만, 화염병 등으로 완강히 저항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사랑제일교회 들머리에 들어선 망루. 사랑제일교회는 재개발을 두고 수년 간 조합과 갈등을 빚었다. 교회는 명도소송에서 1·2·3심 모두 패했지만, 화염병 등으로 완강히 저항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사랑제일교회가 정말 500억 원을 손에 쥘 수 있을까? 

우선 개인적인 심경부터 적고자 한다. 기자는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기에 개인적인 감정은 엄격히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제일교회 500억 합의금’ 문제를 다루면서는 쉽사리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보다 오히려 소명의식까지 느꼈다. 사랑제일교회가 500억을 손에 넣는 부조리를 절대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소명의식 말이다. 

재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입자와 조합 간 갈등은 대한민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부조리다. 무엇보다 재개발 사업에서 조합은 ‘갑’이고, 세입자는 ‘을’이다. 세입자는 조합이 책정하는 보상금을 군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혹시라도 강하게 권리주장을 하면 한 밤 중 용역이 들이닥치는 일을 각오해야 한다. 

법도 세입자 편이 아니다. 명도소송이란 법 절차가 있는데, 이 소송에서 승자는 거의 예외 없이 조합이다. 결국 힘없는 세입자는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재개발이 이토록 세입자에게 무자비하게 이뤄지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장위 10구역에서 사랑제일교회는 ‘갑’, 그것도 ‘슈퍼갑’이었다. 사랑제일교회는 조합과의 초기 협상에서 500억이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해왔다. 조합은 예의 명도소송을 냈고, 1·2·3심에서 차례로 이겼다. 또 조합은 최종적으로 교회만 빼고 개발하기로 정했다. 

그러다 7월 갑자기 교회와 조합이 합의했다는 소식이 불거져 나왔다. 진원지는 전광훈 목사였다. 전 목사는 설교 시간에 합의문을 보여주며 500억에 합의했다고, 예의 그만의 당당한 어조로 알렸다. 

이 같은 소식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JTBC 등 일반 언론이 조합과 교회의 합의사실을 앞다퉈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조합 측에 확인한 바 아직 최종합의엔 이르지 않았다. 조합은 언론에 알려진 합의문은 ‘총회 안건 상정을 위해 문건화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슈퍼 갑’ 사랑제일교회, 공권력은 뭐했나? 

26일 새벽 1시 20분 경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집행 인력 570여 명을 투입해 사랑제일교회 명의양도 집행에 나섰다. 하지만 이 교회 신도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고, 한 신도가 화염방사기 추정 물체를 들고 나오는 장면까지 포착됐다. ⓒ MBC
26일 새벽 1시 20분 경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집행 인력 570여 명을 투입해 사랑제일교회 명의양도 집행에 나섰다. 하지만 이 교회 신도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고, 한 신도가 화염방사기 추정 물체를 들고 나오는 장면까지 포착됐다. ⓒ MBC

아직 최종결정이 나온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교회 측이 비현실적인 요구를 굽히지 않는데다,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기에 조합원 모두가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합원 총회가 이 합의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아무리 계산해보아도 사랑제일교회 측과 합의한 500억 보상금은 비현실적이다. 

당초 법원 감정가는 84억 가량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명도소송 1심 직후 고등법원이 내놓은 안은 148억 보상금에 대체부지다. 

앞서 적었듯, 세입자가 적정 보상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현실임을 감안해 보면 사랑제일교회는 합의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교회는 보란 듯이 버텼고, 되려 조합이 굴복하는 모양새가 펼쳐지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이 대목에서 아쉬운 건 공권력의 방관이다.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은 교회에 망루를 세우고 화염병 등으로 극렬히 저항했다. 이로 인해 여섯 차례 명도집행을 시도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그런데 다른 세입자라면 공권력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물러섰을까? 용산참사에선 세입자가 극렬히 저항하니까 경찰이 특수요원을 동원해 진압하지 않았던가? 모든 언론이 나서서 세입자를 불순세력으로 낙인찍지 않았던가? 

힘없는 세입자를 탄압하는 공권력과 언론은 적어도 사랑제일교회엔 관대했다. 조합이 이런 교회에 500억을 주고 합의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적어도 장위10구역에서 재개발 조합과 사랑제일교회간 합의는 단순 민사상 합의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재개발 역사, 그리고 개신교 교회 역사에 남을 합의다. 만약 총회가 합의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역사에 길이 남을 ‘흑역사’가 완성된다. 

부디 조합원 모두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힘없이 쫓겨나는 세입자의 울분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결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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