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현대 교회에도 발자취 남기다
영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현대 교회에도 발자취 남기다
  • 지유석
  • 승인 2022.09.17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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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사 빌리 그레이엄과 ‘특별한 관계’, 한국 성공회 방문하기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 시간) 영면에 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임했던 지난 70년은 그야말로 역사 그 자체였다. ⓒ 사진 출처 = 더 텔리그라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 시간) 영면에 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임했던 지난 70년은 그야말로 역사 그 자체였다. ⓒ 사진 출처 = 더 텔리그라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 시간) 서거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임했던 지난 70년은 그야말로 역사 그 자체였다. 개신교를 비롯한 그리스도교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미국 출신의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과 각별한 관계였다. 첫 만남은 1955년 3월 스코틀랜드 전도대회 인도를 위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이뤄졌다. 두 사람의 우정은 40여 년 이상 이어졌다. 

지난 2002년 여왕은 빌리 그레이엄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빌리 그레이엄도 “영국에서 여왕만큼 다정하게 대해준 이는 없었다”고 회고했다. 

현대 시대의 군주와 미국 출신 부흥사와의 만남은 이른바 ‘셀렙’간 만남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왕과 빌리 그레이엄의 ‘특별한 관계’는 무척이나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수장으로서 대주교, 주교, 주임사제 임명권을 갖는다. 이 같은 권한은 헨리 8세 이후 이어온 전통이다. 

반면 빌리 그레이엄은 대중매체 시대에 등장한 부흥사다. 말하자면 고교회 전통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신 물결의 선두주자를 맞아들인 셈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한국 교회에도 작은 발걸음 하나를 남겼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99년 한국을 방문했었다. 여왕은 그야말로 분초 단위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 일정 가운데엔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방문도 포함돼 있었다. 영국 성공회 수장으로서 방문이었다. 

당시 주교좌성당 주임사제였던 김근상 전 주교는 주임사제 자격으로 여왕을 맞이했다. 김 전 주교는 여왕 방문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많은 시간을 머무르지는 않았다. 성당 안에선 해금연주자 강은일 교수의 해금 연주를 귀기울여 들었다. 이어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영국군 병사를 추모했다. 여왕은 성당벽에 새겨진 추모글귀를 유심히 살펴봤다” 

짧지만 강렬한 기억 남겼던 성공회 수장 

김 전 주교는 한국 방문 당시 짧은 만남을 가졌던 여왕을 2008년 영국 런던 람베스 회의에서 재회했다. 참고로 람베스회의는 전 세계 165개국 성공회 주교들이 10년마다 모이는 주교회의다.

김 전 주교는 당시에 대해 “람베스 회의에 갔다가 여왕이 주최하는 버킹엄 궁 파티에 참석했다. 파티에선 남편인 고 필립공이 저를 기억하고 여왕에서 알려줘서 재회했다. 참 뜻 깊었다”고 털어 놓았다. 

김 전 주교가 기억하는 여왕은 과묵하고 품위 있는 교양인이었다. “별반 특별한 기억은 없다. 다만 말수가 아주 적었다. 한국 방문 당시엔 남편인 고 필립 공께서 말씀을 더 많이 했다. 오랜 기간 왕실에서 교육을 받아서일까, 남다른 품위가 인상적이었다”는 게 김 전 주교의 기억이다.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이후 영국은 슬픔에 빠졌다. 그러나 오랫 동안 영국의 압제를 받았던 아일랜드와 아프리카 이남의 나라들은 여왕의 서거에 반색하는 기색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군주제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군주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새삼스럽지 않다. 신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도 옥스퍼드 재학 시절 군주제 폐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품위와 새로움을 기꺼이 포용하려는 열린 자세로 여왕의 소임을 다했고, 이 같은 존재감은 군주제 폐지 논의를 잠재웠다. 여왕의 남다른 품위는 현대 교회의 변화하는 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왕은 19일(현지시간) 세상과 영원히 작별을 고한다. 개인적으로 성공회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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