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2.11.09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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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쓰기는 오랜 사유의 과정이자 그 산물이다. 나는 매일 글을 쓰면서 복음과 교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다.

오늘날 교회에는 그리스도인이 없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쫓아내는 곳이 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변질되어 개혁으로는 회복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오늘날 복음은 더 이상 예수의 복음이 아니라 맘몬의 복음으로 대치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와 교회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처음 출발은 개혁의 일환이었다. 오래도록 나는 제도권을 기웃거렸다. 그래도 어딘가는 교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혁하면 다시 교회가 될 수 있는 교회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복음이 무엇인지. 복음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제도권 교회들을 미워하게 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과 피조세계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제도권 교회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사실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곳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오늘날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랑한다.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 결국 희생의 체제가 된 그곳에서 노력하면 할수록 희생양이 되고 마는 현실을 나는 이해한다.

그곳에서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됨으로써 그들은 제도권 교회와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된다. 그곳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을 내고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들 가운데 자기 부족을 깨닫거나 더 큰 하나님의 꿈을 꾸면서 자신을 비워가는 사람은 나올 수 없다. 그런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도달했던 ‘회칠한 무덤’이다.

내가 그런 교회를 떠나라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교회가 밉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에 다니는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이 밉기 때문이 아니다. 특히 나만 옳다거나 내 교회의 교인이 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지 않았다. 제도권 안에서 바른 교회가 되어 본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교회를 이룬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이단의 혐의를 받게 될 것이고, 본이 되기는커녕 혹세무민하는 비상식적인 교회라는 지적을 받게 될 것이다.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성서에 기록된 초기교회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이 기사를 읽는다. 아무도 이 기사 앞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사실 그래서 이단들이 창궐하는 것이다. 이단들은 오히려 이 말씀과 같은 교회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갖다 바치기도 하고 공동으로 생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는 교회가 정말 이단인가.

오늘날 교회의 흔적은 이처럼 이단인 교회들의 특성이 되었다.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교회들에서 이런 시도가 이루어지면 큰 일이 난다. 그래서 정통 교회들에서는 성서에 기록된 초기교회의 모습을 잘못된 종말론에 경도되어 일어났던 일시적인 현상으로 해석한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함께 하기도 한다. 병 주고 약 주는 곳이 되어 병에도 안 걸리고 약도 안 먹는 곳이 되었다.

“이건 축제가 아닙니다.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핼러윈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되겠죠.”

이태원이 속해 있는 용산구청의 장이신 박희영님이 하신 말씀이다. 박희영님은 책임을 질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데 이분이 교회의 권사님이시다. 그래서 이분이 구청장으로 당선이 된 그 이튿날 박 구청장 취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용산교구협의회가 이 예배를 주관했다.

며칠 전에 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가장 먼저 정치를 군대나 법률가 등과 함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직업군으로 분류했을 것이라는 글을 썼다. 정치가 가장 이기적인 직업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라. 권사가 열심히 권력을 쫓아다니다가 구청장이 되었다. 그런 권사가 나타나자 교회들이 모여 기뻐하며 그것을 감사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생각을 해보라. 이명박님이 대통령이 되셨을 때 장로 대통령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기도가 전국방방곳곳 교회들에서 신나게 울려 퍼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리스도인이 수단과 방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가. 권력을 탐할 수 있는가. 돈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런 곳,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

동의하지 않는가. 아니 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그런 교회를 계속 다니시라. 그런 분들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동의한다면, 그런 현상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를 떠나라. 변질된 그리스도교를 보라. 그리고 울라. 그러면 성령이 그런 사람을 인도하실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불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게 하실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모든 글의 요지가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의 페친을 수락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은 아무리 내가 이런 내용을 글로 쓰고 그것을 읽고 깨닫고 찔림을 받아도 아무것도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처음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목사직, 장로직, 권사직, 안수집사직, 집사직 아낌없이 버리라. 이미 계급이 되어버린 그런 직분을 벗어버리지 않는다면 모두가 평등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길도 없다.

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이렇게 변질된 교회의 열매이자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새삼 그런 그를 비난하고 질타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분을 통해 변질된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실상을 보시기를 바란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흔하지는 않아도 신실한 분들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주님을 맞아들이는 분은 아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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