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뒤끝] 삿된 권력이 횡포를 일삼는 시대, 성직자 윤리는?
[뉴스 뒤끝] 삿된 권력이 횡포를 일삼는 시대, 성직자 윤리는?
  • 지유석
  • 승인 2022.11.15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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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대전교구 김규돈 전 신부 SNS 게시글 파장이 남긴 것
대한성공회 감사성찬례 예식. 성공회는 성찬례 예식 중간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 순서를 따로 마련해 정치인을 위해 기도한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대한성공회 감사성찬례 예식. 성공회는 성찬례 예식 중간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 순서를 따로 마련해 정치인을 위해 기도한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불의한 권력이 전횡을 일삼는 시대 교회와 성직자는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소속 김규돈 전 신부의 SNS 게시글 파문이 던지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원주교회 협동사제로 시무하는 김규돈 전 신부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공유하면서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김 전 신부의 포스팅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즉각 논평을 내고 “대통령 전용기에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수의 수행원들과 기자단 등이 함께 탑승한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할 수 있고 비판할 권리가 있다 하더라도, 성직자로서의 본분을 잊은 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두고 저주를 퍼부은 막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연합뉴스> 등 일반 언론들이 김 전 신부의 게시글을 대서 특필하면서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러자 대한성공회 대전교구(교구장 유낙준 주교)는 김 전 신부를 직권 면직 처리했다. 하지만 여진은 이어지는 양상이다. 특히 보수 진영은 김 전 신부를 향한 날선 비판을 이어나가는 중이고, 일부 진보 성향 스피커 역시 비판에 가세하는 양상이다. 

괴물과 싸우되 괴물은 되지 말자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못 받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사제 신분인 이가 공적인 논의의 장에서 “대통령 전용기 추락 염원” 운운하는 모습은 분명 사제로서 본분을 망각한 처사임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켜나가는 사제는 물론, 타종교의 종교인들의 본분 중 하나는 온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악인이라도 기꺼이 기도하고 먹을 것과 따듯한 안식처를 줘야 하는 일이다. 

더 적극적으로는 지금 윤석열 대통령처럼 당대의 권력자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자의적으로 휘둘러 국민을 힘들게 한다면 분연히 자신이 섬기는 신의 이름으로 꾸짖어야 한다. 

물론 사제든 스님이든 인간이어서 호불호의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전용기 추락을 기원할만큼 특정 정치인이 소름끼치게 싫을수도 있다. 

이런 와중이라도 사제 등 성직에 있는 이들은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삿된 지도자가 부디 악의 길에서 돌이켜 지도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게 해달라고. 

더구나 성공회 감사성찬례 예식엔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가 전례 순서이고, 이 기도 중에 지도자를 위해 따로 기도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여론의 추이가 다소 묘하다. 그냥 간단하게 ‘우리 편’은 ‘뭐가 문제냐?’란 반응이고, ‘저쪽 편’은 비판 수위를 날로 높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문제는 진영을 떠나 성직자로서의 본문에 관한 문제이고, 김 전 신부의 SNS 게시글은 상식에서 한참 일탈했다. 이 점에서 성공회 대전교구의 신속한 면직처분을 환영한다. 처분이 지나쳤는지 여부에 대해선 성공회 내부에서 풀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 김 전 신부를 두둔하는 측이 단선적으로 전광훈 목사와 비교하는데, 이런 비교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단언하는데, 전 목사는 하나님을 버린 사람이다. 회중 앞에서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거침 없이 말한 건 하나님에 대한 포기 선언이다. 

김 전 신부를 두둔하는 측이 정말로 전 목사와 같은 ‘레벨’에서 비교 대상이 되고 싶은가? 부디 괴물과 온 힘을 다해 싸우되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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