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그리스도인과 교회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그리스도인과 교회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2.11.24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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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을 보러 가는 길마다 교회가 있다. 작게는 서너 개에서 많게는 거의 열 개 정도의 교회가 있다. 특히 큰 길가에 그 교회의 마당을 가로지르면 지름길처럼 느껴지는 교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교회의 마당을 지나가지 않는다. 나는 교회의 앞을 지나쳐도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욕심을 차리고 세도를 부리는 자기들만의 城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라. 나만 내가 나가지 않는 다른 교회를 그렇게 느끼는가. 물론 아주 오래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시골의 작은 교회를 보면 정겹게 느껴지고 크리스마스카드에 그려진 예쁜 교회가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예전에 사라진 슬픈 옛 추억이다.

나는 정말 적그리스도가 된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렇지 않은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내가 적그리스도가 되기 시작한 것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한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였다. 그들은 멀쩡하게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빼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장은 왜 일류교회를 놔두고 삼류교회를 나가냐는 것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나가시는 분들은 자신들의 교회야말로 일류교회라며 다른 교회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아주 조금은 자기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표출하는 교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다른 교회 교인들을 노골적으로 빼가는 교회들은 없었다.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도 좋은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그런데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다른 교회들을 도매금으로 삼류교회로 만들었다. 나는 이것이 한국교회들의 경쟁에 불을 붙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쟁하는 교회는 있을 수 없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큰 덩치를 가진 교회는 작은 교회들을 돌보고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여의도순복음교회처럼 지성전을 곳곳에 세우는 교회를 제외하고도 작은 교회들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인들을 나누어주는 교회를 본 적이 없다.

혹자들은 온누리교회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나도 안다. 나는 온누리교회 청년들이 작은 시골교회에 단체로 와서 머물기도 하고 그곳에 일정 기간 출석하면서 그 교회를 섬기기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작은 교회에 와서 그곳 교인이 되는 사람도 보았다. 나는 그런 청년들과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거나 교인이 된 교회에 녹아들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온누리교회 교인이라는 자부심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교회를 차별하는 기재로 작동했다는 것이 그들을 유심히 보아온 내 판단이다.

내가 그런 분들을 왜 유심히 보았겠는가. 그들이 정말 아름다운 공교회의 일부로 드러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람했다. 그들은 위대한 교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교회를 섬기는 십자가를 졌다. 그리고 그들은 영웅들이 되셨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평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이루어진 분당우리교회가 교회를 나눈 것 역시 온누리교회가 이루어낸 결과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차별적인 경쟁을 유발한 것일 뿐이다.

문제가 무엇인지가 보이는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교회가 된다는 것은 똑같아지는 것이다. 평등해지는 것이다. 경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우월감이나 열등감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현저한 특징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속성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바로 사랑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면 이 모든 차이들이 사라지고 모두가 똑같아진다.

왜 신천지가 자기들끼리 십만 명씩이나 모일 수 있는지 아는가.

왜 통일교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표방할 수 있고, 여호와의증인이 따로 모이는지를 아는가.

왜 끊임없이 새로운 이단들이 출몰할 수 있는지 아는가.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가 스스로 차별하고 경쟁하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교회만을 교회로 생각하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어떤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지를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귀에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자신들이야말로 틀림없는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전 세계적인 하나님의 가족이다.

오직 주님만이 만유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아는 백성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부와 사귀면서 그가 주재하는 예배에 참석한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예배에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끼리만 예배를 드렸다. 나는 그들이 부르는 찬송과 그들이 드리는 기도를 함께 드릴 수는 있어도 그들이 나누는 성체를 함께 모실 수는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잘 생각해보라.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해보라. 가톨릭의 그리스도와 개신교의 그리스도는 다른 분이신가. 다른 이유를 말하지 말라. 성체성사를 함께 할 수 없다면 우리의 주님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인간적인 이유로 만유의 주님이심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고의로 위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그리스도인과 교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똑같은 왕의 자녀가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모든 부족과 민족으로부터 모인 한 가족, 한 자매와 형제들이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고 만나는 어디에서나 찬양 중에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모든 교회에는 바로 이 사실이 우리 몸의 디엔에이처럼 새겨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나만 이상한 놈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다행인 것은 그렇지 않은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메노나이트교회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퀘이커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경쟁과 다름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은 막상 이런 교회의 교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도 모르게 관성처럼 다른 교회 교인들을 자매와 형제로 인식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관성을 벗어버린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다른 교인들이 그런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톨릭의 미사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내가 말하는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 교회는 오직 주님만이 만유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아는 백성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라는 사실을 믿는 교회이다. 먼저 우리가 그런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교회들이 같은 그리스도의 몸임과 그곳의 지체들이 자매와 형제임을 선언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 역시 동일하다. 오직 주님만이 만유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아는 백성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를 더 이상 간과하거나 모독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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