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다운증후군 수녀원
세계 유일의 다운증후군 수녀원
  • 국제부
  • 승인 2022.12.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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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프랑스 아름다운 곳에서 기도와 노동의 삶을 실천

가톨릭 매체 CNA(Catholic News Agency)는 다운 증후군을 가진 수녀들이 모인 수녀원에서 미국의 수녀들을 찾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프랑스 남부 앵드르 지역의 깊은 언덕에는 다운 증후군을 앓는 수녀들이 함께 생활하는 수녀원이 있다. 세계 유일의 다운 증후군 수녀들이 모여 명상하고 노동하는 곳의 이름은어린 수녀회(The Little Sisters Disciples of the Lamb)’. 이곳에서는 요한계시록 14:4 수녀원의 원훈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정절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열매로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순수(Innocence) 영성이 이들을 가장 설명한다. 1985,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베로니카라는 젋은 여성이 현재 원장 수녀인 마더 라인(Mother Line) 찾아 왔다. 베로니카는 수녀가 되라는 소명을 받았지만 여러 단체에서 거절 당했다. 하지만 마더 라인은 베로니카에게서 소명을 발견하고 사람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마더 라인은당시 교회와 종교계는 다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종교 생활을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회고했다.

사람은 남부 프랑스 투렌 지역의 허름하고 작은 집에서 공동체를 시작했다. 마더라인은 그러한 소명이 분명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가톨릭 교리문답을 가르친 경험이 있던 마더라인은 베로니카와 함께 일하면서 다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매우 영적인 경향이 있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고 힌다.

마더 라인의 확신처럼 사람으로 시작된 수녀회는 점차 많은 수녀들이 찾아와 1995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고 1999년에는 관상 생활의 정식 종교기관으로 프랑스 가톨릭으로부터 승인받았다.

현재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일곱 명의 수녀가 마더라인과 플로렌스 수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각국의 가톨릭 매체들을 통해 다운 증후군을 가진 수녀 소명자들을 찾고 있다.

출처 : 작은 수녀회 홈페이지
출처 : 작은 수녀회 홈페이지

 

작은 수녀회는 다음과 같은 가지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관상의

기도와 수공예 작업을 통해 관상생활을 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이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고 특히 장애와 질병을 갖고 있는 이들을 기피하는 세상에 대해 위험을 무릅쓰고 "두려워하지 말라" 말해야 한다.

 

일과 기도

수녀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기도 생활과 작업을 배정한다.

 

원칙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관상기도와 노동의 삶이다. 수녀들은 직조(weaving), 도자기, 정원가꾸기를 통해 기도와 노동을 실천하고 있다.

 

수녀원의 홈페이지 주소는 https://www.les-petites-soeurs-disciples-de-lagneau.com/en/ .

가톨릭에서 관상(觀相,contemplatioin)이란: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본성에 참여하여 친밀한 친교를 누리도록 부르시고 있다. 친교의 온전한 형태는 천국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 통하여 이루어지나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직관능력의 씨앗을 받게 된다. 관상은 씨앗을 세상에서 어느 정도 싹트게 하여 꽃피우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교회내 많은 성인들이 영성생활의 '일치의 단계' 도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이를 실천하였다.

 

관상은 일반적 묵상기도와 달리 단순 · 본질의 직관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본질적인 것의 터득에서 오는 것이므로 직관의 기도라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의 친교가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일치로 발전한 나머지 하느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 안에 특별히 긴밀한 양식으로 내재하는 하느님을 본질적으로 바라보고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친교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언어와 개념과 이미지 등에 매개수단을 사용한다. 그러나 친교가 깊어지고 하느님이 사람에게 가까이 현존하심에 따라 그러한 매체가 불필요해지며 마침내 하느님의 () 사람 안에 직접 내재하여 활동하실 때에는 사람의 사고와 감정과 상상은 하느님과의 '침묵의 일치' 방해하는 소음이 되기에 이른다.(가톨릭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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