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전은 십자군 전쟁?
월드컵 4강전은 십자군 전쟁?
  • 김기대
  • 승인 2022.12.13 03: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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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승 진출국의 종교 상황

월드컵 준결승 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4 진출국의 종교를 보면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아르헨티나가 가톨릭 국가이고 모로코는 무슬림 국가다. 나라는 나름 독특한 종교지형을 갖고 있는데 특징을 국가명 알파벳 순으로 정리해본다.

1) 아르헨티나 (2022 10 기준 피파 랭킹 4)

아르헨티나는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 배출국이자 1978 월드컵 개최국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이 해외 유입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로 비판을 받았듯이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독재 권력의 가림막이 되어주었다는 비판을 피해갈 없는 최악의 대회였다. 월드컵이 열렸던 해에도 3만명 가량이 실종 살해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1978 정권을 잡고 있던 호르헤 비델라는 그의 폭정 때문에남미의 나치라고 불렸다. 1976 3 CIA 지원 아래 "좌익세력의 폭력적 위협이 심각하다. 하나님의 도움에 힘입어 완전한 국가 회복을 이룩하고 국민에게 혼란과 부담을 안겨주었던 상황을 종식시키겠다"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광훈 같은 인간이다.

그가 자신의 독재를 희석시키기 위해 개최한 대회가 바로 아르헨티나 월드컵이다.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6:0으로 대파하면서 브라질을 골득실차로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훗날 비델라 대통령이 페루와의 경기 페루의 부채 5천만 달러를 탕감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1978 대회는 지금의 운영시스템과는 달랐다. 조별 리그를 통해 16강이 결정되고 나면 이후 토너멘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현재 방식과 달리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결승 진출까지는 모두 리그 형태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브라질의 결승 진출을 막기 위해 골득실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편법으로 아르헨티나는 결승에 올랐고 3:1 점수로 네덜란드를 꺾어 마침내 월드컵을 거머 쥐었다.

말말이 기독교 신앙으로 좌파 척결을 해야한다고 외치던 비델라는 퇴임 구속 수감되었다가 2013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87세로 악인으로는 천수를 누렸다.

만약 아르헨티나가 카타르 월드컵에 우승한다면 1978 대회의 흑역사가 다시 한번 회자될 가능성이 높다.

 

2) 크로아티아(2022 10 기준 피파 랭킹 12)

크로아티아는 2018 월드컵 결승에서 프랑스에게 4:2 패배해 준우승한 강팀이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1998년에는 3위를 차지하는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대한민국보다 월드컵 진출의 역사가 짧지만 1992년부터 시작된 유교연방의 해체로 인해 크로아티아의 이름을 달고 축구를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축구 신생국은 아니다.

유고 연방이름으로 월드컵에 참가한 것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이 마지막이며 여기서 8강에 올랐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선수들이 주축으로 뛴 1962 칠레 월드컵에서 4강에 것이 유고의 최고 기록이다

지난 2013년 열린 한국 크로아티아 평가전. 여기서 한국은 크로아티아에게 4:0으로 대패했다. 9년 전의 손흥민(11번)이다.
지난 2013년 열린 한국 크로아티아 평가전. 여기서 한국은 크로아티아에게 4:0으로 대패했다. 9년 전의 손흥민(11번)이다.

 

만약 결승에서 크로아티아와 프랑스와 붙게 된다면 아르헨티나와 (통일 이전의) 서독에 이어 32 만에 월드컵 2대회 연속 결승에 맞붙은 팀이 된다. 아르헨티나와 서독은 1986 멕시코월드컵 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에서 각각 1승 1패씩 나누어 가졌다.

크로아티아는 축구를 잘할까? 전술이나 체력적인 면같은 전문 분야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그들의 선전에는 정신력 애국심이 작동한다. 그것이 프랑스 아르헨티나와 다른 점이다. 애국심은 발칸반도 국가들 사이의 오랜 갈등관계로부터 나온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1217년부터 1221년까지 일어난 5 십자군 전쟁의 전범(戰犯)국이다.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들은 2 대전 이후 반소련 빨치산 출신의 티토에 의해 병합되어 유고 연방이 출범한다. 강제 병합으로 인해 연방내 국가들의 종교 갈등은 봉합되었다가 유고 연방 해체 종교를 매개로 한 인종청소의 비극적 현장이 되었다.

7세기 경부터 슬라브족이 지역 맹주가 되었는데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13세기 경부터 세르비아는 동방정교회로 크로아티아는 가톨릭으로 나뉘어졌다.

20세기 들어 남슬라브 민족을 통합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세운 알렉산드르 왕이 1934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불가리아 사람 블라도 체르노젬스키에게 암살당한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확장을 경계한 크로아티아의 테러 단체 우스타샤(Ustasha) 배후에 있는 암살이었다.

2 대전 세르비아 정교회는 반나치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나치의 허수아비 정권이었던 크로아티아의 우스탸샤와 이슬람 파시스트는 35 이상의 세르비아인을 학살하고 정교회 수백개를 파괴했다. 예일 신학부 교수로 있는 '포용의 신학' 의 미로슬라브 볼프가 크로아티아 출신이다. 그는 가톨릭과 정교회가 갈등 관계에 있던 크로아티아에서 오순절 목사의 아들로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동일한 언어권(Serbo-Croatian Language) 속해 말은 같은 말을 하면서도 글자는 크로아티아는 로마자로, 세르비아는 시릴문자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있다두 나라는 발칸의 맹주 자리를 놓고 여전히 으르렁 거리고 있다. 국가주의에 기초한 애국심이란게 본래 그렇지만 크로아티아의 정신력도 결국은 패권주의에 다름 아니다.

크로아티아가 우승한다면 이웃 나라인 세르비아가 가장 배아파 것이다.

 

 

3) 프랑스(2022 10 기준 피파 랭킹 3)

지난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는 월드컵 전력을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강팀이다. 프랑스 축구팀의 대표적 스타 플레이어 음바페는 카메룬 출신의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의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음바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프랑스는 명실상부한 가톨릭 종주국이다. 바티칸이 있는 이탈리아가 가톨릭의 발상지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영향력과 역사는 무시할 없다. 인구의 60% 가톨릭 신자며 98개의 교구와 2만여명의 사제가 있다.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이슬람과 충돌이 잦았으며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프랑스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주체는 신성로마제국이지만 프랑스 왕국도 개별 왕국으로 1 십자군전쟁부터 참전했다. 1 십자군 원정에 맞선 이슬람 국가로는 알모라비드 왕조, 지금의 모로코가 있다.

13세기 힘이 빠진 교황청이 70 동안 다른 살림을 차렸던 아비뇽도 프랑스 지역이다.

종교개혁이후 북유럽으로부터 전해지는 프로테스탄트의 거센 파도를 프랑스와 벨기에가 막아냈다. 1572 바돌로메 데이 학살이 있기 프랑스 개신교인 위그노에게 결혼을 통해 화해의 손길을 먼저 뻗은 것은 가톨릭이었다. 하지만 마르그리트 발루아 공주가 가톨릭이어서 프랑스 위그노 교도인 남편 앙리 4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위협을 느낀 가톨릭 세력이 화해의 분위기 속에 있던 위그노들의 학살을 감행해서 무려 3만여명이 학살당했다. 

프로테스탄트의 물결이 얼마나 거세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학살을 계기로 위그노들은 스위스로 피신했고 프랑스는 명실상부한 가톨릭 종주국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 파리 코뮌, 68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 교회는 위기에 직면했으나 그때마다 파고를 헤쳐나갔다.

 

4) 모로코 (2022 10 기준 피파 랭킹 22)

개신교 국가로 분류할 있는 독일, 잉글랜드, 웨일스,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덴마크 등은 모두 4 진출에 실패했고,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을 대신해서 모로코만이 이슬람 국가 유일하게 4강에 진출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튀르키예가 4강에 든 후로 첫 이슬람 4강 국가다. 모로코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986 다시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국가로는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했다. 이후 별다른 전적이 없다가 이번에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모로코는 아름다운 경치로아프리카의 스위스 불리며 영화로 유명한카사블랑카 모로코에 속한 도시다. 카사블랑카에서는 1943 1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프랑스의 샤를 드골, 영국의 윈스턴 처칠 등이 참여한 회담이 열렸다. 회담에서 전범국들과 일체의 거래 없이 무조건 항복을 받아 내기로 결정했다.

북한과는 1989 2 수교했지만 이전부터 카사블랑카는 국제적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북한 공작원들의 중요한 접선 장소였다(정수일,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 1’, 창비 참조).

711 타리끄 이븐 지야드 장군은 아랍병사 7,000명을 이끌고 스페인에 쳐들어가 일격에 스페인 영토 2/3 차지했다. 이때부터 거의 800 동안 스페인은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다. 무어인은 베르베르 무슬림인데 지금의 모로코인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베르베르는  오늘날 영어의 야만인(barbarian) 어원으로 서구인들이 무슬림들을 낮잡아 보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하지만 그들 자신은 이마지젠(imajighen)으로 부르고 있다. 말은고귀한 출신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 십자군 전쟁 때부터 모로코는 십자군과 맞서서 이슬람을 지켜 냈다. 1904 프랑스는 스페인과 비밀조약을 체결해 모로코를 분할하기로 했으며 조선땅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발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1911 독일과 프랑스가 모로코에서 대립했고, 결과 모로코는 프랑스령이 되었다. 이처럼 근대사에서 모로코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먹이였다. 그런 모로코가 8강전에서 스페인을 꺾고 4강에서 프랑스와 맞붙게 되었다.

모로코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마스지드(모스크) 있으며 이곳에는 22개의 분수와 무려 1400여명이 한꺼번에 목욕할 있는 대형목욕탕, 1000 전의 꾸란 원본이 있다. 85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고 하는 까이르완 대학이 세워졌고 이슬람학에서까이르완 학파 생겨났다. 학파의 영향력은 마그립(북아프리카) 물론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까지 미쳤다고 한다.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로 즐겨야지 정치와 종교와 악연과 구원(舊怨) 가지고 보는 것은 스포츠 정신을 오히려 훼손한다는 비판이 있을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 메시보다 유명하다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축구가 모든 사람을 환각에 빠지게 한다 말을 곱씹으면서 또한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축구를 시청하면 환각이 아니라 진정한 즐김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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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2022-12-13 07:21:03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