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가 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
동화가 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
  • 김동문
  • 승인 2022.12.22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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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의식이 사라진 체제에 순응하는 성경 읽기?
Christ's Entry into Jerusalem, Jean-Hippolyte Flandrin(1842-1848)
Christ's Entry into Jerusalem, Jean-Hippolyte Flandrin(1842-1848)

기록된 성경, 특히 복음서는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또는 벌어질 사건에 관해 공부하는 책일 수 있다. 기록된 성경 이전에 벌어진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날 그 이야기의 모든 것이 아닌 일부분을 기록한 책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이야기가 적힌 책을 봤거나 읽은 이들은 지극히 적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런데 복음서 속 이야기가 벌어지는 현장은 '성경 공부의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렇게 쓰였고, 이 사건과 말과 행위는 구약의 어떤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라는 등의 해설이 덧붙여지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저 그 이야기 속 현장에 다양한 역할로 자리했던 이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눈 앞에 펼쳐지고 귀에 들려지는 동일한 사건(말과 행동 등)을 제각각 느끼고 반응한 자리였을 것 같다.

Carle Vernet’s The Triump of Aemilius Paulus [Metropolitan Museum of Art]
Carle Vernet’s The Triump of Aemilius Paulus [Metropolitan Museum of Art]

기록된 이야기, 복음서에 담긴 그 이야기를 듣던 이들과 그 이야기의 실제 현장 안팎에 있던 이들의 최소한의 공통점은 고대 제국 지배하에 있던 땅에 살던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신분이나 정체성이 로마 시민이냐, 식민지 백성이냐, 제국의 본토에 살던 이들이냐, 식민지에 살던 이들이냐 같은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환영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예루살렘을 열두 번도 더 방문했을 예수님께서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유월절을 앞두고 있었다. 백성도 나귀를 탄 예수님을 향해 감람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호산나’를 연호했다. 이것은 마치 로마 황제나 황제의 명을 받든 개선장군이 승리 행진을 할 때 환호를 하던 장면처럼, 다른 명절에 예수가 예루살렘을 오고 갈 때는 전에 없던 풍경이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은화(데나리온)

황제는 전쟁에서 승리해 그의 이름으로 정복한 성에 입성할 때면, 올리브나무(감람나무) 잎사귀로 만든 화관을 쓰거나 황금관을 썼고, 황제를 환영하는 이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상징이었고, 감람나무 잎사귀는 평화의 여신 팍스Pax의 상징이었다. 이 종려나무 가지는 특정 문명이나 정치 권력만이 독점한 그림 언어는 아니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권에서는 영원성을, 유대 문명에서는 축제를,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권에서 승리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던 그림 언어였다.

그리고 때때로 지리 정치적으로는 유대 땅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로마 제국 지배하에 유대 지역 통치자가 발행한 주화에 종려나무가지가 등장한다. 로마 황제는 머리에 올리브나무 잎사귀로 만든 화관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더욱이 가이사 아구스도 디베료 황제의 은화 데나리온에는 올리브 면류관을 쓴 황제와 종려나무 잎사귀를 손에 쥔 신의 이미지가 담겨있다. 이런 문화 속에 살던 이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바라보던, 그것을 나중에 듣게 된, 읽게 된 이들은 그 사건 묘사에 담겨있는 그림 언어를 통해 무엇을 생각했을까?

로마의 유대총독 Marcus Ambibulus 주화(AD 6?)

이 자리에서 백성이 외쳤던 소리는 어떠했는가? '구원하소서' 또는 '구주'라는 뜻의 히브리어 '호산나'는 로마 황제에게 칭해지던 세상의 구주라는 표현과 닮았다. '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또는 로마 황제를 수식하던 표현을 닮아 있다. '왕' 또는 황제를 떠올리게 한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식, 이것은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회적 정치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었다. 황제의 도시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즉위했음을 백성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있는 것으로 읽을 여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풍자 가득한 행동은, 황제의 신성과 권위에 대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로마 황제가 지배하는 땅에서 황제를 지칭하는 것과 같거나 닮은 표현을 예수에게 쏟아내는 불순한 무리를 바라보는 로마 제국 관계자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이 장면을 목격한 로마 당국과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 권력자들이 느꼈을 긴장감과 분노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싶다. 실제 현장이었다면, 엄청난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을 것이다. 로마 당국과 그 추종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한 신성 모독, 황제 모독을 넘어서는 말과 행동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현장에 있던 예루살렘과 온 사방으로 유월절을 맞이하기 위해 몰려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잖이 흥분하고 설레었을 것이다. 분노와 공포, 적개심을 갖고 있던 이들 또한 그 현장에 있었으리라. 

베스파시안 황제의 유대 정복 기념 주화(AD 71)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에게조차 예수의 이야기는 현장감, 긴장감이 사라진 동화가 된 것만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그 시대를 떠올리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하나님의 아들(신의 아들)인양, 신의 대리인임을 자처하는 이들, 그들의 제사장들, 그들의 호위 인사들도 보인다. 누군가 앞에서 왕 노릇하는 작은 가이사가 너무나 많다. 우리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리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고백과 용기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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