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나안 여인의 고백, 개 같은 삶, 개만도 못한 삶?
한 가나안 여인의 고백, 개 같은 삶, 개만도 못한 삶?
  • 김동문
  • 승인 2022.12.28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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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Mattia Preti, 예수와 가나안 여인 (1565)

개 같은 삶, 개만도 못한 삶?

여기 한 가난한 인생이 있다. 개같은 존재, 개취급받던 한 가나안 여인이 있다. 개처럼 살아가던 인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겉보기에 몰인정한 인종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예수가 보인다. 그런데 '개' 취급하는 현실 앞에서, 스스로 '개'임을 선언하는 여인의 행위는 뜻밖의 당당함이다. 이것은 사회적 언어를 사용한 공감 백배의 대화였다.

(오늘날 레바논 남부 지중해 연안 지역에 있는, 두로와 시돈 지역에 살던)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 15:25-28)

Ludovico Carracci, Christ and Canaanite woman(Cristo e la Cananea), 1595

이 이야기는, 스스로도, 유대인들에 의해서도 개 취급받으며, 개같이 살던 한 가난한 가나안(유대인의 시선에 따르면 그 자체가 개 같은 존재였던 이방인) 여인(남자가 아니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의 이야기이다. ​

주인의 돌봄을 받던 애완견의 존재감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 가운데 한 번 더 살펴볼 것이 있다. 그것은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주인이 있는 개에 관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온 기원전 2세기 경의 석회석 부조

2천 년 전 애완동물 또는 경비견으로 몫을 다하던 개가 있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 주인을 둔 개는 경비견이나 사냥개도 있었지만, 이른바 애완견도 존재했다. 이 개의 존재감은 식민지 백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나은 삶이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반려견만도 못한 처지의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이 적지 않다.

Mosaic of ancient Romans from the Chateau de Boudry

위의 모자이크에는 잔치를 즐기는 이들의 테이블에서 떨어져 나온 고기조각, 음식 조각 즉 부스러기를 하인이 챙기는 장면이 담겨 있다.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에 담긴 장면을 떠올려 본다. 주인 있는 개들이 주인(들)에게 받는 음식은 그저 빵 부스러기가 아니었다. 빵 덩어리이든 고깃덩어리이든, 애완견은 주인 아들의 몫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의 몫을 받는다.

이런 몇 가지를 바탕에 두고 가나안 여인과 예수를 대화를 다시 읽어 본다. 가나안 여인과 예수의 대화 내용은, 우리가 쉽게 아니면 어렵게 생각하는 익숙한 풀이와 다소 거리감이 있지 않나 싶다. 자녀의 떡, 개밥은 구별된다. 주인 아들과 주인의 개 그 둘 모두는 주인으로부터 음식과 개밥을 받는다.

이렇게 볼 때, 예수와 가나안 여인의 대화에 여인을 무시하거나 이른바 혐오발언이 담겨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예수의 말에 지혜롭게 받아치는 여인, 아마도 그 둘의 대화를 듣던 제자들은 놀라움과 흐뭇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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