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분단의 모순을 견뎌낸 윤정희를 보내며
[부고] 분단의 모순을 견뎌낸 윤정희를 보내며
  • 김기대
  • 승인 2023.01.2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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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신상옥, 이응노의 얽힌 관계의 내막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60~70년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배우 윤정희(1944~2023, 본명 손미자) 우리 곁을 떠났다. 윤정희의 마지막 작품인 이창동 감독의 본명과 같은 미자역으로 출연한 윤정희는 문화교실에 시를 배우러 다니는 소녀 감성을 가졌지만, 딸이 맡겨 놓은 사춘기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의 무게가 무겁고, 생계를 위해노인 간병인 하면서 모욕적인 제안을 감수해야 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버겁다. 짓눌림 때문인지 영화에서도미자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인다.

 

트로이카로 불리던 문희, 남정임, 윤정희 현재는 문희만 생존해 있다. 문희는 한국일보 설립자인 장기영의 며느리로 남편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은 오래 지병으로 별세했다. 남정임도 47 세인 1992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이 알려진 윤정희는 간병을 두고 피아니스트인 남편 백건우와 윤씨의 친정 식구들 간에 법적 다툼이 있었지만 이번 사망으로 다툼도 끝이 나게 되었다.

1974 인기절정의 윤정희는 돌연 프랑스 유학을 발표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를 두고 박정희와의 염문설 등이 세간에 회자 되었으나 당시 시대 분위기를 고려했을 밝혀질 없는 그야 말로 소문 수준으로만 그쳤다.

트로이카 다른 배우들과 달리 윤정희는 한국 분단사의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72 뮌헨 올림픽(검은 9월단의 인질극으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모두 사망한 사건이 있었던 올림픽이다) 맞추어 여러 문화 행사가 열렸는데 동베를린 사건 연루자로 한국에서는좌익으로 찍혀있던 윤이상의 오페라심청이 공연도 있었다. 영화감독 신상옥의 초대로 윤정희도심청이 관람하는데 여기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백건우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훗날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작곡가 윤이상과 친했던 것은 문제가 일이 없었지만 박정희 치하에서는 윤이상의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은 치도곤을 당할만한 일이었다. 오페라 관람이 어때서라고 반문할 21세기의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10 유신을 달여 앞둔 시기에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들이 윤이상을 만난다는 것은 오해를 넘어 끌려 가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물론 신상옥 감독으로서는 윤정희가 심청이를 맡은 영화효녀 청이가 뮌헨 문화 올림픽에서 상영되고 있었으니 연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위험한 일이었다.

백건우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윤이상의 공연장에서 백건우는 자원 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신상옥과 윤정희를 안내했다. 과연 우연이었을까? 신상옥과 윤이상의 사전 조율이 있지 않았을까?

1974 빠리에서 우연히 다시 조우한 사람은 동거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3 뒤인 1977 사람은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에서 납북의 위기에 처했다. 자그레브는 유고 연방 해체 이번에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던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본래 스위스에서 어느 갑부의 공연 요청을 받은 윤백 부부는 초청자 측의 석연찮은 행동으로 자그레브까지 갔다가 납북의 기미를 간파하고 자그레브 미국 영사관을 찾아 도움을 요청한 위기를 모면했다.

행로도 석연찮다. 유고 연방이 구소련, 구중공과는 결을 달리하는 비동맹 국가의 하나라 하더라도 여행이 엄격히 금지된 공산국가였다. 반공을 국시로 삼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유명 피아니스트와 유명 배우 부부가 파격적인 공연비 제안에 흔들렸다는게 의아하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역시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었던 재불화가 이응노와 박인경 부부의 이름이 등장한다. 백건우와 윤정희는 그들의 동거 사실을평소 아버치처럼 존경하던이응노에게 제일 먼저 알렸고, 이응노의 입을 통해 언론으로 퍼져 나갔다. 이응노는 1976 사람의 주례를 선다. 유신 시대 분위기를 고려하면빨갱이 주례를 유명인사 사람의 결혼식에 대해 보수언론은 거품을 물고, 정치계에서 당장 두 사람을 소환하라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데 이런 용공시비가 잠잠했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윤정희는 밝혀지면 안되는 무슨 카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다가 박인경이 다리를 놓은 연주회를 위해 박인경과 함께 자그레브까지 것이다. 박인경은 이응노의 두번째 부인으로 역시 화가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부부는 빠리의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자술서를 쓴다.

이응노는 동베를린 사건에 일까지 겹쳐 한국내에서의 그림 판매 대금이 모조리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놀랍게도 박인경은 1990년대 초부터 한국 출입국이 자유롭다. 윤백 부부가 박인경을 납북미수 주모자로 비난한 것과 달리 박인경은 한국 정보기관 배후설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는데도 그는 제재를 받지 않았다. 역시 이상한 지점이다. 박인경에 대한 가장 최근의 소식으로는 2021년 10월 박인경의 기획전이 대전의 이응노 미술관에서 열린다는 한겨레 기사가 있다. 

그로부터 1년뒤인 1978 1 영화배우 최은희가 마카오에서 북한에 의해 납치된다. 최은희는 신상옥과 이혼한 상태였고 신상옥은 배우 오수미와 재혼했는데 신감독이 최은희의 행방을 직접 수소문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개월 신상옥도 북한으로 납치 당한다.

최은희는 한국전쟁 때 납북당했다가 중간에 탈출한 적이 있는데 마카오에서 두번째로 납북당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가자고 최은희를 꾀었던 사람은 배우겸 연출가 황철이었는데 여성편력이 많은 황철에게 당대의 배우 문정복은 네 번째 아내였다. 문정복은 이미 배우 양백명의 아내이면서 황철과 내연관계를 맺고 월북했다. 황철은 문정복의 절친이었던 최은희를 꾀어 북으로 가다가 최은희가 중간에 탈출했다. 남한에서 활동하던 배우 문정숙이 문정복의 동생이고 조연전문 배우 양택조가 문정복의 아들이다. 최은희는 1978년 납북후 문정복과 다시 만나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신상옥 최은희 두 사람의 납북을 두고 자진 월북설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 되었었다. 신상옥이 '전태일 분신사건'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해서 박정희 정부는 영화제작을 방해했다. 분노한 신감독이 1975장미와 들개를 공개하면서 검열에서 삭제된 오수미의 노출 상반신 장면을 예고편에 집어 넣었다. 결국 신필름은 허가 취소되었고 신감독은 정보부에 끌려가는 모욕을 당했다.

최은희 신상옥은 이혼한 상태였지만 안양예술고등학교의 교장은 최은희였고 이사장은 신상옥이었다. 따라서 학교에 대한 압력도 심해져 안양예고는 운영난을 겪을 밖에 없었다. 출구를 모색하던 최은희는 후원자가 있다는 소식에 마카오로 날아 갔다가 납북을 당했으니 자진 월북설을 뒷받침할 개연성은 충분했다.

김정일과 찍은 사진을 보면 사람의 표정이 밝고 김정일은 이들의 영화 작업을 적극 지원했다. 1986 사람은 다시 북한을 탈출해서자유대한의 품에 안기지 않고미국에서 체류했고 오수미와 이혼한 신감독은 최은희와 재결합했다.

오수미의 동생도 영화배우 윤영실이었는데(‘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주연 ) 30세인 1986 의문의 실종을 당해서 아직도 실종상태다. 언니 오수미는 42세의 나이로 1992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다. 오수미와 재혼했던 사진작가 김중만도 지난 마지막 세상을 떠났다.

신상옥과 윤정희 사람은 주변에 많은 미스테리를 남겨두고 모두 고인이 되었다.

이글은 납북을 일삼던북괴의 만행 지적하는 글이 아니다. 의심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자진 납북설’, ‘한국 정보기관의 역공작설등의 진위를 밝히는 글도 아니다. 분단 상황의 고국을 뒤로 하고 유럽에서 친북 딱지를 쓴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과의 교류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윤정희의 배포를 부고라는 범주로 회고해 뿐이다. 백건우 역시 유명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불온한윤이상과 이응노의 좋은 후배가 되어 주었다.

첨언 : 이응노의 부인 박귀희는 충청남도 예산의 수덕사 자락에 있는 수덕 여관을 맡아 운영하다가 세상을 떴다.  수덕 여관은 프랑스로 떠나기 박귀희와 이혼한 이응노가 아내에게 넘겨준 일종의 위자료였다. 여관은 일제 강점기때부터 나혜석, 김일엽 등이 장기 투숙하면서 그들이 삶과 예술을 논하던 장소로 유명했다. 목사의 딸이었던 신여성 김일엽은 두번의 이혼 끝에 불교에 귀의해 수덕사 비구니로 생을 마쳤다. 부분은 '목회자 자녀 열전'에서 다시 기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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