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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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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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사도행전(19)

아둘람에서는 1부 예배에 이어 1 시간 동안 휴먼라이브러리 시간을 갖는다. ‘휴먼 라이브러리(사람책) 운동’은 책 대신 사람을 모셔 놓고 그의 삶을 통하여 세상과 삶을 배우는 것으로 전 세계 도서관에서 하는 운동이다. 발표자가 20분 한도에서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질문을 받는 것이다. 이런 형식은 항상 새로운 주제와 사람에 대한 창조적이고 진지한 이야기 거리가 발굴될 수 있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시각을 넓히는 것이다. 독서모임과 비슷하나 책을 읽어와야 하는 숙제가 없어서 부담이 없다.  나는 호주에서 부터 오랫 동안 해왔지민 사실은 세계적인 프로그램이다. 처음 시작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시대를 맞이해서 위기를 느끼는 서구의 도서관에서부터였다.

나는 네트워킹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네트워킹은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유용하게 작동한다. 2년이 넘게 아둘람온라인공동체에서 매주 박진감 있게 진행되고 있는 휴먼라이브러리 시간의 발표자도 거의 모두가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어 초청을 해온 사람들이다.

온라인으로 하게 되니까 네트워킹 약발이 더 좋다. 왜냐하면 온라인의 특성상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아 전세계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편한 것은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둥굴어서 유럽 쪽과 시간을 맟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러시아나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에게 발표를 부탁하면 새벽 4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발표를 할 수 밖에 없어서 몹씨 미안했다.

그런데 그것 보다 어려운 문제는 20분 발표를 해달라고 하는데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모두 이야기 하려는 좋은 의미에서의 욕심 때문이다. 대부분의 발표자들은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면 보다 비대면으로 듣는 내용을 소화하기 더 어렵다는 것을 잊는다. 그래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발표자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듣는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 하는 죄'를 짓고 있는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한 번은 5선 국회의원인 원혜영 전 의원이 정계 은퇴 이후 필생의 사업으로 하고 있는 'Well dying 운동'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로 했다. 

목요일 아침 9시에 확인사살차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소리가 이상해서 처음에는 식사 중이라서 입에 음식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1분 정도 대화를 해도 발음이 분명치 않고 마치 중풍 맞은 사람처럼 어눌했다. 너무 놀라서 전화를 대강 끊고 여동생인 평화농장 원혜덕 선생에게 전화를 해서 설명을 하고 원 의원의 건강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혜덕 씨는 “아무 일이 없다.”고 하면서 “아마 틀림 없이 어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술이 덜 깨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서 “아니? 밤에 먹은 술이 아침에도 깨지 않아서 말을 제대로 못해요?”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목사님이 몰라서 그래요. 남자들은 많이 그런데요”라고 했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를 않아서 맥주 한 깡을 다 먹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비록 술이 깨지 않아 혀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원 의원 같은 酒仙들의 세계를 어찌 알랴?  

나중에 원 의원은 ZOOM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아들에게 배워서 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크게 안심을 했다.

외부 인사를 초청하지 않을 때는 각자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한 번은 ‘생애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 부정적인 무의식으로 남아 있을 기억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내 안에 남아 있는 어두움을 끄집어내어 치료하여 좀 더 밝아지기 위한 시도였다.

사실은 제안을 하기는 했으나 대면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비대면으로 자기 자신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심층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를 염려했었다.  제안자로서 첫 번째로 이야기하면서 나의 사건을 너무 진지하지 않고 최대한 건조하게 발표했다.  왜냐하면 작위적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대로 감정적인 표현을 자제했다. 그런데 다음 사람부터는 진지하게 임해서 분위기가 매우 심각하게 되었다. 점점 순서를 진행하면서 진지함을 넘어서 깊은 내적 성찰을 분위기로 변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 혹은 아무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어서 가슴 속에서만 품고 살아왔던 이야기 혹은 앞으로도 할 수 없었을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을 심리상담업계의 전문용어로 ‘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현상은 업계에서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은 절대적인 신뢰 관계에서만이 일어 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둘람은 지난 2 년간 비록 온라인에서 만났지만 멤버들 사이에는 서로간의 깊은 신뢰가 쌓여진 것이다. 신뢰가 쌓인 집단에서만이 일어날 수 있는 집단치유 현상의 경험인 것이다. 감동해서 눈물이 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이야기 하는 사람의 고통이 듣는 사람에게 전이되어 눈물이 나는 경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서로 간의 절대적 신뢰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모임을 마치면서 정리를 하는 순간에 무엇인가를 이야기 해야 했는데  ‘wounded healer’라는 단어가 떠올려졌다. 나는 헨리 나우웬이 썼다는 같은 이름의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러나 ‘척하면 쿵 아닌가?’ 상처를 받은 자만이 치유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신뢰함으로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고 치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상처를 나의 상처로 받아 들이고 함께 아파하고 분노할 때 치유는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공감은 치유의 원천인 것이다.

감동을 물리적으로 표현한다면 ‘심리적 공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 공명 현상은 같은 공간에 있을 때만 일어 날 수 있지만 심리적 공명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다. 인간이 예술 작품 앞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까닭인 것이다. 또 종교의 경전 같은 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온라인인 비대면 환경에서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과 같은 공명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니 이 또한 펜데믹 시대의 선물이기도 하다. 인류는 이제 펜데믹 이전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여로모로 신인류의 창조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나는 다른 것은 모르지만 종교에서만은 구시대의 종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생애 가장 부정적인 사건’을 이야기 하는 프로그램에서 “맹목적인 교회 생활에 40년을 허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한 멤버의 고백에 다같이 공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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