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목회 어렵지 않아요- 감히 사모한테 교우라니
진보 목회 어렵지 않아요- 감히 사모한테 교우라니
  • 김기대 목사
  • 승인 2023.04.05 04: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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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그 동안 뭘 했던 거지?

오랜 전 코미디 프로 중에 어떤 과제가 주어지면 그에 대한 황당한 해법을 내 놓고서는 “어렵지 않아요”라고 하던 유행어가 있었다. “참 쉽죠, 잉!”이라는 유행어도 있었는데 같은 코너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진보목회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이는 내가 목회하는 평화의 교회를 가리켜 유일한 진보교회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서너 개 있다고도 한다. 진보교회는 어렵다. 우리 교회는 그나마 자체 건물(PCUSA 규정상 교단 소유이기는 하지만)이 있어 건물 임대료 부담이 없어 다행이지만 여타 재정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진보교회가 꼭 어려운 일도 아니다. “참 쉽죠~~잉”이야 아니지만 나름 재미는 있다. 최근에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1. 조그만 교회에 새로운 신자가 등록하는 일은 반가우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우리 교인들은 일단 누군가가 방문하면 묻는게 있다. “우리 교회 어떤 곳인지 알고 오셨어요?”라든가 “우리 목사님 어떤 분(?)인지 알고 오셨죠?". ^^ 나쁜 의도는 아니다. 나중에 겪을 정신적 충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중에 등록카드에서 생년월일을 확인하니 중년의 여성이었지만 첫 눈에는 30대의 골드미스로 보이는 여성이 교회를 찾아 왔다. 매우 적극적이어서 첫 날부터 설거지를 하겠다며 식사 후에 부엌을 향했다. 교인들이 우리 교회는 남성들이 설거지를 하니까 쉬시라고 했더니 그 분은 “역시 진보교회네요" 라고 했단다.

사회는 이미 양성 평등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남성의 설거지가 진보로 평가되는 교회 문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교회가 그만큼 뒤쳐지고 있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내가 부임한지 26년이 되가는데 왜 초기부터 남성설거지를 주장하지 않았을까를 후회하고 있는데 15년 전쯤 시작한 남성 설거지가 지금도 진보로 평가되는 교회 문화, 심각하다.

우리 교회 남성설거지의 역사는 흥미롭다. 지금은 교회를 떠난 매우 가부장적인 분이 주장해서 시작되었는데 양성평등과는 전혀 관계없는 의도였다. 그분은 성가대 활동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식사후에 여성 대원들이 연습하러 빠져 나가는 것이 나머지 교인들의 불만이었다. 성가대를 교회보다 더 사랑하던 그 분은 성가대를 향한 다른 교우들의 비난이 듣기 싫었는지 어느날부터 설거지를 자청했다. 빨리 성가대 연습을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먹고 있는 식기를 들고 가는 황당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진보는 지름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다른 길로 돌아오기도 한다.


 

2. 벗 중에 유튜브 예배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사이버(사이비 아님) 교인을 자청하는 분이 있다(물론 헌금도 보낸다). 이 분과 ‘오프라인’ 교인들과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우연히 사이버 교인이 오프라인 교인의 전화기를 들여보다가 내 아내의 이름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내 아내의 이름이 ‘교우 김**’으로 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 우리 교회를 향한 사이버 교인의 진보와 평등의 찬사가 이어졌다. 감히 사모한테 교우라고 부를 수 있는 교회야 말로 평등을 실천하는 참 교회란다. 오히려 듣는 우리가 당황할 정도였다. 그동안 교회의 호칭 문화가 얼마나 과장되어 있었으면! 물론 우리 교인들이 아내를 향하여 교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아내도 나도 그렇게 불린다고 해도 별로 신경 쓸 사람이 아니지만)

사모는 문제적 호칭이다. 스승이나 윗 사람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그 사모와는 다른 사모다. 일정 부분 비슷한 개념도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목사들은 자기 아내를 사모라고 소개하며 아내들은 사모 아무개라고 밝힌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장님 사모님, 교수님 사모님의 용례와 완전히 다르다.

 

지금이야 전화기에 발신자 이름이 뜨지만 손전화가 없던 시절, 내 아내가 교인들에게 전화할 일이 있으면 이름을 대거나 김목사 아내라고 소개했다. 일부 나이든 교인의 '사모'가 버릇없다는 질타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아내는 하는 수없이 스스로를 사모라고 부른 적이 있다. 손전화가 아내의 내키지 않던 자기 소개를 해방시켰다.

 

교회 내 호칭은 일종의 온라인상의 닉네임과 같은 것이다. 서로가 편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일 뿐이다. 미국 장로교(PCUSA)는 오래 전부터 목사의 호칭을 Teaching Elder로 바꿨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인데 아무렴 어떤가? 내가 목사라고 불리고 싶은게 아니라 부르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목사라고 불리는 것 뿐이다. 그 호칭에 왜 권위와 계급을 부여하는가?

 

오래전 무슨 목사 동문회 모임 같은 곳에 간 적이 있는데 나이든 ‘꼰대’부터 새파란 ‘녀석'까지 자기 아내를 사모라고 소개했다. 그날 아내를 사모라고 소개하지 않은 사람은 나와 아내 없이 혼자 온 사람들뿐이었다. 아니구나! 그들도 “오늘 제 사모는 다른 일이 있어서….” 라고들 했었다.

 

진보는 별거 아니다. 사모를 사모의 스테레오타입에서 해방시켜 주면 된다.


 

3. 지금이야 재정이 조금 나아져서 교회 청소하는 분이 따로 있지만 어렵던 시절 주중에 내가 청소를 도맡아 한 적이 있었다. 어느날 변기 청소를 하는데 평소에 복음성가보다 가요를 더 흥얼거리던 내가 무의식 중에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회개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무의식이지만 나의 무의식중 어떤 부분이 작동했길래 평소에도 즐겨 안부르던 복음성가가 나왔는지 궁금했다.

나는 청소같은 것을 할 사람이 아닌데 청소를 하면서 이것을 하나님에게 어필하기 위하여 복음성가를 부른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내가 이런 짓이나 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스스로 억누르려 복음성가가 튀어 나온 것은 아닌가? 만약 내 무의식이 그렇게 반응했다면 분명히 회개할 대목이었다. 그래서 무의식을 걷어내고 의식적으로 가요를 부르며 청소를 마쳤다.

 

청소할 사람 따로 목회할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이런 ‘궂은 일’(?)을 하면서 SNS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런 행위에게 주어진 찬사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좋아도 안 할 수 있고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상황과 여건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나는 청소가 싫어서 짜증을 낸다. 이건 내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어서 나는 짜증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정리정돈을 못하는 고질적인 버릇때문에 나는 짜증이다. 그래서 투덜대며 부르기에는 복음성가보다는 가요가 적격이다.

 

진보 어렵지 않아요. 가요 부를 때와 복음 성가 부를 때를 구분하면 된다. ^^

 

4. 코비드로 교회 문을 닫았다가 열었을 때 젊은 부부가 교회를 찾았다. 새로운 교인이 오면 묻는 그 프로토콜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분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가 평화교회라고 찾아 갔더니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분들이 '오늘 예배에서 은혜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 순간 아뿔사 잘못 찾아왔구나, 우리가 찾던 평화의 교회가 아닌가벼" 하고 우리 교회를 다시 검색해서 왔단다. 함께 파안대소를 했다.

 

이곳에서 박근혜 퇴진운동을 한창 하던 시절 건장한 중년 남성 두 명이 교회를 찾아왔다. 당시 신문에 국정원 정보원들이 수만명 해외에서 활동한다는 기사가 나올 때였다. 그러니까 정식 국정원 직원은 아니고 현지 교민들 중에 고용한 비정규직 정보원을 포함한 숫자다. 긴장했지만 작은 교회에서는 자리를 채워주는 것만도 고마웠다. 게다가 그들이 정보원이라는 증거도 없었다. 예배를 마치고 입구에서 악수를 하는데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목사님, 오늘 설교에 은혜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정보원들이 맞구나! 그들은 당연히 다음주부터 보이지 않았다.

 

때에 따라 '은혜'를 사용하면 진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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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현 2023-04-07 00:59:28
저희 교회는 진보는 아니지만 설겆이는 남녀 가리지 않고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데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 글은 참 난해합니다. 진보교회라는 말을 처음 봤는데 정말 뭔지 모르겠습니다. 왜 목사님께 은혜받았다고 인사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왜 사모님을 사모라 부르는 것에 신경을 쓰는지... 근데 잘 살펴보면 다 "비본질적"인 논의들입니다.

복음을 바로 전하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인정하고 믿는다면 진보건 전통이면 신경쓸 일이 전혀 아닙니다. 전통교회에서도 호칭을 형제로 통일하는 등의 시도가 있지만 다 성경말씀을 잘 실천하기 위한 마음에서 나오지 "진보이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이 글에는 "진보교회"라는 자부심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근데 그게 중요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