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제 가야 희생이 족할 것인가?
[시론] 언제 가야 희생이 족할 것인가?
  • 지유석
  • 승인 2023.04.11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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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이태원 참사 뒤 찾아온 첫 부활절
1920년 아일랜드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에게 수색 당하고 있는 아일랜드 독립당 당원 Ⓒ 이미지출처 = Irish Central
1920년 아일랜드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에게 수색 당하고 있는 아일랜드 독립당 당원 Ⓒ 이미지출처 = Irish Central

희생이 너무 오래면  
마음을 돌로 만드는 것  
언제 가야 희생이 족할 것인지?
 
그건 하늘이 알아 할 일, 
우리가 할 일은 하나씩 이름을 부르는 것, 

마치 마구 뛰놀던 사지에 
결국 잠이 찾아왔을 때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듯이  
이게 일몰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니다, 아냐, 일몰이 아니고 죽음이야.  
결국에 가서는 필요 없는 죽음일까?   

....  

나는 시에 적네   
코널리와 피어스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올 날에  
초록 옷이 입혀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변했어, 완전히 변했어.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1916년 부활절>   

1916년 4월 24일, 당시 아일랜드는 부활절을 맞았다.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인 아일랜드는 이날 부활절을 맞아 축제 분위기에 휩사였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도 잠시, 거리는 온통 핏빛으로 변한다.

아일랜드 임시정부 대통령 패트릭 피어스(1879~1916)가 이끄는 700여 명의 아일랜드 혁명군은 부활절 날 더블린 중앙우체국을 점령하고 일주일간 투쟁하다 영국군에 의해 진압 당했다. 

그리고 영국군은 피어스를 비롯한 15명의 지도부를 군법재판에 회부해 처형했다.   

예이츠는 이 시를 통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독립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탄식한다. 그리고 시구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을 적으며 그들의 희생을 기억한다. 

시인의 노력 덕분일까? 1916년 부활절의 기억은 집단기억으로 되살아나 아일랜드 독립운동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A terrible beauty is born)는 맨 마지막 연은 다름 아닌 독립 투쟁에 대한 은유다. 그리고 마침내 1921년, 아일랜드는 런던 조약을 통해 비록 불완전하나마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게 된다.   

서울광장 한켠에 마련한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분향소. 올해 부활절은 10.29참사 후 처음 맞는 부활절이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서울광장 한켠에 마련한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분향소. 올해 부활절은 10.29참사 후 처음 맞는 부활절이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시계를 2023년 4월 9일 한국으로 돌려보자. 이 날은 교회력으로 부활절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번 부활절은 10.29이태원 참사 이후 처음 맞는 부활절이다. 또 4.16세월호 참사 이후 아홉 번째 맞는 부활절이기도 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사회는 159명의 꽃다운 젊음을 잃었다. 그리고 9년 전엔 304명을 또 속절없이 잃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달라진 게 없다. 집권세력은 참사의 의미를 축소하고, 유가족을 폄훼하기 급급하다. 진영으로 갈라진 정치권은 정치적 득실 따지기에만 급급하다. 

거리에선 혐오의 말들이 난무한다. 이번 부활절 오후 이태원참사 희생자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에서 연합예배가 열렸다. 하지만 극우세력들은 스피커를 동원해 온갖 혐오구호를 내뱉으며 예배를 방해했다. 지난 성탄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서울광장에선 상시적으로 희생자를 폄훼하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리고, 극우 세력들이 혐오를 여과없이 발산한다. 

대한민국 교회는 어떤가?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고 있나? 세월호 참사 당시엔 노골적으로 유가족을 정죄했지만, 지금은 다소 잠잠하다. 하지만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집권세력을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교회는 보기 힘들다. 

예이츠는 1916년 부활절의 비극을 노래하면서 “언제 가야 희생이 족할 것인가?”하고 절규했다. 이 같은 절규는 2023년 4월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 번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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