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경건한 쓰레기가 나온다
교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경건한 쓰레기가 나온다
  • 김기대
  • 승인 2023.05.10 0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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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수’와 함께 지낸 10일

95세의 나이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부음을 들으면 SNS 통해 다음과 같이 부고하려 했었다.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의이방인 구절이다. 식대로 말하자면 시차를 고려할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내일 것이다. 내가 별세소식을 들은 것은 미국 서부시간으로 화요일이었지만 공식 사망일자는 한국시간으로는 다음 수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소식을 알리는데 깊은 데서 슬픔이 치밀어 올라 그렇게 부고하지 못했다. 이미 고령으로 죽음은 예상되던 일이었기에 슬프지 않을 알았다. 나는 엄마가 몇해전 병원에 들어갈 때부터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다. 세상에서 천수라 할만큼의 세월을 살아 왔고 이제는 안식이 필요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곧 있을 그 분의 마지막이 고통없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기도만을 했을 정도로 삶과 죽음이 모두 주님 안에 있다고 믿던 나도 제 어미의 죽음앞에서는 별 수 없었다.  

장례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넉넉하지 못한 내 처지에 차라리 항공료에 조금 보태어 한국에 있는 형에게 장례비를 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내 큰아들 내외도 휴가차 한국에 있었던 터라 우리 가족 대표로 조문단은 꾸려진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회의 권고와 후원이 있어 결국은 갔다.

내가 한국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한국은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아니다. 방문때마다 강연이나 설교 요청이 있기는 하지만 마치 여행비를 메꾸기 위한 품팔이로 보여 마음이 편치 못했다.  벗들과 계속되는 술자리도 부담스럽고(그나마 이런 모임에서는 대화라도 통한다), 가족과의 부질없는 논쟁도 싫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절대로 먼저 도발하지 않았지만 가족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들었다.

슬펐다. 동시에 그들을 분석해보고 싶었다. 그들에게 조국 윤미향 이재명은 공공의 적이 되었을까? 이미 많은 부분 무죄가 선고되고, 검찰 정권에서 없을 정도의 많은 압수 수색과 소환 조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혐의점을 찾지 못한 이재명은 계속 그들에게돌려 막기 신공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재명이 정말 돌려막기로 요리조리 피해다닌다고 하면 오히려 엄청난 수사력을 동원하고도 찾아내지 못하는 검찰의 무능을 탓해야 하는 아닌가? 성남시장 시절부터 십수년을 파헤쳤지만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혐의'를 어떻게 일개 소시민이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까? 뭔가 한참 잘못 되었다.

문재인 전대통령에 대한 나의 생각은 '애증이 교차한다' 정도가 맞을 것이다. 이런 정권이 들어선 데 대한 그의 책임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증'이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점, 정치의 품격을 높인 점에 대해서는 '애'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문빠'고 '이빠'다. 아니, 문빠여야 하고 이빠여야 했다. 시설 노후로 가동이 중단된 원전은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이 당장 원전을 없애자는 것도 아니었고 향후 60년이라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문재인의 원전 정책은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원전 수출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으로 이해했다. 윤석열이 바이든 앞에서 재롱을 떨며 했던지적재산권발언으로 원천 기술이 주로 미국에 있는 한국의 원전 수출은 어려워졌다. 윤정부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전정부의 원전정책을 계속 비난할 것이고 보수언론의 장단에 본말은 전도된다.

K 방역은 거짓말이었고, 지금의 경제 폭망도 문재인에게 책임이 있단다. 윤석열이 끊임없이 정부를 탓하는 것은 그런 이들을 선동하기 위한저도(고도의 반대말)’ 계산된 발언이다.

내가 항상 옳고 그들이 항상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총화단결 유신정권에서나 쓰던 말이고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도 존중받을 있다. 그런데 혐오하고 욕하며 누구도 믿지 않는 조중동의 정보만 갖고 단정하냐는 것이다.  조중동이 그렇게 친윤 논조를 쏟아내도 그의 지지율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현상을 그들은 이해 못한다.  아참! 여론조사기관이 좌파에 포획되어 통계가 속이고 있구나! 

이곳 LA에서 열린 반윤석열 집회에 나간 적이 있다. 맞불 집회에 나온어르신들이 젊은 집회 세력들을 향해 쌍욕을 퍼붓는다. 오히려 반윤 집회 젊은이들이 욕을 퍼붓는 태극기 노인들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을 향해목사님 사랑합니다 외친다.

기계적 중립병에 걸린 한겨레와 경향이진보 들지 않은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가끔은 진보층이 읽어서 기분 좋은 기사를 싣곤 한다. 나는 그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소위진보 언론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20% 정도는 감안해서 수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크로스 체크도 한다. 그들에게 일정 부분 진영의 논리가 개입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 읽는다는 말이다.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더라도 이처럼메타 언론 입장에서 봐야 하는데보수들은 조중동의 기사에 나름대로 해설까지 곁들여 200% 수용한다. 결국 그들은 조중동의 노예가 되어 있는데도 진영이 MSG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진리 이상으로 신봉한다.

10 동안보수 둘러 싸여 살아본 서울 생활 10일은 지옥이었다. ‘보수 홑따옴표를 붙인 것 한국 사회의 보수 진보 논쟁이 덧없다는 뜻에서다. 영화기생충 대사처럼 한국에 좌우가 어디있는가? 상하만 있지.

지옥이라고? 아니다. 거리의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한국의 가족은 장례이후의 슬픔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서로 격려하며 때로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파안대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옥이냐고? 미국의 작가 플래너리 오코너는 “자신의 눈을 감고 교회의 눈을 가지고 보려고 하면 경건한 쓰레기가 나온다”고 했다. 자신의 눈을 감고 교회와 조중동이 콜라보된 눈을 가지고 보니 쓰레기가 나올 밖에 없다는 의미의 지옥이다. CS 루이스가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말하던 그런 안온한 지옥이다. 자신들의 눈에 성경과 조중동과 TV조선 말고도 많은 것을 담아야 하는데 담을 것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이미 그들의 고교 대학시절에 다 채워졌다고 믿고 있기에) 이들이 만들어 가는 천국같은 지옥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두려움과 질투였다. 본래 음모론이라는 것은 권력을 갖지 못한 쪽에서 만들어내는 것인데 거의 폭력에 가까운 검찰권력을 등에 업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끊임없이 두려움의 언어를 생산해 낸다. 언론이고 법원이고 검찰이고 여론조사 기관이고 모두 좌파에 포획되어 있다는 두려움이다. 산불이고 이태원 참사고 모두 좌파가 연계된 음모론으로 접근한다.

그런 두려움은 알량한 그들의 기득권 때문이다. 평준화 이전의 명문중고와 명문대를 나온 가족을 보면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기득권은 고학력이다. 그들과 학력수준이 비슷한 정권이어야 그들의 존재가 인정받는다라고 생각하는 하다.

한국 진보진영 리더들의 학력도 만만치 않은데 그들은 대학때 돌이나 던지고 공부도 않다가 좋은 세월 만나 출세한 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식 세계관이 만들어낸 용어인산업화의 역군노조 노동자 같은 개체인데 외과적으로 분리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기득권에 눌려살았던 지난 날의 역군들을 향해서는 남은기득으로 동정이 섞인 찬사를 보내지만감히노동자 주제에 고학력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몫을 찾으려는 시도는 봉건사회의망이 망소이의 다름없다. ‘망이 망소이 주체가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황교익씨의 SNS
황교익씨의 SNS

 

산업화의 역군적인 삶을 살았을 오늘의 노인 부대는 아직도 기득권의 논리에 빌붙어야만 자신들의 안위가 보장된다고 착각하고 열심히 태극기를 흔든다.

그들이 가진 두려움의 정점에 조국 장관이 있다. 그들을 능가하는 고학력과 현재의 고학력자들을 가르치는 교수, 법대 출신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목을 걸었을고시조차 외면했던 사람이 그다. 조국 장관이 고시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던 것도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알량한 기득권자들이돌이나 던지던 세력들로 폄하하던 세력의 정점에 그가 서자 두려움과 질투가 폭발했다. 그들에게신분세습으로 보일 수 있는 행위를 한 조국 집안은 멸문滅門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이게 조국 사태의 전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진보진영도 지금 그들이 밀리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론조사 지표상으로도 범진보의 의견이 다수다. 솔직히 말해 비정통 언론의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다. 윤정부의 실책과 실수를 비판하고 조롱하기 보다 어디서부터 진보가 콘크리트 보수층에게 신뢰보다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되었는지 돌아보고 대의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글을 마감하려는 즈음에 음식칼럼니스트 황교익의 SNS 봤다. 그가 말하는 배짱이 내가 말하는 두려움을 걷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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