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국의 순교자 프리퀄(1)
김은국의 순교자 프리퀄(1)
  • 김기대
  • 승인 2023.06.1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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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특집) 박대위는 박목사의 마지막 순간을 왜 조작했을까?

최군목(소설 순교자의 등장인물)은 박대위가 전쟁 부상을 입고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야전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박대위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의 마지막 침상 머리맡에는 그가 남긴 비망록 일기문 형태로 남아 있었다. 병원 관계자들은 최군목이 목사라는 말을 듣고 박대위의 가족을 만나면 전해달라고 비망록을 그에게 맡겼지만 박대위에게는 남아 있는 가족이 없었다. 아버지 박목사는 전쟁중 인민군에게 학살당했고 다른 가족에 대해서는 들 바가 없었다. 하는 없이 최대위는 비망록을 일단 보관하기로 했다. 훗날 최군목이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박대위의 친구인 이대위가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에게 비망록을 전해주려 했으나 역시 최군목더러 간직하라며 받기를 거절했다.

프리퀄(Prequel)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다. 예를 들어 영화 배트맨의 인기에 힘입어 그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후편이 아니라 그의 성장단계를 담은 속편을 프리퀄이라고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배트맨 프리퀄의 완결편이다. 여기서는 김은국의 순교자 프리퀄을 만들어 보았다. 소설 인물을 제외한 모든 인물은 실존 인물로 그들의 약력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으며 소설 인물과 소설밖 인물의 관계만 창작된 것이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공산당에 체포된 14명 목사 가운데 12명이 6·25 전쟁이 발발한 당일 처형되고 2명이 살아남았다. 나중에 평양에 진입한 남한 당국의 수사 결과, 당초 예상과 달리 12명의 목사는 공산주의자들의 고문에 굴복해 신을 부정하고 저주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국군은 처형의 효과를 극대화해서 평양시민들에게 공산당의 잔혹상을 알리려 했다. 여기서 살아남은 신목사는 실제로는 신앙을 지켰지만 배교자 노릇을 자처하며 12 목사의 순교를 칭송한다. 희생자 중에는 박대위의 아버지 박목사도 있었다. 등장인물 : 신목사 장대령 최군목 이대위 박대위

이하는 박대위가 남긴 비망록의 내용이다.

자네 나와 함께 북으로 가지 않겠나? (순교자의 박대위) 깜짝 놀라 뒤돌아 보며 되물었다. 교수님 지금 뭐라고 하셨지요? 연희 전문시절 은사였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백남운은 해방후 경성대학 법문학부로 옮긴 상태였다. 진로를 고민하던 나는 안부도 물을 그를 방문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눈 떠나던 참이었는데 연구실을 나오는 뒤통수에 던져진 말치고는 뜻밖이었다. 자네 연전시절부터 마르크스 경제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을 기억하네, 이참에 나와 함께 북으로 가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함께 하지 않겠나? 자네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네, 게다가 자네는 고향도 평양이지 않나?

북으로 가자는 그의 제안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백교수에게 했던 말을 대충 정리해 보면 이렇다. 평양에서 목회 중인 아버지는 나에게 평양신학교를 가든지 숭실학교 대학부에서 경제학을 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했었다. 학교 모두 아버지 박목사의 영향으로 장학금으로 공부를 할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 연전을 굳이 택한 것은 평양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박목사의 신앙은 나를 숨막히게 했기에 아버지의 부음을 듣게되면 모를까 평양에 다시 일은 없을 같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정부가 북에서 자리잡기는 힘들 것이다. 그곳의 기독교 세력이 아주 강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말에 대해서는 솔직히 조차 반신반의 했었다. 이북지역에 기독교 세력이 강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전 아버지 박목사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던 한경직이라는 젊은 목사가 남으로 내려 왔다는 소식을 들었던 차였다. 게다가 한목사는 이북지역에서 기독교 사회민주당을 조직했었는데 이남에서는 반공사상을 교인들에게 주입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럴 거면 북에서 싸우지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북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울 있을까라는 회의가 마음 한 켠에 있었다.

유현목 감독의 영화 '순교자'(1965). 극 중 신목사 역을 맡은 김진규 배우
유현목 감독의 영화 '순교자'(1965). 극 중 신목사 역을 맡은 김진규 배우

 

마땅한 진로를 잡지 못한 나는 해병대에 입대했고 군생활 중에 6.25가 발발했다. 어느새 대위가 되어 유엔군과 함께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의 10월 날씨는 폐허만큼이나 스산했다. 아버지가 공산군에게 학살당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거기서 아버지의 시신이라고 수습하는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몇해 전 백남운 교수에게 '아버지의 부음을 들으면 모를까'라고 한 말이 현실이 되었다. 슬픔에 앞서 미안함이 엄습했다. 아버지에게 기독교 신앙은 진심이었구나! 순수한 신앙을 아들이 반발했으니 아팠을 그의 마음이 헤아려졌고 거기서 생겨난 미안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학살에 가담했다가 포로로 잡힌 북한군 정소좌의 진술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버지를 포함한 12명의 목사가 오히려 신을 저주하고 부정했으며 살아남은 사람 신목사는 신앙을 지켰고, 아버지 박목사를 따르던 젊은 한목사는 신을 저주한 박목사에게 충격을 받아 미쳐 있었다. 미친 한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경직의 이름이 잠깐 떠올랐던 것은 그에 대한 내 선입견이 워낙 나빠서였을까?.

정보 업무에 종사하던 장대령, 이대위, 최군목, 그리고 희생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내가 포함된 대책회의가 열렸다. 장대령의 입장은 완강했다. 실체적 진실보다는 우리가 믿어 왔던 그대로 12명을 순교자로 지정해서 대규모 반공집회를 겸한 추모 예배를 열어 공산당의 만행을 널리 알리자는 그의 제안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장대령의 입장에 동조했을까? 아버지의 신앙을 그토록 저주했던 내가 참에 아버지의 위선을 폭로할 있었는데도 말이다.

장대령의 입장에 반대하던 대위도 나의 찬성입장을 이해할 없다는 쳐다봤다. 그는 누구보다도 나와 아버지의 갈등을 알아왔던 벗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박목사를 순교자로 포장해줌으로써 그와의 갈등을 끝내고 싶은 내 잠재의식의 표출이었을까?

아무튼 이대위의 반발로 결론을 유보한 회의는 며칠 뒤로 미뤄졌다. 동안 일단 연락이 끊긴 신목사를 찾아보라는 숙제를 들고.

군용차를 타고 평양시내를 돌아보던 중에 갑자기 중학교 몇 년 후배인 이승만(훗날 미국장로교 PCUSA 총회장) 생각났다. 그가 성화신학교(평양에 있던 감리교 신학교) 다닌다는 소문은 얼핏 들었었다. 중학교때 그에게 이끌리어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성화신학교에서 가르치던 박대선 목사(훗날 연세대 총장) 인도하던 사경회였는데 그의 설교는 아버지의 설교와 달랐다. 귀에 익숙지 않은 무슨 철학자들의 이름도 나오고 시지프스의 신화같은 이야기도 나왔다.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갈등이 깊어지기 전이라 집에 돌아와 감리교가 뭐냐고 물었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시큰둥했었다. 그런 인연이 있던 터라 기억으로 찾은 그의 옛집은 폭격 중에도 비교적 건재했다. 반쯤 열린 대문을 들어서니 옛집의 낯익은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냉랭했다. 이승만의 가족들은 모두 얼이 빠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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