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0월 평양, 부치지 못한 편지
1950년 10월 평양, 부치지 못한 편지
  • 김기대
  • 승인 2023.07.0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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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의 순교자 프리퀄(2) 박목사는 배교자로 그냥 두어야 했다

이승만(평양 성화신학교에서 공부, 훗날 미국장로교PCUSA총회장을 지냄)의 가족들이 그렇게 망연자실 앉아 있었던 것은 아버지 이태석 목사 역시 얼마전 인민군에게 학살당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의 모든 가족들이 실성한 듯이 이태석 목사의 시신을 찾아 다니다가 50여구의 시신이 뒤엉켜 있는 야산에서 이목사의 시신을 발견하고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던 중에 내가 방문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박대위)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형님의 아버님도 순교하셨다지요? 나는 순간 뜨끔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이태석 목사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의 감정을 나에게 이렇게 털어 놓았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소리쳤습니다. “지독하게도 잘못됐습니다. 비뚤어졌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십니까? 전능하십니까? 그런데도 고통을 두고만 보십니까! 통곡하는 어머니와 훌쩍이는 동생들 곁에 앉아서 내색은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절규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군요. 아버지가 이룬 일을 네가 이루어야 하지 않겠느냐? (국민일보 2010 11 8 이승만의 회고 참조)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이승만에게는 대단한 결기가 느껴졌다. 아버지의 신앙을 좋아하지 않았으면서도 아버지의 죽음을 순교로 왜곡하는데 동의한 자신이 더욱 초라해졌다. 나는 그에게 전시 중에는 군대가 가장 안전할 있으니 나처럼 해병대에 입대하라고 어줍잖은 충고를 그와 이별했다.

프리퀄(Prequel)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다. 예를 들어 영화 배트맨의 인기에 힘입어 그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후편이 아니라 그의 성장단계를 담은 속편을 프리퀄이라고 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배트맨 프리퀄의 완결편이다. 여기서는 김은국의 순교자 프리퀄을 만들어 보았다. 소설 인물을 제외한 모든 인물은 실존 인물로 그들의 약력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으며 소설 인물과 소설밖 인물의 관계만 창작된 것이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공산당에 체포된 14명의 목사 가운데 12명이 6·25 전쟁이 발발한 당일 처형되고 2명이 살아남았다. 나중에 평양에 진입한 남한 당국의 수사 결과, 당초 예상과 달리 12명의 목사는 공산주의자들의 고문에 굴복해 신을 부정하고 저주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국군은 처형의 효과를 극대화해서 평양시민들에게 공산당의 잔혹상을 알리려 했다. 여기서 살아남은 신목사는 실제로는 신앙을 지켰지만 배교자 노릇을 자처하며 12 목사의 순교를 칭송한다. 희생자 중에는 박대위의 아버지 박목사도 있었다. 신목사는 1.4후퇴때 국군을 따라가지 않고 평양에 남기를 선택했다. 박대위는 전투중 사망했다.  등장인물 : 신목사 장대령 최군목 이대위 박대위

배교자를 순교자로 탈바꿈하는 대규모 신앙집회는 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사코 반대하던 이대위도 어쩔 없었다. 생각할 수록 신목사는 이해할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신앙을 지켰으면서도 배교자의 역할, 가룟 유다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모욕을 참아내기로 신목사의 모습에서 진정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중첩되었다.

 

순교자 추모집회라는 거대한 쇼가 끝난 25 중공군과의 교전 소식이 들려 왔다. 전선으로의 이동명령을 받고 준비하고 있는데 미군 정보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9 중순부터 시작된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19 우리가 평양에 진주하면서 북한 지역은 행정 공백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10 1일부터 17일까지 평양우체국에 도달한 편지는 수취인에게 배달되지 못한 상태로 있었다. 미군정보부는 편지들 중에 혹시라도 정보를 담은 편지가 있을까 하여 해석해 달라는게 나를 정보부 사무실로 부른 이유였다. 1,000여통의 편지를 모두 읽기는 힘들고 부관 명과 함께 무작위로 개를 선별해 읽어갔지만 별다른 정보거리는 없었다. 전쟁이 가져온 애틋한 사연만 있었을 뿐이었다.

사진출처 : 삼인출판사
사진 출처 : 삼인출판사

 

“과이 놀내지 마러라. 평양 소식 알인다. 916일에 놈들의 공습에 수백 사람 죽고 하는 중에 우리의 식구는 천명으로 사라낫다. 자근어먼님 집도 폭탄에 치여 형편이 없고 물커지는 속에서 사라나고 우리 식구는 안에 있다가 폭탄 파편에 겨우 몸을 빠저서 사라낫다. 나는 현장에 갓다가 연기가 매우 나서 집에 돌아온 식구들은 울고 인는 현상이다평양에 살던 백인하가 함경남도에 사는 여동생에게 보낸 사연이었다.

 

“세상에 옵빠 한분을 이와 같이 가족을 불쌍스럽게 스러버렸으니 누이 가슴은 쓰라리다 못하여 간장이 스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업쓴 사람은 업쓰나 사람은 사르야지요. 걸어서 4, 5일이라도 고생스러운 대로 걸어서라도 오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제가 건사할 터이니 조금도 근심 마시고 데리고 오시요. 폭격으로 가족 대부분을 잃은 오빠에게 보낸 여동생의 편지였다.

 

“오후에 상부의 지시로 인하여 공부를 페지하고 전부 군대에 가게 되오니 엇지겠소. 돈도 없고. 심사 받어가지고 어느 직장으로 보내줄런지 군대에 가게 되겠는지 모르겠읍니다. 아무데 가드래도 편히 하겠습니다. 당신을 보지 못하는 것이 원이 되어 일시를 있지 못하겠읍니다.

평양의 사법간부양성소에 다니던 아내가 평안남도 양덕에 있는 남편에게 보낸 편지였다. (편지는 이흥환이 엮은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참조)

사법간부양성소에 다니던 엘리트들도 급하게 징집한 모양인데 부대를 배치하는데도 뇌물이 오간다는 부분에서 웃음이 피식났다. 인민을 위한다는 정부에서도 뇌물이 작동한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월북을 권하던 백남운 교수가 떠올랐다. 그가 북한에서 교육상(교육부장관)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전쟁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만일 그때 그와 함께 월북했더라면 아버지의 죽음은 막을 있지 않았을까? 나도 북에서 고위직에 오르지 않았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도 어디론가 피난을 떠났거나 이미 고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역시 운명을 없었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김일성은 남한을 며칠내로 접수할 있다는 박헌영의 말만 믿고 기습적으로 공격했고 이승만은 대책없이 북진만을 외쳐 대었다. 나는 고작순교자배교자 바꿔치기 하는 쇼를 기획하는데 동조했으니, 인민해방이나 조국통일이니 자유수호니 하는 거대 이데올로기는 애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연극이 끝나고 나는 미해병대의 통역 장교로 함경남도 장진호까지 올라갔다. 무기도 변변찮은 중공군의 공습은 거셌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느끼던 중에 막사 주변에서 터진 굉음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며칠이나 흘렀는지 모른다. 정신이 들기 시작하면서 처음 들린 말은 간호장교들의 속삭임이었다. 장진호에서 후송되어온 박대위는 회생이 불가능하겠지요? 나는 그들이 무안해 할까 다시 잠을 청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비교적 맑은 정신상태로 깨어난 나는 야전점퍼 안주머니에 있던 비망록 뭉치를 발견하고 안도했다. 글이 유서가 것이다. 상태는 내가 안다. 이제 마지막으로 글을 끝내야 한다. 이미 오래전에 무신론자가 내가 이제 아버지를 만나러 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면서 웃음이 났다. 아버지는 자신을 구원해 주지 못한 신에 대한 실존적 분노로 배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스스로 배교자로 기억되는 것을 바랬을지도 모른다. 신에 대한 분노와 도전만큼 솔직한 신앙표현이 어디 있는가? 그가 마지막 공포 속에서 경험했을 배교행위의 진정성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순교는 하나님의 증언에 달려있다.  

이제 비망록을 마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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