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남편의 장례식
친구 남편의 장례식
  • 정준경 목사
  • 승인 2023.06.15 01:2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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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경목사의 우면산 아래서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는 남편이 죽었는데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러주지 않는다며 울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친구의 남편이 자살을 했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남편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친구와 남편을 제외하고 시댁과 친정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친구와 남편은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느 날 새벽, 친구의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아무도 장례식에 가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내가 가서 장례식을 인도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보니 고인의 가족들만 썰렁한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는 부모에게 무엇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에게 무엇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교회에서 교우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함께 슬퍼하며 울어주고, 유가족들을 안아주었으면 어땠을까요? 그 장례식장에는 그런 위로가 없었습니다. 고인의 부모님은 아들 내외가 열심히 다녔던 교회에서 아무도 조문하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해하셨습니다. 저는 3일 동안 입관식, 발인식, 하관식 등을 인도하면서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유가족들은 장례식 예배를 통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며칠이 지난 후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옳은 것 아니야?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기독교식으로 예배하면서 장례식을 치러도 되는 거야?” 친구는 혹시라도 제가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주님이 책망하시면, 몰라서 그랬다고 대답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에게 잘했다고 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슬픔 속에 있는 유가족들을 외면하실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친구 교회 목사님의 의견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장례식은 살아 있는 자들이 고인과 이별하는 시간입니다.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해서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다고 해서 고인이 내세에서 불이익을 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장례식은 유가족들을 위로하면서 전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기독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장례식장에서는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성령의 은혜와 교우들의 따뜻한 위로를 통해서 신앙을 가지게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당신의 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지옥에 갔고, 우리는 장례식장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면 유가족이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장례식 기간 동안 친구와 부모님은 고인이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은 고인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고 해서 지옥에 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언젠가 자살을 한 사람은 스스로를 살인하고 회개를 하지 않았으니 천국에 갈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자살을 하지 않고 죽는 사람들은 자기 죄를 모두 회개하고 죽느냐고 물었습니다. 경제적 착취와 사법적 불의와 전쟁 등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람들은 모두 회개하고 죽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자살을 죄가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고,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다만 저는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었더라도 자살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성도들에게 자살을 한 교우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게 하는 교회의 방침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성경 구절을 근거로 그렇게 무정하고 무자비한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명예의 전당 같습니다. 그 명예의 전당 32절에는 삼손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이 구절에 의하면 삼손은 분명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삼손이 자살을 했으니까 지옥에 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고 말하면서 기둥을 껴안고 몸을 굽혀 집을 무너뜨리면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저는 자살처럼 보이는데, 삼손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고 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딛고 지금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정준경 목사 / 우면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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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2023-06-15 21:58:25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분이 없도록 해야할텐데요. 주님이 답을 가지고 계실텐데요. 일이 잘못되기 전에 좋을길로 인도하는 답을 주실텐데요. 교회가 모두 이런 일을 놓고 후히 지혜를 주시는 분께 구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 2023-06-15 07:08:46
긍휼의 마음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