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년에 미국이 건국되었다고?
1619년에 미국이 건국되었다고?
  • 김기대
  • 승인 2023.06.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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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준틴스 그리고 프라이드 치킨

2019 뉴욕 타임스의 니콜 한나존스기자는 노예제도 400주년 특집 기사를 제안하면서 미국이 건국된 해는 1776년이 아니라 1619년이라는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른바 '1619프로젝트'의 서막이었다. 미국 독립을 1776년이 아닌 다른 년도로 보는 논쟁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메이 플라워호가 도착한,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는 1620, 또는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에 취임한 1789년을 미국 건국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1620년은 당연히 기독교권에서 주장했을 것이고, 후자는 조지 워싱턴을 국부로 보는 우파에서 주장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을 덮어 씌우려는 속셈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한국도 마찬가지지만)에서 우파와 기독교는 몸인데 1620년과 1789년이 나뉜 까닭은 조지 워싱턴의 신앙관이 불투명한 까닭이다. 그는 명목상으로는 성공회 교인이었지만 성찬식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성찬식이 시작하기 항상 중간에 빠져나갔다는 기록도 있다. 그래서 그를 이신론(deism)자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1619년은 어디서 나왔는가? 1619 8 흑인 노예 20 명을 실은 배가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포인트 컴포트 해안에 도착한 것에 근거를 주장이다. 말로만 흑백평등을 주장하지 말고 처음으로 흑인이 미국 역사에 공헌하기 시작한 시점을 미국의 시작으로 보자는 주장이다. 논쟁이 의외로 반향이 크자 놀란 트럼프는 미국 전통의 수호를 주장하면 대통령 자문기구인 ‘1776 위원회 설립하면서 1619년에 맞불을 놨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논쟁은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 앉았다. 바이든은 2021 준틴스(Juneteenth) 연방 공휴일로 선포했다. 6(June) 19(Nineteenth) 합친 단어가 준틴스(June+teenth)다. 1619년과 6월 19일은 묘하게 닮았다. 

미국은 신앙과 자유, 노예가 어울리지 않게 결합되어 건국한 나라다. 자유와 노예제도는 서로사맛디아니한데 둘을 연결시켜 준게 교회다. 교회는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한 성서를 가지고 노예제도를 합리화시키면서 백인들만의 자유 면죄부를 주었다. 그런 점에서 흑인 노예역사에 있어서 가장 죄는 교회가 지었다. 퀘이커가 흑인 해방을 주장하면서 캐나다까지 이어주는 탈출루트를 제공한 때문에 교회가 조금 면피가 되었을까?

넷플릭스의아웃랜더(본래는 Starz에서 제작한 시간 여행 드라마다)’에서 미국 독립전 남부의 부호가 이모에게 주인공인 조카 며느리가 노예를 해방시키자고 건의하자 이모는 퀘이커니?’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교회가 퀘이커만 같았어도 흑인 노예, 미국 원주민의 참혹한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1818 메릴랜드에서 노예로 태어난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남북전쟁 이전에 노예주로부터 탈주한 뒤에 북부에서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기록한 자서전 ‘노예의 노래(안유회 옮김, 모티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노예주인 가운데 악질들은 하나같이 신앙심이 깊었다. 그들은 노예주인 중에서도 가장 비열하고 저열했으며 잔인하고 비겁했다.

“신앙이 깊지 않은 노예주가 갑자기 신앙이 깊어지면, 어쨌든 조금은 인자하고 인간적으로 변하지 않겠느냐는 가닥 희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실망만 안겨주었다.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인간적으로도 바뀌지 않았다. 성격에 변화가 있다면 모든 면에서 잔인해지고 증오심이 커졌다는 것이다. 종교를 갖게 되자 신의 권능으로 노예 소유의 잔인함을 옹호했다. 비할 없는 위선을 경건함으로 위장했다.

악랄한 노예주들의 배후에는 KKK 있다. 1866 5, 남군 패잔병으로 이루어진 테네시의 퇴역 남군 장교 여섯 명이 그리스어로 ‘모임’을 뜻하는 큐클로스(Kuklos) 스코틀랜드어에서 파생한 ‘모임’이라는 뜻의 클랜(Klan) 합쳐 클럭스 클랜이라는 친목단체를 만들었다. 우리 말로 하면 그냥 ‘모임 모임’이다. KKK 남부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노예 순찰꾼의 변형된 조직이다. 한마디로 추노꾼들이다. 하지만 창립자 6명은 결코 무식하거나 빈곤층이 아니었다. 이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법률가 지망생과 언론인이었다

이런 지식인들이 추노꾼을 자처하게 데는 교회가 밑밥을 깔아 주었기 때문이다.  ‘Gospel According to the Klan(클란 복음서)’ 저자 켈리 베이커에 따르면 KKK 뿌리는 미국 개신교회다.  베이커는 KKK 유대인과 가톨릭 신자를 노골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불타는 십자가와 예복을 사용하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 공감을 얻은 특정 개신교를 증오의 정당화 근거로 삼았다고 주장한다KKK의 불타는 십자가는 예수가 달려 있는 가톨릭의 십자가를 불지르겠다는 말이다. 가톨릭의 예수는 우리의 예수가 아니므로 가짜 예수를 불태우겠다는 뉘앙스를 담은 이벤트다. 

흑인 남성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지는 헌법 개정이 일어나자 잠시 주춤하던 KKK 1920년대 2 성육신이라는 전성기에 들어선다.  1920년대는 네이티비즘 다시말해 미국출생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다.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미국에서 출생한 백인들이 다른 백인들과 차별화하면서 생겨난 본토주의다. KKK 추세에 얹혀가면서 세를 확장했다. 추노꾼으로 시작해서 종교혐오, 이제는 같은 백인들끼리도 이민자냐 미국출생이냐로 편을 갈랐던 것이다. 이런 갈라치기로 세력을 확장해서 1920년대에 전국 48개주에 지부를 두었다.

1926년 워싱턴 D.C에서 행진하는 KKK단. 사진출처 : 미국 국회도서관 사진
1926년 워싱턴 D.C에서 행진하는 KKK단. 사진출처 : 미국 국회도서관 사진

흑인 노예의 슬픈 역사를 말할 프라이드 치킨을 놓을 없다. 프라이드 치킨은 백인들이 잘먹지 않는 닭의 부위나 그들이 먹다 버린 닭고기에 이빨 자국등을 가리기 위해 튀김옷을 입힌 데서 시작된 노예들의 음식이다.

먹다 남은 닭에 남은 이빨 자국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오늘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물어 뜯으면서 자국을 포장하기 위해 신앙이라는 튀김옷을 입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죽자고 달려드는 차별금지법 반대 선동으로, ‘국뽕 취한 타인종 적대로, 같은 대한민국 출생자라도 집의 크기로, 혹은 주택 소유 여부로 다른 이에게 이빨 자국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덮는 사람들이 오늘도 수만명의 단골 고객을 가진 대형 튀김집(대형교회)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씁쓸하다.

노예의 노래저자인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백인 농장주들의 기독교신앙에 실망하면서도 결코 그의 신앙을 놓지 않았다. 그는진짜 기독교가짜 기독교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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