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예수의 무덤이 있다
일본에 예수의 무덤이 있다
  • 김기대
  • 승인 2023.07.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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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에도 나오는 관광 명소

구글지도에도 나오는 관광 명소 / 예수까지 역사 왜곡에 이용하는 일본/ 

일본의 역사 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부터 가깝게는 일제 강점기 성노예문제, 강제 징용문제까지 역사 왜곡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 예수의 무덤까지 일본에 있다며 그곳을 관광 명소로 홍보하고 있다.

구글지도 갈무리

 

일본 도쿄 북부 600km 지점 아오모리 현의 싱고(新鄕村)마을에는 예수의 무덤이 있다. 도로 표지판도 있으며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일본의 토속 축제는 마쯔리(まつり, 祭り)라고 하여 일본의 매우 유명한 행사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6월이면 그리스도 마쯔리(キリスト祭) 지낸다.

도로표지판

 

안내판에 따르면 예수는 21세에 일본에 와서 12년간 머물다가 33세에 유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는데 예수의 동생 이수키리(Isukiri)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십자가 형을 면한 예수는 다시 일본으로 왔고 헤라이 마을이라고 불리던 곳에서 106세까지 살다가 죽었다. 두 개의 무덤 중 오른쪽에 그리스도를 신격화하기 위한 봉분과 왼쪽에 이스키리를 신격화하기 위한 무덤이 봉헌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내판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성모 마리아의 무덤도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 대신 죽은 이수키리의 무덤에는 이수키리의 귀가 매장되어 있다. 임진왜란때 조선인의 귀를 잘라가 귀무덤을 쌓던 풍습이 그들에게는 야만이 아닌가 보다. 그들이 성인이라고 추앙하는 이스키리의 귀를 보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엽기적이다.

그리스도 마쯔리, 싱고마을 자료 사진

 

현재는 그리스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와구치(澤口) 가문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위서(僞書) 판명된인도에서의 예수 그대로 믿고 예수는 인도를 거쳐 일본에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35 다케우치 기요마로가 마을에서 예수의 무덤을 발굴했다고 한다. 그는다케우치 문서라는 것을 공개했는데 한국의 고대사 연구가들의환단고기같은 책이다. 위서로 의심되는 책이라는 의미다. ‘다케우치 문서 따르면 고대에 천황이 세계를 통치했는데 예수와 이수키리의 이야기도 책에서 따왔다.

싱고마을 자료 사진
싱고마을 자료 사진

 

1930년대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잔뜩 국가주의에 심취했던 일본 청년 장교들은 책의 영향을 받아 '천황 중심의 군사혁명을 일으켜 세계정복을 하루 빨리 촉진하자' 주장을 전개하기도 했다. 위서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였는지는 짐작할 없으나 2 대전을 일으킨 야욕에 조금이라도 일조를 셈이다.

이런 국가주의 문서에 예수를 끌어 들였을까? 진주만 공격 이전까지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히틀러의 등장으로 전운이 맴돌던 유럽에 개입하지 않고 있었던 미국이 일본으로서는 좋은 우방으로 삼을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신교 종주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려는 마음에서 이런 기획을 것으로 보인다.

사선을 넘어서 유명한 일본의 기독교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는 미국의 초청으로 미국을 돌면서 수많은 강연을 했고 많은 지지자들을 모았다. 그를 일본의 간디라고 부르기도 했다. 도요히코의 연구가들은 그의 미국 순회강연을 높이 평가하지만 일본을 아시아의 교두보로 삼고 싶었던 미국의 기획에 하나였을 것이다. 기독교를 매개로 미국과 일본은 1930년대 후반까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가가와 도요히코의 이면은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한다).

마을이 예수의 무덤이 있는 마을이라는 왜곡을 따라가다 보면 야마네 기쿠(1893_1965)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일본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는 역사학과 고고학 분야의 여성 저널리스트라고 나온다. 사회활동가이면서 정치가라는 소개와 함께다케우치 문서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도 소개하고 있다.

1900 그러니까 8 되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일본 불교 정토종 부인회를 다니면서부터 그의 종잡을 없는 종교 편력이 시작된다. 14살때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나 16세깨는 일본 불교 진종계에서 운영하는 여학교에 진학했다가 친구들에게 기독교를 전도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17 때는 일본으로 귀화한 미국인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심취한다. 영향으로 일본 개신교의 3 밴드 하나인 요코하마 공립여자 신학교에 1912년에 진학했다 

3대 밴드란 요코하마 밴드, 구마모도 밴드, 삿뽀로 밴드로 일본 개신교 운동이 지역별로 몇몇 사람들의 밴드(맹약)로부터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요코하마 밴드는 1872년에 요코하마의 외국인 선교사들 중심으로 시작된 기도회에 모인 일본 개신교 초기 신도들의 모임이다. 여기서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 일본에서 처음으로 요코하마 공회가 성립되었다. 따라서 공립여신학교의 공립은 공립(Public)라는 의미가 아니라 요코하며 공회(Society)에서 운영하는 학교라는 의미다.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요원으로 활약했던 차경신 선생 (1892년생) 요코하마 여신학교를 다녔으니 나이로 보아 차경신과 야마네 기쿠는 같은 시기에 동문수학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보다 뒷 세대이기는 하지만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도 1940 학교를 마쳤다.

신학교를 마친후 여성 참정권 운동에 앞장서던 야마네 기쿠가 어떤 경로로 다케우치 기요마로를 만나 '다케우치 문서'에 빠져들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다케우치 기요마로를 만난 1937 빛은동방으로부터라는 책을 출간해 예수, 석가, 모세가 모두 일본에 와서 죽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책이 미국에서도 알려졌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으나 야마네 기쿠를 설명하는 영어 자료는 없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과장으로 추정된다. 

 

2000 , 아니 모세까지 하면 무려 3000년도 역사를 고작 90년도 안된 1935년에 주장해 놓고 그것을 진실로 믿고 마을 축제를 지내며 관광 명소로 삼은 일본인들의 행태는 놀라울 뿐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독일, 영국, 미국으로 이어지는 서구에 대한 일본의 구애 전략은 그들의 정복 야욕과 함께 해왔다. 현재는 미국의 대리인이 되어 아시아에서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정부를 따라하는 현재의 한국 정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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