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일 없는 사람들
별 볼일 없는 사람들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3.08.0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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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에 일어나 옥상과 일 층 화단에 물을 주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그런 후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쓴다. 그 다음은 자유시간이다. 그러나 대개 시장을 한 번 가거나 필요한 것을 사러간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런 후에 점심을 준비해서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딸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한다. 딸의 경우는 예측하기 어렵다. 갑자기 먹고 싶은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기 먹을 것은 사오는 경우도 많다. 자전거를 십 킬로 정도 타고 짬짬이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기도 한다. 그러면 하루가 지나간다.

누가 보아도 목사로서의 삶은 아니다. 목사로서의 내 삶은 매주 수요일 노인요양원에 설교하러 가는 시간뿐이다. 아마도 이 시간 역시 내가 목사라는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는 주님의 배려라는 생각을 늘 한다. 주님은 그렇게 나를 변방에 살게 하신다.

그러나 내가 변방에 있기 때문에 교회가 보이고 그리스도교가 보인다는 사실을 안다.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경제활동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보인다. 그렇게 나는 변방에 머물며 직시하는 삶을 살고 있다. 속에 있다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 바깥에서는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본 것들을 바탕으로 나는 매일 글을 하나씩 쓰고 있다. 나는 싫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 삶이다.

그런 내 일상 가운데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시간은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다. 나는 눈에 띠는 레시피들을 모으기도 하고 실제로 그대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식구들이 좋아하면 나는 가장 기쁘다. 내가 식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지만 그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정말 다행이다. 만일 내가 목사가 되기 전처럼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면 나는 그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나는 섬김의 자리에 낮은 자세로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나는 가장 감사하게 생각한다.

섬김이 기쁨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섬김은 무엇보다 가장 비천한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생각처럼 단순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오래 전 일이다. 나는 공군 중위였다. 알고 지내는 총장 비서실의 한 중령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군회관에서 축하파티가 열렸다. 나는 방위병들 몇과 함께 식사 서빙을 지휘했다. 방위병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분이 보이면 나는 즉각 달려가 그들이 못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서빙을 받는 사람들이 그런 나를 방위병 취급을 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정말 완전히 사람을 무시하는 일들을 내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음식을 뒤집어엎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장교였고, 나이도 많았다. 억울했다. 화가 났다. 참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때의 일을 늘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종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사들은 섬긴다는 말을 하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정말로 섬기는 일을 하면 그 일로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섬김이 아니다. 섬김의 본질은 낮아짐에 있다. 그 사람이 본래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섬김과는 상관이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란 그런 섬김의 삶을 일상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것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섬기면 다른 사람이 섬김을 받고, 섬기는 사람을 주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또 상황이 바뀌면 역할이 바뀐다. 꼭 한 번씩 돌아가면서 섬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섬기기만 하려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역동적인 관계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들의 평등이 그곳에 자리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임하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전혀 목사 같지 않은 목사로 살아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이 가장 목사다운 삶이라는 사실을 이제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지 못한다. 현역이 아니니까 사실은 목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큰일을 하지 못하니 별 볼일 없는 목사로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시선이 좋다. 나를 작아지게 만드시고, 별 볼일 없는 목사로 만드신 것은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계속 할 것이다. 이런 목사의 역할은 은퇴가 없다. 죽을 때까지 점점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된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점점 더 별 볼일 없어지고, 나이까지 들어간다. 이것은 내게 조금도 슬픈 일이 아니다. 내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며 굳이 들어내려 하지 않아도 내 약점들은 내 전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작은 자들만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통해 흘러나갈 그리스도의 능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는 바울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제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니 거의 전부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하는가? 그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사실을 그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내거나 이루면 그것에 감동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찬양하는 것이며 자신을 경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뿐이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숭배하게 된다.

다행히 대형교회라는 것들이 생겨나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온누리교회나 사랑의교회나 명성교회나 분당우리교회나 할 것 없이 대형교회 목사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들은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 아마도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도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서는 그런 모습을 매우 실감나게 우리에게 묘사하고 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것을 예수님은 너무도 쉽게 해결해주신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 된다.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작아져야 한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마귀나 마귀새끼라고 한다. 심지어 자신들을 칭송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거나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말을 뒤집어보라. 그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성공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교회가 커진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다.

정말 간단하고 쉬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성령의 이끌림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영원히 받아드릴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더욱 작아지려 하는 사람들이 된다. 물론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열린다는 사실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작게 만드신 주님을 찬양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은 기꺼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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